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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니아 Sep 20. 2019

그 사람은 왜 자기 얘기만 하는 걸까?

과잉 자의식이 타인을 불편하게 할 때

혜민 스님의 칼럼 <과잉 자의식에서 벗어나는 법>을 읽었다. 제목이 시선을 잡아끌더니 첫 문장부터 술술 읽힌다.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지인들과 모임이 있어 나갔는데 그 모임에 나온 한 사람이 유독 자기 이야기만 끊임없이 하는 경우요. 보통 사람들이 모이면 그간 다들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 안부를 믿고 최근에 있었던 일을 자연스럽게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안부나 일상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자랑에 가까운 이야기만 끊임없이 하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처음에는 관심 있게 듣다가...(중략)
빨리 이 모임을 파하고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오지 않던가요?


어느 모임에나 이런 사람이 있긴 하지. 머릿속에 몇몇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례 1 : 여고 동창 Y


그녀는 유쾌했다. 고 3 때 같은 반이었는데, 미친 짐승의 울부짖음 같던 야자시간에 그녀는 늘 장난을 치며 깔깔거렸다. 짜증을 내거나 우울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힘들었던 고3 시절 내내 웃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Y는 일찍 결혼해서 아이 둘을 순풍 낳았다. 동창 모임에서 그녀는 아기 기저귀를 갈고 우르르 까꿍 하는 얘기며 자기 시부모가 어떻고 그들이 소유한 부동산이 몇 개라는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늘어놨다. 그녀의 얘기는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재방, 삼방 반복되는 게 특징이다.


당시 내 고민과는 전혀 관계없는 얘기를 반복해서 듣는 게 점점 불편해졌다. 나는 결혼은커녕 남자 친구도 없고, 취업은커녕 때늦은 유학 준비로 불확실한 미래와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Y는 단 한 번도 ‘너는 어떻게 지내?’ ‘힘들지 않니?’하고 묻는 법이 없었다. 고3 때처럼 유쾌하게 침을 튀겨가며 자기 얘기를 늘어놓았다. 몇몇 친구들은 다음 모임에는 Y를 빼고 만나자고 암암리에 눈을 맞췄다. 다른 사람의 안부는 묻지 않고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 게 나만 불편한 건 아니었나 보다.


사례 2 : 회사 선배 N


20년 가까이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N. 지금은 그럭저럭 친해졌지만, 전에는 점심을 같이 먹을 계기가 딱히 없는 소원한 관계였다. 업무적으로 나한테 빚진 게 있어서 그가 처음 점심을 사던 날, 나의 점심 식탁은 그의 대학시절 영웅담으로 초토화되고 말았다. 직장인에게 점심이란 24시간 중 가장 거룩하고 소중한 시간이 아니던가! 386세대 원조로 학생 운동에 가담했던 이야기, 그때 함께 운동했던 선배와 동기가 지금 국회위원 누구누구라는 얘기가 대화의 맥락과 관계없이 불쑥 치고 들어왔다.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보았지만 내 기술이 안 먹혔다. 번번이 제 자리로 돌아와 80년대 최루탄 냄새가 떠도는 밥을 떠 넣어야 했다. 점심 식사에 동석했던 사람들은 그러한 그의 행태를 이미 알고 있는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처음 접한 나한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의 ‘기-승-전-학생운동‘ 얘기는 지금도 변함없는 루틴이다. 이제는 나도 듣는 척하다 슬쩍 다른 얘기로 넘기는 기술이 생겼다. N선배에게는 대학시절이 ’ 이루지 못한 로맨스‘ 같은 그리운 그 무엇인가 보다... 이해하는 마음도 생겼다. 다만, 신입직원들 앞에서 자기 얘기만 늘어놓으면 꼰대로 찍히니까 그건 좀 끊어주곤 한다.    





사례 3 : ME. 나는 어때?


혜민 스님은 ‘우리 주위를 보면 이렇게 나르시시즘적인 자의식에 빠져 타인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라고 꼬집는다. 자의식이 비정상적으로 과대해지면 ‘타인들과 공감하지 못하고 본인만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거나,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중심에 나를 두고 자기중심적으로 오버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자의식 과잉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뜨끔해지는 걸 보니 나에게도 이 증세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나’와 내 삶이 너무나 소중해서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거나 계획했던 대로 승승장구하지 못하면 몸살을 앓으며 친구들에게 내 얘기를 늘어놓곤 했다. 내가 품은 꿈과 열정과 뛰노는 심장에 대해 낱낱이 얘기하며 공감을 요구하진 않았던가? 상대방이 지금 얼마나 고단한지, 슬픈지, 혹은 무력하고 권태로운지 살피지 않은 채 오롯이 내 중심으로 우주를 돌리지 않았던가? 그렇게 친구를, 동료를, 배우자를 지치게 하지는 않았는지 나를 돌아본다.

아, 어쩔...  








지난달 <자존감 수업>을 읽는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 모임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리더인 Peter Kim이 말했다.


여러분, 세상의 중심은 여러분이 아니에요.
나한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고 남들이 모두 나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과잉 자의식에 빠지지 말고 타인을 돌아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맥락의 얘기였을 텐데, 마치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혜민 스님의 얘기도 Peter Kim의 얘기도 내 귀에 헤드폰 끼우고 ‘꼭 들어봐’ 하는 것 같아서 심장이 뻐근하다. 혜민 스님은 과잉 자의식에서 벗어나는 법으로 타인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는 축복 명상을 권한다.


내가 남들보다 좀 특별하게 보이고 싶은데 남들이 안 알아줘서 힘들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도 어떻게 해야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타인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는 축복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자의식의 문제는 자꾸 의식이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식의 방향을 자기가 아닌 세상으로 되돌려서 타인의 안위를 걱정하고 행복을 소망하는 명상을 하면 좋겠습니다.


그래, 그래. 이렇게 해 보자. 좋은 건 당장해야지~~

나 자신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지 말고 렌즈를 타인에게 돌려보자.

나를 만나는 사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 지기를, 내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건강해지기를 축복하자구!



https://www.youtube.com/watch?v=47nhlB2_8v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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