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브랜딩 한다는 것

도시브랜딩 연작 ② - 슬로건과 로고

by 이강훈

지금의 이야기는 아니니까


내가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왜 저렇게 기념식수를 자꾸 하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인간적이고 친환경적이던 시절이었다.

나무를 심고 나의 지위와 존재를 작은 비석에 새긴다니

즐겁고 귀여운 발상이다.


어느덧 마천루의 위요감조차 익숙해져버린 시절을 살고 있어서인지,

그런 식재된 기념수는 더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복합문화센터 같은 눈에 띄는 '건축물'이 '기념비'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 후에는 얼마나 돈이 들어가든

많은 지자체들이 (해당 도시계획의 틀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자치단체장이 바뀌면 로고를 새롭게 만들던 시절도 있었다.


경제에 활력을 주고 정체된 정책에 자극을 줄 수 있다면

<브랜드 교체> 역시 하나의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나 로고, 슬로건이 형식 그 자체가 되어버리고

여기저기 자치단체들이 최고를 외치는 순간, 브랜드의 목적 중 하나인 <차별화>는 거품처럼 사라진다.


심지어 자기 지자체만 바라보고 로고를 만들다 보니 웬만한 도시들은 모두

산과 물(바다/강), 들판이나 해가 등장한다.

해당 도시를 분석해 보니 산이 있더라는 놀라운 발견이다.

일반 기업이라면 기획자는 민망했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절차가 더 까다로운 자치단체들이 이런 디자인에는 쉽게 합의가 이루어지고

각종 문서에 '기본타입'으로 그 로고가 출현한다.

(그래도 '동트는 동해'를 만든 동해시의 태양 모양은 나에게는 꽤나 설득력 있었다.

동트는 동해인데 해가 아니라 나무가 등장한다면 그야말로 모순일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난 슬로건을 보고 역으로 '도시를 읽는 방법'을 터득했다.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금세 파악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다.

이미 도시 전체를 분석하고 여러 이해관계자의 합의를 거쳐

해당 도시의 미래상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해 놓았으니 그야말로 로고나 슬로건은

도시의 원액임이 분명하다.


어느 땡땡시의 슬로건이

예를 들어 <우주최강 땡땡시>라면 이미 두 가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우주최강이 되고 싶다는 것과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것.


특별한 도시인 서울시조차 자주 그것들을 바꿨지만

I·SEOUL·U에 이르러서는 문제의 원인을 좀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시민들이 반발하고 왜 반발하는지 이해를 못 하니 말이다.

중앙일보의 2023년 4월 28일 기사

위의 기사에서 보듯 결국에는 교체하게 됐지만,

당시에는 서울시에서 하는 팟캐스트에서조차도

진행자들은 이해가 안 된다며 그 의미를 거듭 묻고, 서울시 담당자들은 또 반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실무자들이 정작 진행자들보다도 도시 브랜딩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슬로건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너 사이에 서울이라는 단어를 두었다라던가,

서울 영문표기 알파벳 'O'자리에 오가 아닌 한글 이응을 뒀으니 글로벌이라는 식의 주장은

청취자들을 더 화나게 했다.

"오가 아니라 이응이에요",

"어법에 안맞는게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서울'이라는 단어를 둔거라고요."

하는 식의 의미부여는

시민들이 마치 그걸 알아차리지 못해서 반발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농심의 라면 이름으로는 손색이 없지만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그 도시의 슬로건으로 납득하기는 어렵다.

사실 로고나 슬로건이 뭐 그리 중요하길래 시민들은 그런 반응이 있을까?

중요하지 않다. 다만 수준에 안맞을 뿐.

원래 어떤 로고나 슬로건이 만들어져도 어느 자치단체든 논란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지자체들이 주민의 의견들을 청취하면서 고작 산과 물을 그리는 이유다.

하지만 왜 그렇게까지 '아이 서울 유'는 웃음 거리가 되었을까?


이유는 단 하나, 도시브랜딩에서

'도시'가 아닌 '브랜딩'에 방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서울을 여럿이 사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보지 않고 로고나 슬로건 과제 쯤으로 보면 교감하기 어렵다.

브랜딩 전문가 입장에서는 당연히 "브랜딩의 어원은 소의 낙인찍기였으며..." 부터

브랜딩이나 마케팅의 학술적 의미를 분명히 잘 아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에르메스>도 단기간에 할 수 없는 것이 브랜딩이라는 사실만 알아도

더 큰 단위인 도시가 홍보 마케팅을 통해서 브랜딩 된다는 인과관계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에 반복해서 많이 인용되는 선진사례가

아이러브 뉴욕, 암(아임) 스테르담인데

그런 '로고나 조형 작업이 도시의 브랜드 이미지를 바꿨다'는 주장에서

도시를 마케팅의 대상물로 보면

그 관점이 시민들에게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마케팅 분야의 사람들은 <아이러브뉴욕 캠패인 사례>가 죽어가는 뉴욕을 어떻게 살리는지 배운다.

바우하우스가 건축분야에서는 건축이지만

디자인 분야에서는 디자인기관이고

미술분야에서는 조형학교이듯이 말이다.


조적구조가 왜 무거운지를 빼고 바벨탑을 보면 인간의 신에 대한 오만이 보인다.

여기에 수긍하지 않는다면 일본 구마모토현의 사례나

파리바게트가 어떻게 프랑스를 유명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갈지 모른다.


보통사람들은 오히려 처음 인용한 중앙일보의 기사처럼,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는 듯한데

로고나 마케팅 전문가들에게는 다르게 보이는지 이상한 일이다.

도시브랜딩 ≠ 도시브랜딩업무


"도시는 유기적 생명체입니다"라는 <놀이>도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지만 종종 인용된다.

제인 제이콥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2000년대 초반에도 근사한 말인 것처럼 많이 인용됐었다.

"도시가 콘크리트가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라고요?"와 같은 반응을 기대해서지만,

안타깝게도 도시라는 한자어는 이미 물리적인 지칭이 아닌

도읍 도(都), 시장(저자) 시(市)

정치와 경제가 어우러진 사람 사는 곳을 의미한다.

도시를 유기체들이 사는 곳으로 보면 안 되는 이유다.


도시 브랜딩 중 하나의 '요소'인 슬로건 만들어보기, 로고 디자인하기, 비전 설정하기 등등은

도시의 결과물이 아닌 첨가물인 셈이다.


도시 기본계획은 미래의 비전과 목표인 만큼 현실에 발은 디디더라도

현황을 묘사하여 그리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 미래를 그려야 한다.

도시브랜딩에 수반되는 슬로건이나 로고 작업들은 도시의 창의적인 미래를 지향하더라도

그것들이 도시 그 자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도시는 계획할 수 있지만 예측할 수 없고,

지향하지만 지향 자체가 지향점 도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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