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조돈(木覓朝暾)
새벽을 지난 발간 해가 능선에서 떠오른다
햇살이 밝으면 밝은 대로
마을은 가까이 있고
골짜기는 멀리 있어도 잘 보인다
1740년 양천현령으로 부임한 겸재 정선이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
어느 아침
한양도성을 비춘 붉고 발간빛
양천현아 궁산에서 바라본 남산의 미명을 뚫고 떠오른 해다
햇살이 비치는 곳에서 보이는 하루
햇살을 바라보는 곳에서 들리는 강물 소리
햇살은 한강을 물들이고
강은 어부가 고깃배를 젖는다
동틀 무렵
목멱산, 지체 높은 자리라서 멀리 앉아 바라보아도
붉은 해가 걸려 있는 산 중턱의 모습이 또렷하다
그 앞에는 오늘날 아파트와 빌딩으로 가득 채운
만리재, 애오개, 노고산, 와우산이다
목멱산, 봉우리와 주변의 능선은 먹선이 짙다
낙락장송으로 늘어졌을 울창한 솔숲과
옅은 연둣빛으로 봄기운을 전하는 수양버들과
붉은 여명과
푸른 물빛이 평온하면서 은은하다
그림 왼쪽의 글귀는 겸재 정선의 친구인 사천 이병연의 시다.
曙色浮江漢(서색부강한)
새벽빛 한강에 떠 있으니
觚稜隱釣參(고릉은조삼)
언덕에 낚싯배가 가린다
朝朝轉危坐(조조전위좌)
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
初日上終南(초일상종남)
첫 햇살이 종남산에 떠오른다
겸재 정선은 그림으로 사천 이병연은 시로써
마음에 간직한 우정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남산에 떠오른 해를 바라보듯
서로를 비추고 비춰주듯
서로가 채우고 채워주듯
66세의 겸재와 71세의 사천
두 사람은 다섯 살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깊이 나눈 우정처럼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고 시를 썼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6권에 다음과 같이 목멱산(남산)이 등장한다
遣參贊門下府事 金立堅 告于山川之神 其文曰 王若曰 咨爾白岳木覓之神 諸山之神漢江楊津之神諸水之神 蓋聞古之定都者 必封山以爲鎭 表水以爲紀 故名山大川之在境內者 載諸常祀之典 所以祈神佑而答靈貺也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김입견(金立堅)을 보내어 산천(山川)의 신령에게 고하게 하였는데, 그 고유문에 이르기를, 왕은 이르노라. 아, 너희 백악(白岳 북악산)ㆍ목멱산(木覓山 남산) 및 여러 산의 신령과 한강(漢江)ㆍ양진(楊津 광나루) 및 여러 강의 신령들이여! 듣건대 옛날에 도읍을 정한 이들은 반드시 산을 진산(鎭山)으로 봉하고 강을 강기(綱紀)로 표(表)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국내에 있는 명산대천(名山大川)들은 항상 제사 지내는 곳으로 사전(祀典)에 실려 있으니, 그런 까닭에 신령이 도와주기를 빌기도 하고 신령의 도움에 보답하기도 하는 것이다.
목멱산 또는 종남산, 인경산이라 부른 것이
남산의 옛 이름이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북악산 아래에 지은 정궁正宮이 경복궁(景福宮)이다
진산(鎭山)은 북악산이고
안산(案山)은 목멱산이다
북악산 왼쪽에서 갈라진 동쪽의 낙산(駱山)은 좌청룡
오른쪽에서 서쪽으로 솟구친 인왕산은 우백호다
산등성이를 따라 성을 두르니 이것이 한양도성이다
북악산과 낙산, 인왕산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骨山]이고
남산은 흙이 많은 흙산[肉山]이다
남산의 큰 봉우리 두엇이 동서로 길게 이어졌으니
이것이 겸재 정선의 <목멱조돈>과 같다
<겸재정선미술관>과 옛 양천현아터와 양천향교를 지나서
약 75m 높이의 궁산 소악루에 올라 봐야
멀리 보이는 것이 남산(목멱산)이다
이곳에서 서울의 랜드마크인
서울 N타워가 아스라하게 보이고
올림픽대로가 지나고
한강이 서해로 흐르는 곳은 궁산 아래다
가양대교 너머로 남산을 높다랗게 가로막은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의 이름은 난지도다
1978년
서울 시민의 생활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된 난지도가
1993년에
완전히 폐쇄되면서
지금은 약 90m 높이로 되어 산처럼 보이는 언덕이 되었다
난지도 이야기를 여담으로 하자면, 훗날 아주 나중에 어느 인류학자가 난지도를 발굴한다면 20세기 서울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중요한 논문 자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을 찾아서 그것의 원료가 무엇인지, 썩지 않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서 이를 국제학회에 보고할 것이다.
라면 봉지, 비료 포대, 감자 봉지 등을 찾았다면 그 쓰임에 대해 알아냈다고 흥분할 것이다.
소뼈, 돼지 뼈, 닭 뼈, 오리 뼈 등을 발굴한다면 서울 시민의 식생활 주요 공급원과 당시 한국인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의 종류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또한 이와 유사한 유적지가 20세기 당시 대도시였던 뉴욕과 런던 파리 등에도 있다고 뉴스로 전할 것이다
마치 선사시대 쓰레기 더미였던 생활유적지 조개무지에서 다양한 음식물 쓰레기를 찾아내고 부서진 석기나 토기에서 생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북악산에서 본 여름철 남산의 풍경이다. 설렁설렁 간략하게 그려서 겸재답지 않은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그림이다. 늘 푸른 싱싱한 소나무 숲과 비 온 뒤 남산의 허리를 감고 일어난 건 흰구름이다.
<참고자료>
고전번역원 DB
국립중앙박물관
겸재정선미술관
간송미술관
고려대학교박물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유홍준
화인열전, 유홍준
https://www.daum.net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