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내면은 끝이 없는 우주 같다
다섯 딸 중 넷째 딸로 태어났다는 것은
곧 나의 정체성의 뿌리가 되었다.
부모님은 아들을 간절히 낳고 싶었다.
피임 같은 것은 잘 몰랐다.
아니, 할 이유가 없었다.
아들을 낳고 싶었으니까.
셋째 딸 까지는 선도 안 보고
시집을 보낼 수 있다니 오케이.
넷째 딸은 너무했다.
엄마의 마음은 체념 상태였고,
외할머니는 나를 낳은 그날 그 시간,
욕을 하고
미역국도 안 끓여주고 떠나셨다.
막내는 괜히 이쁜 법.
부모님의 논리는
부모와 가장 짧은 시간을 보낼 거라
불쌍하다 했다.
그럼 나는?
언니랑 싸우면 동생이 버릇없다 하셨다.
동생과 싸우면 속 좁다고 하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결핍감이 컸던 것 같다.
많이 외롭다고 느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그래서일까.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온통 어두침침한 검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던 듯하다.
나보다 예쁘고, 똑똑하거나,
잘 사는 아이들을 보면 시기심에 화가 났고,
학교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면
제대로 응수하지도 못한 채 집에 와서
스스로 답답해했다.
잘 살지도 못하면서 다섯 아이나 낳아서
하고 싶은 것도 지원해주지 못하는 부모님을 원망했고,
친구의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거나 받아 들을 수 없어 절교 선언을 했다.
인생은 무의미해 보였고,
세상은 따분했고, 나는 무력감에 빠졌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아주아주 밝은 빛에 둘러싸여 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책 읽기와 글쓰기에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고,
내 내면에 있던 분노와 불안감을 마주했다.
네가 잘못된 것도 있을 테지만 내 안에 문제가 상대방을 비추는 거울이 된 것도 알게 되었다.
네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조금 되짚어보면 이해가 안 될 것도 없었다.
조금씩 내면에 에너지가 생기게 되면서
나는 이르지 않은 나이에 요가강사가 되었고,
14년 이상 독서모임의 리더로서 책을 읽고 나누게 되었다.
9년 이상 첼로를 배우면서 선율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뿐 아니라 만들어내는 기쁨도 누리고 있다.
햇살 따뜻한 호수공원을 걸으며 자연이 주는 치유의 손길을 만끽하게 되었고,
이 세상이 내가 보는 눈에 따라 얼마나 예전과 다를 수 있는지 보고 느끼며
경이감에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계속 나를 알아갈 것이고,
너에 대해서도 온정 어린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예전엔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상상해보곤 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우주보다 더 넓고 깊은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