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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스블루 Feb 02. 2016

겨울잠에서 깨어나

중간이 아닌 어느 한쪽을 향해

나는 잠을 많이 잔다. 그냥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아, 저는 잠이 좀 많아요." 정도의 변명이 아니다. 어디든 머리를 기대면 금세 잠드시는 어머니의 멋진 능력은 닮지 못하고, 잠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나다. 그럼에도, 한번 잠이 들면 일어날 줄을 모른다. 늦은 시간에 잠들면 단연 늦도록 일어나지 못하지만, 이른 시간에 잠들어도 마음만 먹으면 같은 시간에 눈을 뜬다. 순식간에 하루의 절반을 잠으로 보내버리는 나이기 때문에, 몇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도록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를 대어 보라 한다면 "잠을 자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어요."라는 말을 해도 적당할 것 같다. 누군가는 "이 무슨 배부른 곰이 겨울잠 자는 소리야."라고 할 테지만, 아마도 지금의 나는 겨울잠을 자다 막 깨어난 곰이 맞는 것 같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대부분이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겨울이 되면 식량을 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 긴 잠을 자처한다. 나는 갑자기 찾아온 내 안의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아직은 스스로의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을 기르는 중이라, 그리고 내 안의 식량이 바닥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겨울잠을 잤다.

나는 갑자기 찾아온 내 안의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겨울잠을 잤다.


작년 한 해, 겉으로는 별다른 변화 없이 순식간에 지났을지 몰라도 실로 수많은 감정들이 나를 스쳐갔다. 원래 마음먹은 대로였다면, 내게 특별한 길을 제시한 '브런치'에 그 감정들로 한 해를 정리하는 글을 썼어야 했다. 며칠을 앉아 고민했지만, 나는 선뜻 써 내려가지 못했다. 지난 열두 달이 내게 남긴 여러 생각들이 어떤 한 마음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지는 못했기 때문에, 소란하게 떠도는 마음의 조각들을 잔뜩 안고 새 해를 맞이했다. 그렇게 2015년의 마지막 두 달을 포함해서 2016년의 첫 달이 지나도록,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다. 아니, 선뜻 쓰지 못했다. 브런치가 아닌 개인적인 공간에서는 일부러라도 조금씩 글을 써나 갔다. 나름 연습의 차원에서 글쓰기를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브런치에는 도저히 아무 말도 쓸 수가 없었다. 어떤 말을 해도 변명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게 브런치라는 공간은 내가 확고하게 느낀 감정을 그 어느 때보다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곳이자, 그것을 통해 내가 얻은 것들을 정리함으로써 공유하는 공간이다. 매거진의 제목대로 글로써 정리하는 과정이 날 다독이는 점도 좋지만, 혹시라도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잠시라도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기왕이면, 괜찮은, 기억하고픈 이야기로.



누구나 그랬듯, 겨우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던 초등학교 때에는 매일 써야 하는 일기를 꾸역꾸역 썼고, 그 이후로도 몇 년의 짧고도 길었던 학창 시절 동안 수없이 읽고 써야 하는 시간들이 나를 지나갔다. 읽어야 할 때는 묵묵히 읽었고 써야 하는 때에는 가만히 앉아 썼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는 계속해서 주어진 두 가지 행위가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스스로 찾아 읽고 쓰기에 이르렀나 보다. 모르겠다. 어떤 이야기로 시작해도 너무 거창해질 것 같아서 쉽게 이어가기는 어렵지만, 나는 '글쓰기'라는 행위가 단순한 표현의 방식을 넘어 유행처럼 퍼져나가는 요즘을 긍정적으로, 또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리고 동시에 어느 누구만큼이나 '글쓰기'를 관심 있게 이어 오고 있는 사람이다. 막연하게 글을 쓰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이어 오던 중, <브런치>라는 나름의 창구를 접했다.  무심코 시작한 또 다른 형태의 '글쓰기'가 가져온 주위 사람들의 감사한 반응(예를 들어, 가벼운 칭찬에서부터 깊은 응원까지)과 또 누군지 알지 못할 분들의 따뜻한(내게는 충분히 과분한) 관심을 통해 나는 혼자만의 글쓰기가 아닌 새로운 '글쓰기'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 경험은 소중했다. 내가 훗날 꿈꾸는  그것보다는 덜할지 몰라도, 내가 잠깐 동안은 감히 '작가'라는 허세스런 자아도취에 휩싸일지라도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감정이었다. 노력해나간다면, 좋은 글을 쓴다면, 언젠가 부끄러움 없이 내가 '작가'라고 불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커졌다.



