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운전 일지 #4
지난 1월, 가족과 일주일 간 하와이로 여행을 갔다. 나는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하여 렌터카 픽업 장소에 가서야 오아후섬의 지도를 제대로 관찰하게 되었다. 오아후 섬의 고속도로는 일그러진 삼지창 모양으로 섬을 가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예약한 숙소가 있는 와이아네라는 지역은 고속도로가 국도로 변하는 길을 따라가면 있는 오아후 섬의 서쪽 해안의 맨 끝에 위치해있었다.
우리는 차에 짐을 싣고 호텔과 쇼핑몰이 밀집해 있는 와이키키와는 한 시간쯤 떨어진 와이아네를 향해 운전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40분쯤 달렸을까. 어느새 양 옆의 풍경을 가리고 있던 고속도로의 높은 벽은 사라지고, 살갗이 다 벗겨진 듯한 하와이의 모습이 보였다. 고속도로의 끝지점에서 보니, 큰 빌딩들은 저 멀리 한 지역에 기둥처럼 보였고, 주변은 낡은 집들이 낮게 언덕을 덮고 있었다. 와이아네 지역에 들어서는 순간에 서 있는 가로등에는 ‘이곳부터 관광객들이 구경할 것은 없다 (“There’s nothing to see for tourists from here”)’라는 성난 팻말이 붙어있었다. 와이아네 지역의 집과 상가들은 비가 온다면 그대로 들이치지 않을까 싶게 허름했을 뿐만 아니라, 해변가를 따라 홈리스의 텐트들이 자주 보였다. 집들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그 잡초 위로 세워져 있는 낡은 차들은 심지어 바퀴가 빠져있던지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하와이 하면 떠오르는 밝은 미소와 따뜻한 여유와는 거리가 먼 분위기였다. 주민들은 누가 봐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밝은 색의 옷을 입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들을 한 이 아시안 가족의 모습을 무심하면서도 궁금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는 듯 했다. 어쩐지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며 세 바퀴 정도 주변을 돌았을 때, 우리는 숙소의 주인과 연락이 닿았다. 우리가 묵게 된 곳은 길 안 쪽에 새로 리모델링된 귀여운 집이었다. 주인은 주변의 이웃들에 대하여 설명해주었다. 주변 이웃들은 집주인 대신 가끔 집 관리를 대신 해주기도 하며, 머물다 가는 손님들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도와주기도 하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것을 알고 나니, 내가 느꼈다고 생각한 성난 눈빛은 아마 사실 그들의 불안함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아마 그들 또한 자기네 마을을 기웃거리고 있는 이방인인 우리를 보고 똑같이 불안한 마음을 가졌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매일 110 고속도로를 타고 출근을 하지만, 가끔 차가 너무 막힐 때는 잠시 로컬 길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출근길에서 로컬에 해당하는 지역은 “엘에이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South Central LA 지역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지역이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일컬어지게 된 이유를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보통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그 이유를 그저 사건 사고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obivously.."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 말은 아마 “그 지역에는 흑인과 히스패닉이 많이 사니까 당연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이 지역에 해당하는 출구로 내리는 순간, 나는 정말 지상으로 툭! 하고 떨어진 듯한 기분을 느낀다. 고속도로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잊고 있던 세상의 촘촘하고 잔인한 경계를, 얇은 차체를 사이에 두고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언제 마지막으로 쓰였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불길한 폭력성마저 느껴지는 오래된 건물, 2019년도에는 없어졌다고 생각한 종류의 잡상인과 가게, 오늘 하루 어떤 목적으로 길을 나섰는지 짐작이 안 가는 불안한 기운의 사람들. 이들은 대부분 흑인과 히스패닉이다. 이들이 이 특정 지역에 모이게 된 것, 그리고 이 곳이 가난과 폭력의 멍자국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1900년대의 엘에이 인종차별의 역사에서 기인한다. 