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PEACE
‘평화’는 ‘전쟁’의 반대말이 아니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 전쟁의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는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 복무’라는 의무를 진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위험요소를 직접적으로 체감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해외 언론 등에서 대한민국을 ‘시한폭탄’과 같은 이미지로 바라보고 있으니. 그렇다면 ‘평화’의 사전적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 평화
1. 평온하고 화목함.
2. 전쟁, 분재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
_네이버 어학사전 검색 결과 발췌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평화’라는 의미를 거론하자면 ‘전쟁’이라는 국가적인 대립 관계를 통한 분쟁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겠지만, ‘나 자신에게 평화는 어떤 의미일까?’라는 주제로 곰곰이 생각해보면 거창할 필요가 없다. 살면서 느낀 평화로움 중 ‘음악’을 통해 느꼈던 에피소드를 찬찬히 꺼내 보려 한다.
군 전역 후 ‘젬베’라는 서아프리카 타악기에 매료되었다. 가슴을 울리는 베이스와 손바닥과 젬베의 표면이 닿는 느낌, 서로 다른 폴리 리듬으로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는 쾌감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내가 하는 연주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나의 소리와 다른 사람의 소리를 함께 듣는 연습, 무언의 소통. 조금 오랜 시간 연습을 하고 연주가 길어지면, 젬베 솔로에 맞춰 댄서가 춤을 춘다. 아니, 댄서의 발에 젬베 솔로 연주가 즉흥적으로 맞춘다고 해야 맞다. 원시적인 놀이로 사람의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고 만족시킨다. 그리고 ‘젬베’라는 매개체로 서로 소통하고 하나가 되면 소란스러운 북소리와 함께 고요한 ‘평화’가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온 악기를 통해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음악의 힘이 위대하다.
에스닉한 차림으로 노닐던 시절, 홍대 앞 놀이터는 말 그대로 놀이’터’였다. 모든 사람을 위한 놀이터. ‘찡(스터드)’이 박힌 가죽자켓 차림에 닭 머리(모히칸)를 한 펑크 로커들은 매일같이 ‘난장’판을 벌였고, 영화 <원스>에 감명받은 수많은 통기타 키드들이 쏟아져 나와 버스킹의 장을 만들기도 했다. ‘걷고 싶은 거리’도 마찬가지, 요즘처럼 ‘일반인의 소름 돋는 라이브’를 위해 MR을 크게 틀어놓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수노래방’ 안에 있었고, 버스킹의 탈을 쓰고 앰프의 볼륨을 경쟁하듯 높이지 않았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젬베 연습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어디선가 빈 소주병이 날아들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어이가 없었고 너무 화가 났다. 소주병이 날아든 방향은 놀이터 그네 앞. 항상 진을 치고 있던 펑크 로커들 쪽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일단 다가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거친 겉모습과 다르게 젠틀한 태도로 바로 사과를 해주었고, 소주병을 던진 만취한 친구를 나무랐다. 솔직히 시비를 걸어오는 거라 여겼으나 몇 마디 나눠보니, 오히려 ‘순박함’이 느껴졌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울 정도. 지나가던 홍대 앞 터줏대감 디제이 형이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한마디에, 해맑은 표정으로 손바닥에 떡볶이를 담아온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그들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사실 펑크 로커들의 ‘난장’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조금 거칠어 보였지만, 자기들의 취향을 마음껏 뽐내며 좋아하는 것을 찾아 몰려다녔을 뿐. 그 당시 홍대 앞 놀이터의 ‘평화’는 비둘기와 펑크 로커들이 지키고 있었다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한마디 더 보태자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고 서로 다른 삶에 대해 인정하면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소셜네트워크에서 쉽게 쓰는 ‘소통해요’란 한마디가 어쩌면 무시하지 못할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버닝썬 게이트’ 관련 뉴스를 접하고 ‘클럽’이라는 문화 혹은 장소를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브 공연이 진행되는 곳을 ‘클럽’으로 알고 있던 시절, 처음 ‘춤을 추는’ 클럽을 찾은 시기는 ‘클럽 데이’가 생겨난 시점이었다. 