하루, 이틀 막연히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갈수록, 그리고 계속해서 쓰고 읽을수록 또 다른 한 가지 생각이 커져갔다. '아, 부족하다.' 욕심이 커질수록 나는 얼마나 무지한지를 묻게 되었다. 맞춤법 실수는 눈감아주어 볼지라도 신문기사의 한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내가 무엇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 설사 이야기하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렇게 쓸 수 있을지라도, '글쓰기'를 계속해서 잘 먹고 잘 살아갈 수 있는가를 자문했다. 누구나 자신의 글을 내보일 수 있고, 또 그만큼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 '글쓰기'를 업으로 삼기란 너무나 막연한 일이었다. 젊은 청춘들에게 '넌 나중에 뭐로  먹고살거니.'라고 묻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지금이다. 차라리 꿈이 무어냐 묻는다면 그에 걸맞은 희망 가득한 이야기를 늘어놓겠지만, 그들의 질문에 '글 쓸 거예요.'라고 당당하게 내뱉지 못하는 나를 마주했다.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다. 글을 쓰면 쓸수록 욕심이 커진다고, 그러니 그 욕심을 잘 다스리고 계속 써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특히나 이제 막 쓴다는 즐거움을 맛보고 허둥대는 내게, 위의 고민들은 한낱 어린 곰이 맛있는 게 너무 많아서 뭐부터 먹을지 모르겠다고 투정을 부리는 모습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그 어린 곰의 열두 달에도 겨울이 있다. 다시 새 겨울이 다가오자, 어린 곰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식량을 마주한다. 그리고 예고 없이 뒤바뀐 추위에 떤다. 홀로 마주한  첫겨울, 곰은 아직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혼자서는 체온을 조절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은 곰은 추위와 함께 감싸 오는 두려움을 안고 긴 겨울잠에 든다. 그리고 알지 못할 긴 꿈을 꾼다.


"그냥 난 중간이 좋아. 적당한 것."


새로움을 원하고 도전을 일삼았지만, 정작 중요한 선택의 순간 앞에선 중간을 택했다. 어느 누구도 무어라 평가하기 애매한 중간을 택했다. 나는 적당히라는 말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냥 적당히 괜찮은 만큼만 하면 되겠지. 공부를 할 때도, 적당히 혼나지 않을 만큼만, 필요할 때 조금 열심히 해서 웬만큼 당당할 수 있을 정도만 했다. 두 친구의 싸움에 대해서도, 어느 한 편을  들기보다는 적당히 두 명 다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그렇지만 나름의 정당한 입장을 취하곤 했다. 당연히, 싸움에 휘말리는 일은 절대 없도록 했던 것 같다. 누구도 마음 상하지 않고, 기분 좋게 이어갈 수 있도록 생각하고 행동했다. 누군가는 내게 맘 편히 살 수 있어서 좋겠다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난 비겁한 사람이라고 했다. 적당히 살기 좋은 환경에서, 큰 어려움 없이 유유히 살아간다고 했다.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려운 문제를 직면하고 싶지 않아서, 복잡해지는 게 싫었기 때문에 애초에 그러한 일들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먼저 생각했고 미리 정리했다.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아서 먼저 웃어 보였고, 재수가 하기 싫어서 공부했고, 한량 같은 대학생인 것이 죄송해서 매일을 고민한다. 가끔 중간이 아닌 다른 한쪽의 상황을 직면했을 때는 잠을 잔다. 복잡한 감정을 한껏 털고 일어나 기분 좋게 마주한다. 난 적당히 괜찮다는 얼굴로. 나의 이런 모습이 누구에게는 비겁하거나 혹은 여유로운 것이겠지. 이런 나의 회피적 성향이 나로 하여금 많은 일들에 도전할 용기를 주었고 또 동시에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포기해도 마음이 괜찮은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내 입에서 '글 쓸 거예요.'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내뱉자마자 허공으로 흩어져버릴 일이라는 생각에 말하기 어려웠다. 아버지는 버릇처럼 내게 말씀하셨다. "무엇 하나에 불같이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 네가 가진 것들이 아무리 많아도 열정적으로 몰두하지 않는다면 모두 소용이 없단다." 그럴 때면, "나도 하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다 알아요."라고 무작정 대답해버리곤 했다. 항상 알고는 있었지만, 이제야 내 입으로 처음 내뱉어 본다. 나는 적당히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생각으로 얼마나 많은 생각을 스쳐보내고 그만두었을까. 수많은 변명들로 포기하고 너무나 쉽게 웃어보였던 것 같다. 겨울만 잘 보내면 다시 따뜻한 시간이 돌아왔으니까. 겨울은 그냥 자버리면 되니까. 


작고 어린 곰은 긴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간밤에 꿈이 남긴 잔상에 대해 생각했다. 곰은 나지막히 홀로 속삭였다. '근데 글은 잘하고 싶다. 잘 쓰고 싶다. 중간 만큼이 아니라, 적당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좋은 글을 쓰고 싶어.'


분명 지금 난 부족하다. 기본적인 상식도 놓치는 것이 많고, 중간에 포기해버린 공부가 많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때도 많고, 아직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도 수도 없이 많다. 지금 내가 어떠한 가를 몇 마디 말들로 묘사해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의 글들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중간'이 아닌 어느 한쪽을 갈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만의 신념으로 살아가며, 따뜻한 생각, 따끔한 생각들을 정리하여 좋은 글을 써 내려가고 싶어 졌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계속 써나갈 것이고 직면한 문제들을 고민해나갈 것이다. 추워도 그 추위를 그대로 느껴보기로 했다. 닥쳐오는 변화들에 체온을 조절하기 어려워도 잠들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작은 곰이 한순간에 다 자라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계속될 겨울을 한번, 두번 이겨내다 보면, 언젠가는 그 추위를 익숙하게 맞이하겠지. 이번만큼은 적당히 '중간'이 아니라 그 너머의 것을 향해 나아가보려고 한다.  



많이 늦었습니다. 이번 글의 사진들은 1월에 다녀온 싱가폴 여행의 사진들입니다. 길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를 통해 저는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응원하기도 합니다. 괜히 감사하다는 제 마음 한번 더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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