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을 친구삼아
책은 나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다.
만약에 내가 책이 아닌 다른 것을 좋아하고 탐닉했다면 어땠을까.
내가 어렸을 때 동화책이나 다양한 책이 집에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방문판매를 하던 삼성문고 아저씨의 호객행위에 넘어간
엄마 덕분에 우리 집에는 세계명작전집과 세계위인전전집이 있었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 내내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며 시간을 보내었다.
다 읽고 나서, 또 다른 책을 읽고 싶다거나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그저 집에 있어서 읽었고, 별다른 책이 없으니 또 읽었을 뿐이다.
그때부터 나에게 책은 운명과 같은 것이었다.
특히나 추운 겨울이나 무더운 여름에
책 읽기 외에 할 일도 없었다.
누런 표지가 닳아 찢어지도록 읽다 보면
간혹 조그만 벌레가 지나가기도 했다.
내 어린 시절은 온통 잿빛인데,
전집의 표지마저 누런 잿빛이었다.
집에 자연관찰책이나 다양한 책들이 있었으면
내 상식이 더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 딱 대학생이 된 큰언니가 '동의보감'이라는
소설 3권을 사서 읽었다.
나는 언니가 다 읽고 놓아둔
책을 읽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걸어가면서도 읽었다.
여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도,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책을 읽었다.
친구가 말했다.
"니, 진짜 책 좋아하는 갑다."
"그건 모르겠고, 진짜 재미있대이."
사실 나는 동의보감 속 내용이
다 이해되지는 않았다.
역사에 대해 배경지식도 부족했고,
잘 모르는 단어도 많았다.
그런데 허준이 시험을 치러 가는 중에
아픈 사람을 만나서
치료하고 보살피는 장면이나,
스승이 제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해부를 위해
내어주는 장면은 뭔가 숭고한 느낌이 들었고,
마음 깊이 감동이 일었다.
문제는 내가 여고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부반장과 반장을 역임한 것도 있고,
해야 할 공부가 많아서 그렇게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지 못한 것이다.
여고 도서관에는 너무 오래된 책들이어서 손도 대기 싫었다.
서점이나 시립도서관에라도 가기엔 시간 자체가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입시에만 매진해야 하는 그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 책이라도 많이 읽었으면 좀 더 버티기가 쉬웠을 것 같다.
그러다 대학교 UBF 기독동아리이자, 선교단체에서
나는 물 만난 물고기가 되었다.
새로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지하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는데,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도 볼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식당 한쪽의 룸 같기도 한 크기인데,
벽을 둘러 책장에 책이 즐비했다.
특히나 그곳의 사람들이 읽고 가져다 놓은 신앙책도 많았고,
역사책과 소설도 있었다.
작은 도서관은 나에게 큰 힐링의 장소였다.
시험기간과 중요한 일정 외에는
그냥 거기서 살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머물면서 책을 읽었다.
너무너무 행복한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단점은 지하다 보니 공기가 밀폐되어
잠이 스르르 오는 것인데,
당시에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엎드려서 잤다가
밖에 갔다가,
또 피아노를 치다 그러면서
인생에서 가장 충만한 시간을 보내었다.
김성일 씨의 소설은 성경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것이었는데,
흥미진진했고,
'막 쪄낸 찐빵' 같은 책은
신앙을 막 가진 사람의 열정이 묻어나는 책이었다.
그 시절 나는 신앙책을 가장 많이 읽었다.
그래서 나는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매일 신앙책 읽고 성경 읽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내가 곰곰이 따져봤을 때,
캐나다가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일단 영어권이고, 선진국이고,
지성인들이 신앙을 저버리고 있다고 여겼다.
복음을 전한다는 빌미로
복음전파라는 숭고한 사명조차
나의 복지와 미래를 위한 도구가 되었음을
인지한 것은 먼 훗날이었다.
대학교 시절 나는 거의 매일 한 권의 책,
매일의 성경 묵상과 기도,
매주 1편의 소감문 쓰기와 성경공부,
그리고 시즌별로 수련회에 맞춰 준비한 성경공부와
특강과, 주제소감 쓰기 등을 통해
글쓰기를 배우고 실천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대학교 앞의 서점에 가서
책 10권을 골라 놓고 훑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여러 권의 책을 올려놓고
읽어 내려가노라면
더 좋은 친구는 없었다.
나는 겉으로는 늘 웃고 밝고 재미있고
유쾌했지만,
책 이외에는 그 누구와도 마음을 깊이
나눌 수 없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삶의 무게를
책을 읽으며 피했는데,
결국 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또 해결책도 알게 되었으니
책으로의 여행이야말로
나에게 온 최고의 우연이고 행운이었다.
책을 친구 삼아 지낸 학창 시절은 나에게 축복의 시간이었다.
그러면 지금은?
물론 지금도 책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나의 가장 좋은 친구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