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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니아 Sep 17. 2019

폭망인생 성찰하기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담론>을 읽으며

일요일 저녁 8시. 초계국수와 물만두로 저녁을 해 먹느라 삐질 땀을 흘린 채 총총 집을 나선다. 이웃 아파트 8단지 도서관에서 열리는 낭독회에서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담론>을 읽고 있다. 낭독이 주는 즐거움이 쏠쏠해서 달려오긴 했는데, 간밤에 잠을 설친 데다 요리까지 하느라 고단하다. 427쪽짜리 책은 제법 두툼하기까지.  


다섯 명의 낭독 멤버들과 추석 연휴 지낸 이야기를 주고받고, 밤꿀 한 병을 선물로 받고 분위기 좋게 낭독을 시작했건만! 한 시간도 안 되어 아훔... 하품이 나오고 등은 왜 이렇게 욱신거리는지 몸을 비틀며 간신히 책장을 넘기다가 잠이 확 깨는 문장을 만났다. 신영복 선생이 『주역』에서 발견하는 최고의 관계론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성찰’은 자기중심이 아닙니다.

시각을 자기 외부에 두고 자기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런 이런..... 성찰은 자기중심이 아닌 거였네!

시각을 외부에 두고 자기를 바라보는 것인데, 나는 여전히 나를 중심에 두고 관계를 점검하고 있었네.

이러니 매일 성찰한다고 생각했지만 관계가 막혀서 뚫리지 않았던 거로구나. 아하~~~


『주역』에서 얘기하는 관계론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고 뒤에 세우며,

자기의 존재를 상대화하여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절제’는 자기를 작게 가지는 것입니다.

주장을 자제하고, 욕망을 자제하고, 매사에 지나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미완성’은 목표보다는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게 합니다. 완성이 없다면 남는 것은 과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네 가지의 덕목은 그것이 변방에 처할 때 최고가 됩니다. ‘변방’이 득위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덕목을 하나로 요약한다면 단연 ‘겸손’입니다. ‘겸손’은 관계론의 최고 형태라고 할 수 없습니다.



Image from Pixabay


1장에서부터 신영복 선생은 존재로부터 관계로 나아가는 탈근대 담론에 관해 논의한다고 밝히고 있다. ‘개인주의적 사고, 불변의 진리, 배타적 정체성 등 근대적인 인식 틀에 갇혀 있던 나에게 감옥에서 손에 든 『주역』은 충격이고 반성’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받았던 충격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를 뒤에 세우고

나의 주장을 자제하고

나의 존재를 상대화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배치하는 것.

그렇게 살면 부딪칠 일이 뭐 있겠는가?


나를 중심에 두고

나를 앞세우니

마음이 부딪치고

관계가 삐그덕 거리는 것이지.  


시각을 외부에 두고 나를 바라보며, 관계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성찰.

내 인생이 폭망 했다고 느끼는 요즘,

진정한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Imag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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