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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니아 Sep 09. 2019

땡글이의 하루

- 동그랑땡처럼 동글동글 살면 좋겠어

   

오늘 아침 땡글이 기분은 100점이다. 주말에 이사한 집이 썩 만족스럽다. 집 앞의  2차선 횡단보도를 건너 30미터만 올라가면 학교 정문이다. 전에 살던 25년 된 아파트는 6층까지 걸어 다녀야 했는데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까지 씽씽 올라가니 상쾌하다. 땡글이가 사는 101동 바로 앞에는 ‘망고 플레이트’ 베스트 맛집에 오른 <소울 브레드>가 있어서 오고 가며 무슨 빵이 몇 개 남았는지 체크하는 것도 재미있다. 아침에 먹은 프레즐은 발효 반죽이 쫍조름하면서 씹을수록 고소한 게 맘에 들었다.


“엄마, 나 오늘은 여기서 잘게.”

어젯밤, 땡글이는 베란다에 내놓은 트럼폴린 위에 아기 때 쓰던 솜이불을 얹어 침대를 만들었다. 다리를 뻗기에는 짧은 침대라 앉은뱅이 의자를 연결하고 베개를 얹었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밤 풍경은 화려한 도시의 삶을 꿈꾸는 열한 살 땡글이의 로망을 만져준다. 이곳이 그녀의 펜트하우스인 셈이다. 점점 더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은 중년 엄마의 시계와는 다른 시간 속을 흘러가고 있다.  


“우리 귀염둥이 잘 잤어? 너 베란다 창문에 부딪혀서 아래로 튕겨나가면 어쩌나 걱정되더라".

"응, 엄청 잘 자긴 했는데 목이 아파. 베개가 높았나 봐.”

“그러게. 목이 많이 불편해 보이던데...”

“난 그래도 여기가 맘에 들어. 불빛이 반짝이는 게 낭만적이야.”

“흐흐 땡글이가 좋아하니 엄마도 기분 좋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오늘따라 아빠가 늦게 귀가했다. 주방에서 지글지글 부침개 지지는 냄새가 고소하다. 점심에 두부 요리로 유명한 식당에서 공짜 비지를 잔뜩 담아 온 엄마가 고사리, 숙주, 돼지고기에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비지 부침개를 부쳤다. 소주 한잔을 곁들여 저녁 식탁을 차리니 아빠 기분이 단숨에 엘리베이터를 탄다. 모처럼 엄마랑 아빠랑 식탁에서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운다.


“땡글아~~ 너도 나와서 부침개 좀 먹어봐.”

엄마가 방에 콕 박혀있는 땡글이를 불렀다.

오늘따라 아빠도 본체만체하고 수첩에 뭔가 열심히 그리고 있다.

“우리 딸,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빠한테 뽀뽀도 안 해 주고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갑자기 땡글이의 눈동자가 커지며 입술이 부르르 떨린다.

“화나는 걸 참는 중이야. 오늘 기분이 최악이거든...”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엄마, 아빠한테 다 얘기해 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땡글이가 말했다.

“글세... 소민이가 내 앞에서는 친한 척하더니 뒤에서는 친구들한테 내 욕을 하고 다니는 거야. 어쩜 그럴 수 있어?”

아빠가 소주를 한잔 들이켜고 말했다.

“소민이한테 직접 물어봐. 네가 친구들한테 내 욕했냐고.”

“그래 그게 좋겠다. 혼자 속 끓이지 말고 직접 물어보렴.”

엄마가 아빠 말에 맞장구를 친다.  


“둘이 있을 때 말고, 꼭 다른 친구들도 같이 있을 때 물어봐!”

아빠가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그래야 소민이가 너 욕한 적 없다고 부인하더라도 뜨끔할 거야.

그렇게 해놔야 앞으로 너한테 함부로 못하고 조심하게 돼. “

아빠의 인생철학이 듬뿍 담긴 조언이다.

“오 그러면 되겠네~~ ”

땡글이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진다.

아빠의 DNA를 듬뿍 물려받은 아이답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그런데... 지난번에 소민이가 우리 엄마는 늙었고 자기네 엄마는 이쁘다고

자랑해서 기분 엄청 나빴거든”

“헐... 이 대목에서 왜 나는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는 거니?”

부침개를 집다 말고 엄마가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나도 삼십 대 땐 이뻤다고, 왜 이래~~”

“엄마, 그래도 나이에 비해 동안이야.”

“아 그래? 흐흐 고마워 땡글~~

"친구들 말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어. 엄마가 나이가 많은 만큼 경험도 많고 연봉도 높은 거야. “


“그래? 난 친구들이 함부로 말하면 못 참겠어. 얼마 전에 심리테스트했는데, 내 예민함 지수가 10 이래.”

“지수가 몇부터 몇 까지 있는 건데?”

“1부터 10까지... 그러니까 최강 예민!”

“우리 땡글이가 좀 예민하긴 하지."

"얼굴처럼 마음도 동글동글하면 좋을 텐데... 누가 싫은 소리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그렇게 둥글둥글 굴리면 살기가 훨씬 편하거든. “

“그런가?”


“응... 그런 의미에서 엄마가 내일 동그랑땡 만들어줄게. 고기 듬뿍 넣고 부추랑 두부 넣고... 또 뭐가 있더라...”

엄마의 오른쪽 다리가 묵지근해 내려다보니 그새 땡글이가 잠이 들었다. 쌔액쌔액 코까지 골며 엄마 허벅지를 파고든다.


‘엄마, 나 너무 졸려. 푹 자고  내일 동그랑땡 먹을게. Good night. 사랑해...’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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