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로니아 Sep 14. 2019

창백한 푸른 점

- 그렇다면 엄마는 어디에 있는걸까?  


5년 전 엄마가 떠났다.

그녀의 빈자리가 스산한 겨울 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다가 통곡을 했다. 인류가 이주할 새로운 행성을 탐색하던 쿠퍼가 미지의 블랙홀을 헤매다가 당도한 곳이 딸 방의 책장 뒤편임이 드러나는 장면은 내 세계관에 쇠망치를 내리쳤다. 지구에 있는 딸의 방과 중첩된 시공간 속에 우연히 자리하는 것은 물리학적 근거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천체물리학에 무지한 탓인지, 엄마와 사별한지 얼마 안 되어 그랬는지


‘그렇다면 천국은 어디에?’


라는 질문이 훅 들어왔다.

나도 육신을 벗고 나면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마음을 다독이며

‘만나 보자~ 만나 보자~ 그날 아침 저 천국 문에서’ 찬송을 불렀는데...

그렇다면 엄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천체물리학 박사이자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은 NASA의 우주 탐사 계획에 참여하며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1980년, 그는 태양계의 무인 탐사선인 보이저 1호의 카메라 방향을 돌려 지구를 촬영하자는 제안을 했다. 10년 후 마침내 보이저 1호가 61억 킬로미터 떨어진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촬영했을 때 희미하고 작은 점이 포착됐다. 칼 세이건이 이 사진을 보고 감명을 받아 저술한 <The Pale Blue Dot(창백한 푸른 점)>에서 그는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에서 흠칫 멈춘다. 


기독교 또한 그 중 하나가 아닌가?


Image from Pixabay


유일신 신앙을 강요하며 무수한 전쟁을 벌였고, 신의 뜻이라는 명분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인류역사 속의 무수한 권력자들이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아주 잠깐 차지하기 위해 무수한 생명이 피를 흘린 것처럼. 엄마의 칠십 팔년 생의 중심축이었던 기독교의 신념들. 천지창조와 구세주, 천국과 지옥. 모태신앙을 물려받고 4대째 크리스찬인 나는 스무 살에 '거듭나고'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다가 엄마의 죽음 후에 세계관 혼란을 겪는 중이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우주에는 1만 개의 은하가 있고, 하나의 은하에는 별 2천억 개가 모여 있다고 한다. 태양과 같은 별이 2천억 만 개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시공간. 그 우주의 지극히 작은 점 하나에 77억 명의 인간이 바글바글 모여 산다. 137억 년 우주 역사의 깨알 같은 한 지점인 100년이라는 찰나의 시간을 말이다. 여름에 극성을 부리다 찬바람이 불자 비실거리는 모기처럼 한 방에 납작해질 수 있는 존재인데...



Image from Pixabay


내가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살았다. ‘주의 보냄을 받은 자’라는 정체성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여호수아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해 용감하게 전진하다가 무쇠 망치로 세게 얻어맞았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어쩌면 나는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 엄마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가 평생 헌신한 해외선교회를 이어가겠다고. 그 신념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으니 마음이 무겁다.


지금 나는 창백한 푸른 점을 보고 있다. 절대자가 말씀으로 창조했는지 빛을 내는 먼지 덩어리들이 폭발하는 ‘우주의 사정’으로 생겨났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창백한 푸른 점’은 나에게 겸손하고 넉넉하게 품고 살라고 한다.


엄마는 아무런 유언을 남기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엄마가 보내는 메시지가 아닐까?




Image from Pixabay


작가의 이전글 땡글이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