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과 인구절벽 ① - 지방소멸 개론
2016년쯤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의 한 연구기관이 일본의 <지방소멸론>을 소개한 적이 있다.
연구용역이 일부러 바이럴을 노린 것도 아니었을 텐데,
의외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여기저기에서 사회적 이슈와 담론이 만들어졌고,
마치 대한민국의 지역이 곧 사라지고 한국 전체가 소멸할 것 같은 분위기까지 형성되었다.
<지방소멸>은 정치인들의 입버릇이 되었다.
지방소멸론은 2014년 일본에서 발표된
마스다 히로야 전 총무대신이 좌장을 맡은 ‘마스다 리포트(Masuda Report)’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특히 일본인들에게는 '부유감이라 해야 할까?' 일본이라는 섬이 바다 위에 떠 있다는 감각 때문인지,
지역의 붕괴를 설명하면서 '소멸'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그리 낯설지 않아 보였다.
‘일본 침몰’ 같은 표현이 그렇듯,
다소 과격한 단어를 통해 시민들에게 위기의식을 환기하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소멸’이라는 말은 어딘가 일본적이고, 심지어 애니메이션적인 어감마저 풍긴다.
한국에는 일본의 특허나 이론이
마치 세계화의 뱃머리에 놓인 선진 문물인 것처럼 유입되는 현실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BTS를 배출한 나라다.
더 이상 일본을 트렌드의 중심으로 여기 지도 않고,
일본 전자제품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엔지니어와 연구자들이
일본의 학설이나 특허를 모방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대중문화에서는 세계를 선도하면서도
학문에서는 여전히 Fast Follower라는 마스크로 가린듯한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일본의 지방소멸론을
조금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검증했던 기억이 있다.
혹시 일본의 학설을 가져와
국내 이론처럼 포장하는 또 하나의 사례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다행히 실제로는 그런 성격의 연구는 아니었다.
단순히 소개와 분석에 가까웠기에 학술적인 의미는 분명 존재한다.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노인이 많고 가임기 여성이 적으면 <소멸지역>이라고 규정하는 발상이다.
아무리 사회과학적 분석의 틀을 씌운다 해도
사람을 마치 개체수처럼 세는 것 아닌가 하는 씁쓸함이 남았다.
뭐든 상관없다. 그저 보고서일 뿐이라면.
어느 유명 정치인은 방송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울로만 모이는 인구 집중 현상과 지방소멸 문제는 결국 같은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럴듯하고 경제학자다운 말투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충격을 받았다.
정말 같은 문제일까?
‘이 사람은 정치적 수사 외에 자신의 지역구이기도 한, 진짜 지역 문제에 대해 고민한 게 맞을까?
본인이 지역기반 정치인이지만 이들에게 삶의 터전은 그저 서울인가?
청년 문제도, 지역 문제도 결국 자신의 일은 아니구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왜냐하면 청년문제, 지역의 인구감소, 서울집중화, 삶의 질과 서비스, 관광객 증대, 복지 등등
모든 문제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두 각기 다른 원인과 해결을 모색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모두가 좋아할 일이지만 인구감소 만으로는
지방은 절대 소멸하지 않는다.
행정구역이 통합되거나 분리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없다.
주민이 “저는 행정구역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게 되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어떤 국민도 자신의 거주지가 어느 시나 군에도 속하지 않는 상황에 당면하지는 않는다.
포르투갈에는 약 300개의 지방정부가 존재한다.
인구가 적은 곳도 많지만 각자 역할을 수행한다.
어떤 지방자치단체는 인구가 1만 명이 채 되지 않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몇몇 지역은 사실상 하나의 생활권으로 움직이고 있다.
마창진(마산·창원·진해),
속고양(속초·고성·양양) 같은 사례들이다.
이런 지역이라면
쓰레기 소각시설이나 화장장 같은 공공시설을 각각 따로 만드는 것보다
연계협력으로 공동시설을 만들거나
행정 자체를 통합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일 수 있다.
실제로 통합 창원시가 그런 사례다.
하지만 창원시가 통합되는 동안
많은 다른 지자체들은 통합을 외면했다.
주민들은 대체로 찬성했지만
지자체 공무원들은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선출직 공무원에게도 시장이나 군수 자리가 하나 줄어드는 일은 작지 않은 위협일지 모른다.
님비 시설을 각자 따로 지으면 비용은 더 많이 들고
입지도 비합리적으로 배치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 논의는 쉽게 진전되지 않는다.
각자 나름의 셈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지방소멸이라고 쓰고
지자체소멸이라고 읽는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이 실은
대한민국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을지도 모르는 일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덩달아 정치인들도 모두 확성기를 켠다.
"지방을 살려야 합니다." "지방이 살아야 미래가 있습니다."
"지방을 살릴 테니 저를 찍어주세요." 지방은 원래 자립이 불가능하니 돈을 줍시다.~~"
밑 빠진 독에 물은 계속 주입된다. 물은 사라지지만 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명목은 매번 다르지만, 농촌에는 10년 룰 같은 것이 있다.
10년 돈을 붓고, 또 10년 돈을 붓는다.
한 가지 재미있는 장면도 있었다.
정보화 사업이라며 농촌에 컴퓨터 몇 대를 들여놓고
어르신들에게 인터넷을 가르치던 시절이 있었는데,
정작 K-어르신들의 학습 속도가 더 빨랐다.
그래서 십 년이 지나도 고스톱 게임이나 메일 보내기 정도를 목표로 삼는 정보화 교육은
오히려 현실보다 뒤처진 사업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시골길을 지나다가 정보화마을이라는 간판이 보인다면
AI시범마을이라고 읽으면 안 되고, 꽤 오랫동안 관리를 안 한 동네라고 읽으면 된다.
아직도 간판 철거를 안 했으니 말이다.
어촌 출신 대통령이 오면 새로운 돌파구가 생긴다.
이번에는 <소멸>이 아닌 <뉴딜>이다.
뉴딜정책은 미국도 살린다.
어촌에도 10년 돈을 부어보고.
10 가구가 사는 곳에 100억이 주어져도 지역을 살리는 일이니 모두가 합심해야 한다.
주민들이 돈만 나눠 갖는 일이야 말로 포퓰리즘이라는 부조리이므로
예산을 집행하는 사람들과 지역업자들이 협력해서 체계화된 거버넌스 안에서 돈을 사용한다.
그래서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주민들을 위해서는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한다.
단체 여행과 잔치라는 제도다.
하드웨어가 중요하지 않다고 역설하며 각종 교육과 금전이 오갔지만
결국엔 하드웨어라도 남겨야 돈낭비가 감춰지므로,
온통 자연인 시골에 공원이 들어서거나 운동시설이 설치된다.
좀 어려운 거버넌스 용어일 수 있지만
"근거를 만든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