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가진 이들은 나이가 들면 몸의 변행이 찾아오면서 온갖 통증에 시달린다. 특히 뇌병변장애인들은 불수의적인 움직임과 몸의 마비 등으로 자세가 올바르지 못한 탓에 각종 디스크가 발병된다.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는 뇌병변장애인에게 단골 질병이다. 나 역시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있다. 병원에서는 10년 전부터 목디스크 수술을 권유하고 있다. 디스크가 심해서 수술을 받아야 한단다. 그런데 이미 나는 20대 후반에 경추 수술을 크게 받은 적이 있다. 20대 중반부터 허리 통증이 갑자기 생기면서 밤 중에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증에 시달렸다. 이 통증을 완화시키려고 동네 정형외과를 비롯해서 허리 디스크 전문 병원까지 찾아다녔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고, 일부 병원에서는 너무나 쉽게 허리 수술을 해 보자는 말만 했었다. 허리 수술...? 나의 짧은 상식으로 생각해도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해야 하는 나의 생활 방식에서 '허리 수술을 해 버리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과연 수술 후에 효과는 얼마나 갈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수술을 안 하기 위해 애쓰며 지인이 소개해 준 뇌병변장애인 전문의가 있는 대학 병원에 가게 되었다. 나의 통증이 해결될 것이란 기대를 품고 그 대학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결과를 들었다.
검사 결과, 목 뼈에 금이 가 있다고 했다. 최근에 골절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붙지 않았던 것 같다며 어떻게 그동안 살았는지 주치의 선생님이 나를 신기하듯 쳐다봤다. 의사 선생님 말을 들으며 불현듯 어릴 때 일이 떠올랐다. 어릴 적에 물리치료를 받다가 제대로 서지 못한다는 이유로 치료사에게 빰을 쎄게 맞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나이가 6~7살이었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만 해도 맞으면서 치료를 받아도 훈육 차원으로 여겨졌던 시절이었다. 빰을 맞았던 그날 이후로 목이 계속 아팠다. 엄마는 내가 엄살을 피운다고 아프다는 나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다가 며칠이 지나도 계속 아프다고 하니까 그때서야 엄마는 나를 안고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니 목 뼈가 금이 갔다고 했다. 목 뼈가 골절된 것이다. 곧바로 나는 응급 환자로 분리되어 예술가 프리다칼로처럼 상반신 전체 깁스를 하게 되었다. 생애 최초로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었다. 한 달이 지나 병원에서 퇴원했다. 퇴원하고 나서도 깝깝하고 무거운 상반신 깁스를 6개월 동안 착용하고 있었다. 가족은 6개월이면 뼈가 다 붙고도 남았을 거라며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집에서 깁스를 풀게 했다. 하지만 뼈는 붙지 않았던 거다.
어느 날 10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장애도 더 악화되었다. 그때부터 금이 간 목 뼈 영향이 신경 쪽으로 오면서 장애를 더 진행시켰던 것은 아닌지. 나도, 엄마도 침묵 속에 후회를 하고 있었으리라. 그렇다고 이제 와서 후회를 한들 죽은 신경이 되살아날 것도 아니고, 어쨌든 통증의 원인이 금이 간 목 뼈 때문에 신경이 자극되어 허리 통증까지 이어지는 거라며 의사는 목 수술을 꼭 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수술을 안 한다면 장애가 더 진행돼서 와상 장애까지 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수술도 간단한 수술은 아니라며 경추 1~2번 쪽에 금이 가 있고, 하필 그 부위가 가장 위험한 부위라 큰 수술이 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나는 바로 결정했다. 장애가 더 진행된 삶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수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완고한 내 선택에 엄마는 따라줬다. 수술 전날에 의사 설명을 듣기 전까지 말이다. 수술 전날에 신경외과 의사는 엄마에게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준 모양이었다. 워낙 큰 수술이다 보니 수술하다 죽을 수도 있고, 쇼크가 와서 코마상태가 될 수도 있으며 지금보다 더 심각한 장애가 올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단다. 어느 부모가 그 설명을 듣고 수술을 시키고 싶어 할까. 엄마도 의사 설명을 듣고 사색이 돼서 돌아와 수술하지 말자고 내게 말을 하였다. 그때의 나는 수술 도중에 어떻게 되는 것보다 중증으로 진행되는 장애가 더 싫었다. 그래서 끝까지 수술을 하겠다고 고집했고, 결국 내 고집을 꺾지 못한 엄마는 수술을 허락했다.
9시간 정도의 수술이 진행되었다. 수술 이후 3주가 넘도록 응급상황이 이어지며 생사를 오갔다. 신경외과에선 수술이 잘 되면 일주일 후에 재활의학과로 넘어가서 재활받고 회복하면 된다고 했지만, 나의 회복 속도는 나무늘보보다 더 느린 속도로 아주 조금씩 회복될 뿐이었다. 수술하고 나서 일주일은 마비된 신경이 풀려서인지 언어장애가 없어진 것처럼 말도 잘 나왔는데, 시간이 지나자 뇌병변장애 특성이 나오기 시작되면서 수술 부위에 강직이 심하게 오고 말았다. 몇 십만 원짜리의 보톡스 주사(미용 시술 주사로 알려졌지만, 애초에 뇌병변 장애인 근육 치료제 만들어졌다)를 2주의 한 번씩 맞았다. 경과가 좋지 못한 탓에 입원기간은 매우 길었다. 대학 병원을 나와서 또 다른 재활병원으로 옮겨 다녔다. 거의 1년 가까이 병원에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지겹도록 병원생활을 했지만, 몸이 쉽게 회복이 안 되었다. 2년 넘게 양한방 병원을 오가며 그토록 무서워하던 주삿바늘이 익숙해져 갔다. 어느 날부터 내 몸에 주사 꽂는 모습도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3년 전, 씻고 옷 갈아입으며 바지를 올리려고 활동지원사가 일으켜 세웠는데, 갑자기 다리 힘이 풀어 주저앉을 뻔했다. 주저앉으려는 나를 막아보겠다고 활동지원사가 내 허리를 너무 꼭 안았다. 힘이 너무 가해졌는지 그때부터 허리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서둘러 다니던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한 달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괜찮아지는 듯했다. 그리고 기립을 하는 게 허리 통증에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 고가의 전동휠체어를 대출을 받아서 구입 헸다. 남들은 돈이 많아서 산거라고 말을 하지만, 중증의 장애를 가진 나는 삶을 지켜낼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 사회 시스템은 제한적이고 제한된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최대한 정해진 사회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야 한디. 따라서 나는 내 장애에 대한 방어를 할 수밖에 없고,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장애 혐오자'가 되어 더 이상 장애가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뿐이다.
올해도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그래서 허리에 좋다는 치료와 약, 운동을 다 동원시켜서 받고 있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우습게도 몸은 나아졌는데 카드빚은 쌓였다. 이 같은 상황을 경험하며 나는 예전보다 건강 염려증이 더 심해졌다. 아프면 다 돈이다. 이 말이 실감 났다. 아파도 마음 놓고 아플 수 없는 세상에서 나는 중증 건강 염려증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