질서를 만드는 불규칙
사람들은 종묘에서
공간의 경건함과 건축적 비례의 미,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떠올리며
수평으로 펼쳐진 위요감에 감탄한다.
옆에서 바라보는 정전은 특히 더 인상적이다.
소실점을 향해 반복되는 기둥의 리듬이 신비로운 풍경이 된다.
하지만 난 '종묘에 가면 언제나 확인'하는 것이 있다.
나의 네모가 잘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정전을 대대적으로 수리한다고 하니, 더더욱 네모가 잘 있는지 궁금했다.
그것이 엄밀히는 사각기둥의 형태니까 사각기둥 기둥이라 불러도 좋다.
즉, 나의 네모는 기둥이다.
종묘 정전에 가면 처음엔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
“기둥이 다 둥글구나, 저게 배흘림기둥인가 봐”
맞다. 대부분 둥글다. 그래서 더 장중하고, 더 의연해 보인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대부분 기둥의 평단면은 동그라미지만, 어떤 기둥은 네모다.
이게 실수일까?
아니다. 분명한 의도다. 정확한 선택이다.
조선의 건축은 형태를 그냥 만들지 않는다.
의미를 만들어 놓고 형태를 선택한다.
사의적인 건축이 늘 그렇긴 하지만
특히, 정전은 하늘과 땅의 질서를 건축으로 번역한 공간이다.
정전 자체가 인간의 건축 공간이 아닌 천상의 공간이다.
둥근기둥은 하늘이다.
끝이 없고, 방향이 없다.
네모난 기둥은 땅이다.
기준이 있고, 질서가 있다.
(원(圓) = 하늘 / 상징 / 외부, 방(方) = 땅 / 질서 / 내부)
아래 사진의 중앙에 있는 사각기둥은 형태가 다른 게 아니라
구조가 복잡해지는 지점이면서 공간이 전환되는 지점이라서 의도적으로 바꾼 것이다!
그 기둥은
보와 도리, 창방이 여러 방향에서 만나는 자리다.
둥근기둥은 방향이 없고 네모난 기둥은 면이 있다.
그래서 여러 부재를 정확히 걸어야 하는 순간,
기둥의 형태는 스스로 바뀐다.
동시에 그 자리는
공간이 바뀌는 지점이기도 하다.
밖의 흐름에서 안의 질서로 들어오는 순간.
둥근기둥이 이어지던 리듬 속에
네모 하나가 들어오면서 말한다.
여기부터는 다르다.라고.
내가 그 네모에 신경 쓰는 이유는 '형태의 예외'가 아니라 '질서의 예외'를 봤기 때문이다.
종묘를 걸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둥근기둥의 반복을 하나의 규칙으로 받아들인다.
눈은 그 리듬에 익숙해지고, 공간은 예측 가능한 상태가 된다.
그런데 그 한 지점에서
네모가 등장한다.
예측이 깨진다.
리듬이 끊긴다.
그래서 시선이 멈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네모는 아무 데나 있는 게 아니라
가장 필요한 자리에 있다.
축이 교차하는 자리
즉,
<예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필연적인 선택>이다.
그래서 신기하게 느껴진다.
규칙이 깨진 게 아니라
규칙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디자인을 겉을 다듬는 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종묘는 다르게 보여준다.
구조가 필요하면 형태가 바뀌고
의미가 필요하면 형태가 드러난다
바로 그 지점.
그래서 그 네모 기둥 하나는 작은 디테일이 아니라
공간이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조용하게 설명하는 장치다.
그리고,
어떤 논리적인 설명도 필요치 않다.
그저 바라보고 있으면 '역시 원과 원이 만나는 곳이면 당연히 네모지'하게 된다.
오래된 부재들을 그대로 빼냈다가 복원한다고했는데
나는 인터넷 검색도 없이 '끝났겠거니' 하고 몇 번을 찾아가 허탕을 쳤다.
찾아갔으나 공사 중이었으므로, 나의 네모를 확인할 길도 없었다.
물론 아주 최근에 가서 찍은 사진들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무사함을 확인하고는 안도했다.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 개념을
보이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종묘 정전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철저하다.
종묘의 마당은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넓고 단순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공간 같다.
그런데 바닥에는 작은 쇠고리가 박혀 있다. 고리석이다.
평소에는 의미가 드러나지 않지만,
제례가 시작되는 순간 이 고리에 차일이 걸리고
공간의 질서가 만들어진다.
종묘는 형태로 완성된 건축이 아니라, 필요할 때 작동하도록 설계된 구조다.
우리는 공간을 채워야 완성된다고 생각하지만 종묘는 다르게 말한다.
공간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작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 마당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설계된 상태다.
다만, 이 박석들의 배치가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전통적인 건축의 박석(이형판석/부정형판석)들은
무질서한 듯 하지만 질서를 부여한다.
그런데, 이 정전의 월대에 새로 놓인 돌들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불필요하게 질서 정연하면서도 무질서하다.
복원 공사 후, 내가 갔을 때도 아직 공사장인 마냥 바닥에 흙 채우기 작업이 일부 진행 중이었다.
① 불필요하게 질서 정연하다는 말은
줄을 맞추는 작업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조선 성벽들의 돌 쌓기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줄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어야 한다.
② 그러면서도 무질서하다는 말은
돌들의 간격과 배치, 바닥으로부터의 높이가 부적절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부정형의 돌을 놓고 옆에 또 부정형의 돌을 놓기 위해서는
그 돌을 돌려가면서 최적의 위치를 잡고 수평의 높이 레벨을 맞춘다.
현대의 공원에 있는 판석이나 사고석들조차도
석공과 조경공들의 노력으로 질서가 부여된다.
규칙이 있다.
대목장(大木匠)이어야 기둥을 맞추듯
바닥 돌에도 전문가들이 있다.
그래야 반복이 아닌 균형이
규정이 아닌 질서 있는 돌 놓기가 된다.
이것도 논리가 아니라 우리의 느낌으로 바라봐 보자.
일반인들도 위에 있는 고리석을 다각도로 계속 보면
신기하게도 왜 이상한지 보이기 시작한다.
왜 저렇게 크고 정사각형처럼 인위적인 돌에 고리가 달린 것인지.
조선의 방지원도(方池圓島)에는 연못과 섬이 있다.
네모난 땅을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고
하늘을 동그랗게 연못 위에 띄운다.
난 저 고리석이 방지원도의 표현인 것처럼 너무 큰 정형적 돌에 둥근 고리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종묘를 나오는 길에는 자꾸 적절한 공사였나?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이렇게 전면적으로 관람객을 막아놓고 복원 공사를 하면서
계승되어야 할 의미를 복원시키는 일에 조금의 왜곡이라도 만들어진다면
복원의 행위는 무색해진다.
테세우스의 배처럼 방문객들이 관람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정비가 가능했을 텐데.
문화재 영역의 잣대가 안타깝게도 어떤 시각에서는
'창경원 시절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됐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네모가 동그라미로 바뀌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정전에 빛을 쏘는 미디어 파사드 공연이 아니고,
각종 이름의 종묘문화행사와 보도자료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정전의 복원은 분명 완벽했으리라 믿는다.
그저 해체했다가 그대로 설치한다고 했으니까.
다만,
바닥돌이 내 발이 아니라 눈에 밟히고 걸리는 건
눈에 보이는 형태 때문만은 아니다.
나의 네모는 정연한 사각형이 아니라
선조들이 공간을 매개로 내게 말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형태가 아니라 정신이고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p.s.
중요한 사실을 첨언하자면
원칙적으로 네모는 천원지방이야기보다는 음양사상과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