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입니까? [3편]

당신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N가지 주제 - 외조부 마지막 편

by 페트라


"00 왔냐?"



할아버지가 항상 나를 보시자마자 하셨던 말, 저 말 한마디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밥은 잘 먹었는지, 오는 길에 사고 날 뻔한 적은 없는지 등등 걱정의 의미들이 담겨 있다. 난 가끔씩 할아버지의 안부 인사가 미치도록 그리울 때가 있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2학년이 됐을 때였을까. 할아버지가 80세 되시던 날, 요양병원에 가게 되셨다. 할아버지는 가족들이 요양 병원을 보낸다는 소식을 듣고는 불같이 화내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산책도 못 나가실 만큼 거동이 불편하셨고, 기억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해 그 운명을 피하진 못하셨다.


할아버지가 요양 병원에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나는 애써 신경 쓰지 않았다. 할머니가 편찮으니 그보다 불편한 할아버지를 요양 병원에 보내는 게 맞는지, 당사자인 할아버지를 배제한 친자식들의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끔 가다 할아버지의 소식을 들으면 날 많이 찾으셨다고, 00는 어디 있냐는 말을 큰외삼촌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말을 전해 들으면서 난 그저 불편해하기만 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내가 귀찮았던 마음이 제일 컸다. '잘 계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한 번도 찾아뵙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 정도 됐을 무렵, 여름방학을 한가롭게 보내는 내게 엄마가 할아버지께 가자고 몇 주째 노래를 불렀다. 할 수 없이 엄마의 동거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갔는데, 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날 알아보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보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이 악물고 참았다.


아, 할아버지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가 날 애타게 찾으실 때 한 번이라도 올 걸. 할아버지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뭐가 그렇게 귀찮다고 오지 않았을까. 나는 참 나쁜 딸년이다. 죽일 년이다.라고 자책하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펑펑 울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할아버지를 찾아뵙지 못했다. 그런 내 아버지의 약한 모습을 마주하면 나는 정말로 나쁜 년인 것 같아서. 아버지의 시간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인정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돌아가신 후에야 다시 뵀다.




장례식장에 걸린 환하게 웃고 계신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장소가 그래서일까. 아니면 정말 그랬던 걸까.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편하게 웃고 계셨다. 요양 병원에 억지로 보낸 외할머니가 조금 미우셨는지 할머니에겐 영정사진이 무섭게 보였다고 한다. 외가족들만 모여 있는 텅 빈 식장이 왜 그리 쓸쓸해 보이는지. 환하게 웃고 계신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울기만 했다.


친척들이 하나둘씩 모여 시끌벅적해지고, 사람들은 거짓된 곡소리를 내기 바빴다. 그 속에서 나는 향이 날아갈 때마다 향을 피워드렸다. 그렇게라도 해야 할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여기에 머무실 것 같았다. 향을 열심히 피웠기 때문일까. 그때 나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할아버지는 내가 억지로라도 엄마에게 용서를 구했음 하는 바람이 있으셨던 건지, 그날 밤 울면서 엄마와 화해했다.




염을 하고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뵀다. 오랫동안 앉아 계신 탓인지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은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눈 감고 계신 할아버지의 표정은 이상하게 평온해 보였다. 엄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오열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엄마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내게도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앙상한 할아버지의 팔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생하셨다고, 이제 보내드려야 하는데 잘 안될 것 같다고, 그래도 편하게 가셨으면 좋겠다고 할아버지께 마지막 귓속말을 전했다. 그렇게 친족들의 마지막 인사를 받고 할아버지는 관에 누워 수많은 꽃송이에 둘러싸여 계셨다. 그리고 수의를 단정히 차려입으신 그 모습이 근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할아버지의 발인을 마지막으로 3일장이 끝이 났다. 마지막 당일에는 발인 시간을 기다리면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어린 나를 데리고 놀러 다니시던 모습,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보시면서 같이 찍은 사진들, 내가 못 해 드린 기억들, 이제 진짜로 보내드려야 하는데 외할아버지 댁에 가면 아직도 침대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계실 것만 같았다. 도저히 진정이 되질 않아 엄마가 나를 밖으로 데려가 달랠 정도였다.


막상 발인식을 보니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던 한 사람이 한 줌 가루로 변하는 걸 보니 허무했다. 공허한 눈으로 발인식을 지켜보는데 갑자기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 순간이 내겐 영원 같이 느껴졌다. 이젠 정말로 내 아버지가 멀리 떠나셨구나.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번쩍 났다. 이제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더 이상 엄마에게 휘둘리는 삶을, 그리고 부정적인 관점으로 보는 삶은 그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3일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일상을 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힘들었다. 매일 아침 엄마와 밥을 먹으며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우는 게 다반사였다. 심지어 회사에서 일을 하다 잠깐 창 밖을 볼 때 할아버지가 생각 나 울컥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7일째 되던 날이었다. 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할아버지가 두 다리로 서서 무릎 꿇고 울고 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이제 괜찮다고, 계속 괜찮다고 정말 해사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실제로 울면서 깨어났는데도 진정이 되질 않았다. 난 미신을 믿지 않으려고 하지만, 아버지가 나온 그 꿈은 진짜라고 믿고 싶다. 떠나시기 전에 손녀딸이 걱정돼 한번 들렀다 가신 거라고 믿고 싶다.


7월 4일,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자 나의 아버지를 기리는 날.

아직도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날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수호신처럼 내 주변에서 지켜주고 계실 거라고 믿고 있다. 내가 죽어 아버지를 다시 뵙게 되면, 부모님을 욕 되게 하지 않았다고,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다 왔다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리고 싶다.



(시리즈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