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이 여기까지인 듯
어렸을 때 우상이었던 조선펑크의 상징, 크라잉넛 멤버들과 함께 일본의 한 선술집에서 맥주잔을 부딪히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세월을 실감했지만, 여전했고 그게 바로 ‘음악’의 힘이 아닌가 싶었다. <잔다리 페스타>에서 섹스 피스톨스의 글렌 매트록과 노브레인, 모노톤즈 출신의 차승우와 크라잉넛 멤버가 한 무대에 섰다(힙합으로 치면 투팍과 타이거 JK, 나플라가 함께한 셈). 타워레고드와 같은 음반(정확하게 CD)을 파는 곳에서(혹은 그 앞에서) 약속을 하고 꼭 좋아하는 뮤지션의 CD가 아니더라도 또 구매를 하지 않더라도 ‘아이쇼핑’을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록카페에서 맘에 드는 곡을 메모했다가 ‘디깅’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곡을 공테이프에 녹음해 나만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드는 재미도 쏠쏠했다. 멜론을 쓰지만, ‘마이뮤직’ 폴더에 좋아하는 뮤지션의 앨범을 잔뜩 저장해놓았지만. 애플뮤직을 쓰지만, ‘FOR YOU’로 내 취향의 앨범을 귀신같이 추천해주고 요일 별로 심심치 않게 좋은 앨범을 발견하지만 예전의 ‘쏠쏠한 재미’는 없다. 편리해진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닌가 보다. 그래서일까 전 세계적으로 LP열풍이 불고 있다는데. 카세트테이프도 새로운 형태로 발매가 되고 있기도 하던데. 그때 그 시절의 ‘쏠쏠한 재미’를 그리워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 일일지도. 먼 미래에 뮤직 키드들이 어떤 형태로 음악을 접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그리워하게 될지도. 삐삐 음성사서함에 잔뜩 힘준 나지막한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음성을 남기고 싶은 흐린 가을 날씨에 마감을 하며...
201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