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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첫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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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스블루 Aug 14. 2015

이제는 일어날 때도

첫 번째 이야기

이제는 일어날 때도 되었다.
런던, Hyde Park 에서

첫 며칠은 눈이 떠지면 침대에서 일어나 아침을 (대부분 아점을) 먹었고 잔뜩 배를 채운 뒤에는 몇 걸음 걸어 소파에 앉았다. (사실대로 말하겠다. 누웠다.) 그러고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폰으로 시간을 때우고는 했다. 한 주가 지나고부터는 친구들을 잠깐 만나기도 하고 보지 못한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간다거나 문득 읽고 싶은 책이 생겨 책을 사러 서점에 가기도 했다. 좀 정상적인 생활패턴으로 돌아가 보려 노력했지만, 더위 때문이었는지 곧잘 외출을 하더라도 금방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자고 먹고 소파에 앉아 시간 때우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이젠 정말 더없이, 더더욱 소중한 두 친구와 떠난 자유 여행에서 많이 느꼈고 경험했으며 무엇보다 즐기고 돌아왔다. 어디를 가고 무얼 먹었는지 여느 사람들처럼 세세히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생각, 나의 감정만큼은 놓치지 않고 담아오려고 노력했다.


무얼 보았는지에 대해서는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 언젠가 또 다시 올 거라는 생각에 그 순간 순간만을 즐기는데에 집중했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에 내가 느끼는 것들은 한번 잊으면 다시 되살려낼 수 없는 것이기에 그토록 열심히 적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전부터 난 무언가 마음이 답답하고 잘 안 풀릴 때면 글을 썼고 그러고 난 뒤에는 마음이 한결 편해지곤 했기에 여행 중 남기는 글들은 평소라면 한 달이라는 시간 안에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담아두기에 충분했다.


한 달 간의 여행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가져다주었다. 친구들과의 잊을 수 없을 소중한 추억이 되었고 또 다른 청춘의 한단락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아니 과분한 기회였다. 그토록 갈망하던 유럽을 온몸으로 느끼고 올 수 있었다는 것. 매일을 다리가 터질 듯이 걸어야 했고 7월의 끝자락으로 갈수록 찌는 듯한 날씨는 우리를 압박해왔지만, 그에 따라 우리는 불평하고 잠시 멈추어 쉬기도 했지만, 감히 하루하루가 행복했다고 말해두고 싶다. 발이 갈라지고 땀이 흐를수록 나는 나에 대한 것들이 더더욱 선명해짐을 느꼈고 내 안의 것들이 채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막연히 상상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그것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눈을 반짝이며 여행했고 비록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긴장이 풀려 반짝여야 하는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지만, 정말 누구보다 자신에 가득 차서 한국에 돌아왔다.

피렌체에서
내  머릿속 것들을 하나하나 현실이 되게 하리라.

내가 머리로만 생각했던 일들을 얼마간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만의 감정에 잔뜩 부풀어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무적의 힘이 생겼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가면 마치 나의 일상이 이전과는 너무나 달라져서 매일을 바쁘게 보람차게 보낼 것 같았다.


막상 돌아와보니 그렇지 않더라.

항상 그렇듯, '내가 정말 다 컸다. 많이 성숙해졌다.'하는 생각이 들어도 어느 순간  보면 나는 그저 배울 것 투성이에 처음인 것 투성이인 사람임을 깨닫는다. 이번엔 정말 다르다고 생각해도 지치고 느려지는 시간은 오기 마련이고 첫 여행에서 헤어 나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머리 속은 온통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더 보고 느끼고 싶다는 생각. 괜히 더 조급해지고, 비교하게 되고 점점 내 안으로 컴컴하게 들어가기만 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종종 카톡으로 보내 놓으시면 읽곤 했던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들이 생각났고 정말 가만히 있지만 말고 무어라도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혹여 붙는다 하더라도 무엇을 써야 할지 적당한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여행에서의 그 포부들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무기력해진 상태였다.


며칠 뒤 정말 감사하게도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라는 메일이 도착했다. 이메일 인증을 하고 프로필 사진을 넣으면서도 얼떨떨했다. 이젠 정말 무얼 써야 하는 건가. 이 무기력함에서 하루빨리 헤어 나와야 하는 건가. 솔직히 말해보자면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에 정말 감사하고 설레었음에도 일주일이 넘게 글을 쓰지 못했다. 조금씩 쓰다가도 금세 막혀버리고 엉켜버렸다. 너무 조급했어서일까. 하루아침에 많은 것이 바뀌기를 기대했던 나에게, 조금은 답답하고 느리더라도, 부모님에게 뭐라도 좀 하라고 잔소리를 듣더라도, 마음을 덜어낼 시간을 주었던 것 같다. 나만의 욕심을.

이제 슬슬 나를 일으켜 세우려 한다. 건강한 마음으로 적당히 즐겁고 자신감 있게.

이제는 일어날 때도 되었다.


Epilogue.

정말 며칠을 고민했지만, 결국 내린 결론은 먼저 여행 중 썼던 글들을 매거진으로 옮겨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는 대학교 1학년, 새내기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느낀 것들은 물론이고 그저 든 생각들을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그것이 이 글들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공감이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소소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깃거리일 수도 있으니까요.  오래전 기억 속에 조용히 흐르던 이상은 씨의 노래, '삶은 여행'처럼 제가 그토록 갈망하는 여행이 꼭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도 여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저를 어필해야 할 때면 항상 하는 말이에요. "저는 오래 두고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멈추지 않고 꾸준히 써나가려고 합니다. 브런치에서도, 그 이후 어딘가에서도. 부끄럽고 조심스러운 첫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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