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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싱 요기니 Jul 08. 2024

0. 내가 다시 글을 쓰는 이유

나의 애도일지 그 후


2022년 4월, 이혼한 이후로 ‘나의 애도일지’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 글을 꽤 썼었다. 최근 몇 돌싱 친구들을 만나보면 다들 내 이야기를 듣고 무슨 이런 할리우드 부부가 있냐, 이런 이혼이 있냐, 마음이 아프고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라는 반응으로 기함을 한다. 실은 한국에서 흔치 않은 일이긴 하다. 우리는 아직도 (실은 얼마 전 내 생일에도, 아니 어제도) 연락을 주고받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용없지만 나의 행동을 후회하고, 다소간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서로를 그리워하고 그것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귀책사유 없이 ‘가치관이 맞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헤어졌다. 우린 학교/동아리/회사 공식 cc였고, 처음엔 정말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인냥 열렬히 사랑했고, 모든 지인들이 세기의 커플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고 성대한 결혼식을 하고, 지지고 볶았지만 5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왔고, 열렬한 사랑만큼 치열한 싸움과 상처 끝에 이혼할 즈음에도 여전히 가족애와 우정 그리고 빛바랜 사랑의 기억들이 많이 남은 상태로 소중한 내 가족을 ‘내가 살기 위해서’ 이혼을 요구하고 강행했기 때문에 시원하고 후련하고 미운 마음보다는 마음의 생채기와 회한, 슬픔이 그득하여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상태였다. 실은 분노의 상태에서 조금 지났을 뿐 나는 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으나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착각이었고 오만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그 당시에 내 ‘결혼 생활’과 관련된 모든 내 시간과 젊음, 사랑이라는 감정, 모든 헌신에 대한 ‘애도’를 하고자 ‘나의 애도일지’라는 이름의 일련의 글을 썼는데, 결국에 심리상담보다도 큰 자가 치유의 효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는 진심으로 내가 스스로 경험하고 느낀 산 증인이니 내 마음속에 모든 응어리를 가감 없이 게워내는 글쓰기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적어 내려가는 동시에 그리고 나는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나면 내 상처를 종이처럼 반으로 접어 서랍에 넣는다는 상상을 했는데, 치유가 되는 놀라운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주 시간이 오래 지나 아름답게 추억할 수만 있을 때 이 서랍을 열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이혼 즈음에 나의 불안 장애 증상과 불면증, 분노감이 극에 달한 상황으로 심장이 막 항상 터질 것 같음을 느끼고 항상 교감신경이 극도로 활성화되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길에서 막 졸도를 했다. 회사를 정상적으로 다니기 어려워 감사하게도 3개월이 조금 넘는 유급 휴직을 받았다. 7월 말 회사로 복귀했을 때는 회사사람들이 다른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많이 회복이 되었다. 가장 고치기 힘들다고 하는 불면증 만이 나를 따라다녔으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은 불면증도 모두 완치된 상태이다. 이례적인 휴직을 받았고 이혼 과정에서도 너무나 큰 지지와 응원을 받았기에 내게 아무 걱정 없이 이혼을 결정할 수 있게 해 준 회사에 고마워서라도 회복을 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또, 돌이킬 수 없이 엄중한 선택을 했기에 나 스스로라도 무조건 살아내야겠다는 생의 의지로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회복에만 집중한 결과였다. 몸이 건강해지고 복직을 하니, 새로운 환경에 다시 적응하고 홀로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해외에 주로 나가있다 내가 결국에 닻을 내리고 디딘 한국으로 돌아오니 자연스레 바빠졌다. 바빠지고 건강하니 자연스레 글쓰기와 멀어졌다. 그 사이에도 심리 변화는 항상 변화무쌍했기에 내심 애도일지의 방향과는 다른 그 어떤 ‘시간이 지나서 이 글을 봐도 내게 절대 바뀌지 않는 가치’를 가진 어떤 방향성이 마음속에 정해질 때까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늘 ‘아… 다시 글 써야 하는데, 이 모든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경이로운 인간의 감정 스펙트럼과, 나같이 어리석고 아주 오만하고 이기적이었던 한 인간이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을,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 이제야 매일매일 조금씩 더 마음에 드는 인간이 되고 있는 나의 성장기를 기록을 해야 하는데….’라는 걱정 반 의무감 반으로 글쓰기는 남아 있었다.