아주 복잡한 이야기를 정말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백인들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때 일감을 찾아온 흑인 인구를 정해놓은 지역에서만 살도록 가둬버렸다. 차후 법이 바뀌어 다른 지역에서도 거주하는 것이 가능해지자, 백인들은 그들의 집을 불태우는 등 폭력을 휘둘러 넘어오지 말 것을 협박하였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흑인들 또한 폭력으로 저항하게 되었다. 80-90년대에는 낮은 집세로 인해 또 다른 소수인종인 히스패닉 인구의 유입이 높아졌다. 최근에는 예전보다 범죄율이 많이 낮아졌고, 지역을 더욱 안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젊은 세대의 노력이 많아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지역은 그저 “유색인종 많은 위험한 지역”으로 불리고 있다. 도시 연구가들의 말에 따르면 뉴욕을 비롯한 모든 도시가 겪었듯이, 110 고속도로의 건설이 1950년대 이후 지역 간의 경계를 물리적으로 더욱 극명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더욱 아이러니하면서도 안타까운 점은, 2028년 올림픽을 엘에이에서 개최하게 되면서 South Central LA에 위치한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경기장들을 확장하여 이용할 계획이고, 그에 따라 이 지역이 젠트리피케이션을 크게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참고). 교육과 금전적인 지원을 통해 지역주민의 생활권을 살리는 것이 아닌,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바뀔 이 지역의 모습은 또 여느 괴물의 모습이 되어있을 것이다.
나는 정말 이 세상이 평화롭고 경계와 차별이 없는 곳이라고 믿고 싶지만, 사실 그건 고속도로 위에서만 도시를 바라보고 감상하려는 것과 같은 생각일 것이다. 엘에이에서 고속도로를 탄다는 것은 도시를 가장 아름다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곪아 터진 문제들은 대충 얼버무린 아름다운 희극이 되어 할리우드의 배경으로 삼고, 스모그 먼지가 너무 많아 퍼지는 빛 따위를 보고 감동하는 허세를 부리기에 딱 좋은 거리이다. 심지어 매달 일정 금액을 내면, 그보다 더 높은 고가 도로에서 꽉 막힌 일반 고속도로의 교통체증도 제쳐버릴 수 있으니, 이는 지상과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금전적인 여유가 있으면 있을수록, 도시를 낭만적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엄연한 경계가 존재하고, 이는 인류 역사의 변화와 함께 여러 가지의 탈을 쓴 채 표현되었다. 이전에는 노골적인 폭력으로 행사되었다면, 현대에는 고속도로와 경기장 건설 같은 도시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합리화된다 (물론 아직도 폭력으로 행사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나를 포함하여)이 교양 있는 체하며 "몇 번가는 지나가면 위험해"라고 하는 말은 마치 지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조언처럼 들리지만, 이는 사실 "몇 번가부터는 유색인종이나 홈리스가 많은 동네라서 위험한 지역이야"라는 차별적인 발언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불평등과 편견은 여러 형태로 구전되었으며, 매일 우리의 시선과 말투에 남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속도로에서 내려와 지상과 같은 눈높이로 다양한 세상을 보는 것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와이아네에서 나의 편견을 깨달은 이후로, 나의 출근길에서 보는 그들 또한 그저 나처럼 하루하루 일터로 가는 사람들이고, 학교를 가는 아이들이고, 집 안 청소를 귀찮아하며, 지금의 위치에서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4일 동안 오아후 섬의 여러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와이아네에 계속 마음이 쓰였다. 섬을 떠날 때쯤 되어서야 인터넷을 찾아보니, 홈리스 문제와 원주민의 일자리 문제 등, 무지개 빛이라고 믿은 하와이가 앓고 있는 많은 사회 문제를 떠안고 있는 지역임을 알았다. 하와이의 해결되지 못한 이야기들이 와이키키의 반대편 도로 끝으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 저 멀리로 내몰린 느낌이었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은 금방 고속도로로 변해 우리는 어느새 고가도로 위에 있었다. 와아이네는 어디 하나 멍자국도 보이지 않는 그저 먼 곳의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표지 일러스트: Kjell Reigst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