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뻐끔거리는 이야기

by 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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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SNS에서 영화 관련 광고를 보게 되었다. 장애여성이 주인공인 듯한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꼭 찾아보는 습관이 있다. 이번에도 습관적으로 영화를 찾아봤다. 하필 구독을 안 하고 있는 OTT 플랫폼에 있는 영화라서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결제 완료.


이 영화는 뇌성마비를 가진 6학년 학생 멜로디 브룩스라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멜로디는 언어장애로 인해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기 어려워 문자판을 이용해야 하며 휠체어를 사용한다. 또한 멜로디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똑똑하며 재치 있는 소녀이기도 하다. 그러나 장애로 인해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단정 지어버려 멜로디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어느 날, 멜로디의 가능성을 알아본 젊은 연구원 캐서린 레이은 그녀를 통합 교육 프로젝트에 참여시킨다.

통합 학급으로 가게 된 멜로디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로즈라는 친구와 관계를 발전시키며 또래 친구 문화를 알아간다. 하지만 음성 언어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멜로디는 소외감을 느끼며 AAC(보완대체의사소통)를 필요로 한다. 고가의 메디토커(전자 음성 장치 기계)를 얻기 위해선 보험 혜택이 필요했고 보험으로 메디토커를 얻으려면 멜로디에게 활용할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테스트 시험에서 통과해야 됐다. 말도 안 되는 테스트 시험에서 통과하지 못했지만, 연구원 캐서린 박사의 도움으로 메디토커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멜로디는 메디토커를 사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되면서 학교생활도 적극적으로 임하며 위즈 키즈라는 퀴즈대회에도 나갈 결심을 한다. 하지만 교사와 학생들의 편견과 차별로 인해 퀴즈대회 나가는 게 순탄치 않다. 결국, 멜로디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교사와 학급 친구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전하며. 차별을 향한 싸움을 이어나갈 것을 다짐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오랜만에 괜찮은 영화를 본 것 같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어렵게 학교를 다녔던 어릴 적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8살이 아닌 10살이 돼서야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마이너스였던 시절, 돌봄의 지원이 오르지 가족의 몫이었기에 중증의 장애인 내가 학교에 보내지는 것은 사치였다. 그렇다고 영화 속에 주인공처럼 특별히 뛰어난 지능도 없었고, 매일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업어서 나가야만 하는 구조인 집에서 나를 굳이 학교에 보낼 이유가 없었다. 그나마 엄마는 나보고 한글이라도 익히라며 학습지를 배달시켜 주었지만, 일 년이 되도록 한글을 익히지 못했다. 한글조차 모른 채 나이만 먹어가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엄마는 집에서 가까운 특수학교를 찾아내 입학시키기로 마음먹으셨다. 하지만 매일 업혀서 나가야 할 처지에 학교 가는 일은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반대했다. 아버지 반대에 부딪힌 엄마는 한글을 익히는 동안만 학교에 보내보자고 애걸복걸해서야 나를 특수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막상 학교에 보내지자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모든 걸 흡수하기 시작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계단만 있는 2층 집에서 업고 내려와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워서 학교에 보내졌다. 그 일상이 몇 년이 지나자 아버지에겐 하기 싫은 일과가 되어갔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내가 거실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본 뒤부터 툭하면 이제 그만 학교를 자퇴하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그런 아버지를 엄마는 부단히 설득하며 하루만 더, 일 년만 더..... 파리 목숨처럼 연장해 갔다.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까지 다닐 수 있었다. 6학년이 되자 담임 선생님은 나의 진료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하기 했다. 특수학교가 초등과정만 있었던 터라 중학교 진학을 어디로 할지 고민이 필요했다. 담임은 나 정도면 비장애학생들과 같이 일반(통합 교육이 막 시작될 무렵이라....) 중학교에 가도 별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초등학교도 간신히 다녔는데, 중학교라니.... 한숨 소리만 내셨다.

그 당시에 나는 대문자 E의 성향을 가진 것처럼 매우 사교적이었고, 활발한 성격에 모든 걸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과도한 자신감이 충만했던 시기라서 나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힘을 얻어 일반 중학교에 진학하겠다고 매일같이 울고불고하며 단식 투쟁까지 하면서 고집을 부렸다. 엄마는 나의 고집에 못 이기고 불같이 화를 내는 아버지에게 빌어서 중학교만 나오게 해 보자고 2차 협상을 했다. 두 모녀의 성화에 백기를 든 아버지는 승낙을 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승낙이 떨어지고 나서 나는 알 수 없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입히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입지 못했던 치마를 비록 교복 치마지만 매일 입을 수 있게 되었고, 6~7명이 있는 작은 교실이 아닌 몇 십 명의 학생들과 큰 교실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드라마에서만 보던 '진짜 학생'이 될 것만 같았다. 이 환상은 중학교 진학 시험(무슨 시험인지 기억이 안 남. 성적 순위로 반을 나누기 위한 시험이지 않았을까 추측됨.)인지 모르는 시험장에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진학할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는 날에 좁고 흔들거리는 책상에 앉게 되었다. 특수학교에선 넓고 무거운 책상이 있어서 아무리 앞으로 기대고 있어도 넘어질 일이 없었는데, 이 책상에서는 내가 시험지에 답안을 적으려고 하는 순간에 앞으로 확 엎어지고 말았다. 덕분에 나도 책상과 함께 앞으로 꽝당. 그 교실에 있던 애들이 모두 나를 향해 시선이 고정되었다. 장애 학생에 대한 지원이 경사로뿐이었던 그 학교에서의 첫날이 사고는 향후 나의 학교 생활 미레였음을 그땐 알지 못했다.

대문자 E의 성향에서 지금의 소문자 i로 바뀐 것은 아마도 이 학교에서부터 인 거 같다. 장애 학생을 받을 준비가 하나도 안 되었던 학교는 선생님들을 비롯해서 같은 반 아이들까지 편견과 차별이 일상적으로 습관적으로 나에게 쏟아냈다. 한 선생님은 장애로 인해 삐뚤게 앉을 수 없는 나의 앉은 자세를 지적하며 1년 내내 괴롭혔다. 머리는 왜 짧다는 둥, 특수학교 출신이 우리 학교에 왔다는 둥... 온갖 트집을 잡아내서 수업 시작 전에 폭격을 가하듯 나에게 쏘아댔다. 같은 반 친구들도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잘해 주다가 내가 나이가 두 살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서히 왕따를 시켰다. 왕따가 시작되면서 내 모든 행동이 왕따의 이유가 되었다. 특수학교에서는 모든 걸 주도하였던 나인데 나는 점점 소심해지고 활기를 잃어갔다. 언어장애를 가진 나는 제대로 항의도 할 수 없었고, 영화에 나오는 멜로디 부모처럼 당당하게 대응해 주는 부모도 내겐 없었다. 나는 힘을 잃었다. 학업도 뒤처져갔다. 학교를 다닐 이유가 없어졌다. 결국, 1학년조차 마치지 못하고 아버지가 그토록 바랐던 자퇴를 하고 말았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영화 속에 나왔던 멜로디의 지지자들이 그때의 나에게는 없었다. 만약 나에게도 지지자가 있었다면 조금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사실 지금의 삶도 그리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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