나는 어제 또 한 번의 이별을 했다. 이혼하고서 혼자 지내며 당연히 여러 번의 데이트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났지만, 내게 이제 누군가를 정식으로 ‘연애‘ 혹은 ’사귄다‘라는 의미는 이전보다 견디고 싶지 않은 중압감과 아주 대단한 결정이었다. 이미 혼자로서 너무 완벽하게 편안해서 필요 없는데 굳이 굳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수하는 의무감, 그리고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스스로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부담감과 맹세로 다가오기 때문에 결혼 전 만났던 그런 어리고 들뜬 연애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혼 후에 처음으로 큰 결심을 하고 제대로 한 사람을 사귀었고 5개월가량 많은 사랑을 주고받았으며 아주 많이 이뻐했었다. 즐거운 시간을 많이 기억한다. 그는 아이처럼 순수해서 내가 이런 귀중하고 성실한 사랑을 받아도 되나 싶은 생각을 매일 했다. 또한 나 스스로도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고,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경험을 통해 나의 일부분이 문제가 있음을 인식한 후였기 때문에 ‘내가 진작 이렇게 할 수 있었다면 전남편은 절대 마음이 아프지도 나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지도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이 매번 들 정도로 나도 참 노력했다. 우리는 잘 맞는 것은 극단적으로 잘 맞았고 안 맞는 것은 또 지랄 맞게 안 맞았다. 중도가 없어서 냉탕과 온탕을 마구 오가다 보니 이별은 예견된 느낌이었다.


연애 자체가 중압감과 대단한 결정이었던 만큼 나의 결정은 여느 연애와는 달랐던 것 같다.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태에 있었다고 해야 할까. 처음이었다.  백 몇십여 일간의 만남 중 일어난 다툼과 힘든 일들은 (그는 순수하고 성실한 만큼 미련하리만큼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사랑을 해서 종종 나를 불안하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그가 충동적으로 헤어지자고 한 말 이후에 여러 번 붙잡았지만 내 마음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나 또한 이전의 관계에서 했던 똑같은 실수를 강도만 약할 뿐이지 계속하여 하는 바람에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이제는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해서 꼭 함께 해야 하는 것도, 반드시 함께 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을 주고받는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언제나 사랑 위에 안온하고 평안한 내가 있어야 했다. 그게 더 중요한 절대 가치였다. 나는 내가 먼저 행복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절대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가 없다는 것을 이제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애원에 눈물이 나고 흔들려도 잡혀주지 않았다. 아니 눈물은 났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이혼으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또 한 가지 연애 도중에 깨달은 것은 실은 내게 아직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전남편에 대한 기억일지 회한일지 이전에 했던 반짝이는 사랑! 은 아니지만 가족애와 우정에 가까운 복합적인 감정들이 많이도 들어차 있어 그 사람이 비집고 들어오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오히려 연애 중에 전남편 때문에 종종 몰래 눈물을 훔치는 일이 많이 늘어났다. 나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서 그 사람에게 내 집중과 시간과 에너지, 자아의 큰 일부를 내어주고 헌신하고 마음을 다해 사랑하기엔 아직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곤 헤어진 밤, 모로 누워 잠을 청하며 다시 이 작지만 소중한 집에서 나 혼자가 될 수 있음에 안도했다. 혼자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는 또 헤어진 사실보다 이제 살아있는 가족을 도려내는 큰 이별을 겪고 나니 ’이별‘ 자체에 아주 무뎌진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이전처럼 울고 불고 하는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었다. 내게는 방어기제가 생겼고, 사실 이별이 몇 차례 예견된 순간부터 헤어지면 어떻게 하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지를 궁리하고 준비했던 것 같다. 내 감정의 혼돈과 일상의 파괴는 이미 겪을 대로 겪었으니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몇 가지 중대한 나에 대한 사실은 역시 아 겪어봐야 무조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아는 것이구나. 나는 또 오만했다.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러한 자기 관찰과 고민, 노력의 시간 끝에 다시 혼자가 될 수 있음이 다행이다. 또 이 연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 혼자의 시간을 보내야 할 명확한 이유가 생겼다.


이제야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속에 작은 욕망이 다시 꿈틀거리고 간지러운 것을 느꼈다. 매주 일요일은 집순이가 되어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소중한 날이다. 이 일요일 밤마다 위스키나 쇼비뇽 블랑 한 잔을 따라놓고 나의 이 혼자로서의 삶에 대해 한 편씩 써내려 가고자 한다.  


PLEASE STAY TUN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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