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

생각이 너무 많은

by 에스더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일 수도 있고,

해결되지 않은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떠다녀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주 뛰어나진 않지만, 평균보다는 훨씬 높은 아이큐도 한몫했을 것 같기도 하다.


몇 가지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어느 날 집에 누워있는데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에 떠다니는 수많은 먼지를 보았다.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먼지가 너무 많았다. 부유하는 먼지들을 보며

신기하게 느꼈다. 국민학교 1학년 정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럼 또 생각하는 것이다.

먼지는 도대체 무엇일까?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럼 나는 먼지를 많이 먹고살겠구나.


그러면서 떠오로는 생각을 잘 얘기하지는 못했다.

일단 감정을 이야기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고 조소나 핀잔을 듣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 수많은 말들이 머릿 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이었다.

친구한테 판타롱스타킹 값 400원을 빌려주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여자중학교에 다녔고, 맨살로 다니면 안 되었다. 교복을 입진 않았고, 주로 무릎까지 오는

치마를 입었는데 스타킹을 신어야 했다. 얇은 스타킹은 손톱에 걸리거나 살짝 만져도 올이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여학생의 경우 올이 나간 스타킹을 신는다는 것은 칠칠맞지 못하게 느껴졌다. 같은 반 친구가 올이 나가자 매점에서 스타킹을 사기 위해 나에게 돈을 빌린 것이었는데, 다음날 그 친구가 돌려주질 않았다. 그럼 그냥

어제 빌린 돈 달라고 말하면 되는데, 그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언제 할까, 과연 그러면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등등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이틀 후에 말하니까 그 친구는 깜빡했다며 바로 돌려주었다.


언젠가부터 내 정신이 버티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불안이 너무 높아서 꼬리에 꼬리를 물로 걱정이 이어졌다. 내일 소풍을 가는 일로, 준비물 챙겨야 하는 일로, 낮에 학교에서 야단맞은 일로, 실수한 일로 나는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수많은 생각뿐 제대로 실천하지도 못한 채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버렸다. 그러고도 국민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결석 한 번 없이 개근을 한 것은 기적인 것 같다.


그리고 대학교에 다니면서도 적성에 맞지도 않고, 몸도 피곤하고 따라주지도 않는데도 술을 너무 마신 탓으로 위장병까지 나서 나는 지쳐있었는데, 어떻게 졸업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도 없었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재미도 없었는데 꾸역꾸역 다녔다.


신앙의 힘으로 버텼고, 그래야 될 것 같아서 버텼을 뿐 나는 너무 힘들었다. 외롭고 쓸쓸하고 앞길이 막막했다. 누가 나를 알면 사랑해줄까 싶었고, 그 누구도 있는 모습 그대로 다가가서 좋아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나에게는 누군가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에릭슨에 따르면 영아기 때 습득되어야 할 발달과업이 신뢰감인데 나는 거기부터 잘못된 것일까.


다섯 딸 중 넷째로 태어났다는 것은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아들을 간절히 바랐다. 나는 엄마 태에서 이미 버림받았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있지 않아 동생이 태어나서 또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도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며 존재를 드러내려고 애썼는가 보다.


그나마 한글을 일찍 떼고 혼자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나는 책 속으로 빠져들었고, 또 글을 쓸 수 있게 되면서 내 마음을 표현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이렇게나마 쓸 수 있어서 살 수 있는 것 같다. 나에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나를 살렸다. 수없는 의문들이 해소가 되었고, 이해가 되었고 나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해서도 알아갈 수 있었다. 글을 쓰며 내 삶을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이 많았던 과거에 비해서는 운동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많았던 생각보다 표현하고 살아가게 되었고, 정신적으로 뿐 아니라 몸도 건강해지게 되었다.


뭐든 과유불급인 것 같다. 생각은 적절히 필요하지만 너무 과하면 지쳐버리니까.



금요일 연재
이전 01화나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