생소했지만 재미있었다. 입장 팔찌 하나로 여러 장르의 음악을 각 클럽을 돌아다니며 즐길 수 있었다. 같은 장르의 음악이 흐르는 클럽도 각기 분위기가 달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취향에 맞는 클럽에 발길이 머무르게 되었다. 처음 접하는 음악이 나오는 클럽이 특히 흥미로웠다. 작은 규모의 클럽들은 꽉 들어찬 곳도 있었고, 텅 빈 곳도 있었다. 클럽컬처매거진 <블링>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디제이, 클럽 운영진들과 친해졌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건 본인들이 추구하는 ‘음악’에 대한 고집과 열정이었다. 어려워져서 문을 닫는 클럽도 있었고, 규모를 늘려가는 클럽도 있었다. 홍대 앞 클럽 문화가 대형화되면서 강남권으로 넘어왔을 때, 우려의 시선도 있었지만 오히려 반가웠다. 평소 접하지 못했던 해외 유명 아티스트의 내한이 이어졌고, 규모와 퀄리티 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긍정적인 발전만 있었던 건 아니다.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뉴스를 참고하면 되니 언급하지 않겠다. (*현재 시점에서 강남클럽에 대한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준 믹스맥의 기사를 참고해도 좋다.http://www.mixmag.kr/4131)
클럽에서 밤새워 노는 사람들이 모두 맘에 드는 이성을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음악에 취해 다음날까지 혹은 며칠 동안 개인적인 ‘쾌락’을 향유하는 문화를 일컬어 ‘레이브’라고 한다. 시작은 버려진 창고, 농장, 차고 등이었다. 파티의 무대를 클럽이 아닌 곳으로 옮기기도 하고 때로는 야외에서 즐기기도 했다. 단순히 몇 시간의 파티가 아니라 10시간, 길게는 일주일 정도 진행되는 일상으로부터 탈출, 테크노 파티가 성행하던 시절의 무드를 묘사하는 단어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 ‘레이브’에 대한 정확한 정의나 의미는 너무 방대하니 따로 검색해보길 권장한다. – 하나의 놀이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 레이브는 철저히 정치색을 띠지 않고, 개인적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기본이다. 힙합 음악을 즐기는 래퍼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Peace.’처럼, 레이브 문화의 슬로건은 ‘PLUR’다. Peace, Love, Unity, Respect.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그 파티는 치명적인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장이 되지 않았을까? 힙합신의 래퍼들이 ‘피스’를 입버릇처럼 부르짖는 것처럼 클럽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P.L.U.R’의 마인드를 뿌리내린다면, ‘클럽’이란 문화 그리고 장소가 요즘 뉴스에 나오는 것과 같은 이미지는 아닐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 않은 클럽들이 더 많다.
<‘에스테반’의 평화 플레이리스트>
Bob Maley - Redemption Song
어쿠스틱한 전주로 시작되는 이 곡은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곡이다. 곡의 멜로디와 분위기그리고 목소리만으로도 낙관적으로 기쁨의 반란을 꿈꿨던 그의 ‘소울’이 느껴진다. 이후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커버했으며, 개인적으로 레게 싱어송라이터 ‘태히언’의 커버 라이브를 추천한다. 물론 공연장에서만 접할 수 있다.
The Chemical Brothers - Hey Boy Hey Girl
일렉트로닉 음악에 선입견을 깨준 곡으로, 클럽에서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록 넘버를 능가하는 다이나믹한 흐름은 플로어의 클러버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2007년 페스티벌 현장에서 라이브로 접했을 때의 밤하늘의 공기는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선우정아 - 알 수 없는 작곡가
작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18 스페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노동당사 앞에서의 선우정아의 라이브는 정말 ‘신의 한 수’였다. ‘Music is my life.’를 외치는 그녀의 진심이 와 닿았다. 올해는 어떤 감동이 기다리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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