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N가지 주제 - 외조부 편
외할아버지가 내게 늘 강조하셨던 말. 어릴 때는 내성적이었던 내게 해주셨던 말씀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른들과 서스름 없이 어울리는 능청스러운 친화력을 갖게 됐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연말 연초만 되면, 그리고 할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오면 할아버지께 못 해드린 기억만 나서 마음이 아프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7일째가 되던 날, 그때처럼 다시 손녀딸 꿈에 나와주시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계신가 보다.
할아버지는 늘 예의범절을 강조하셨다. 내가 8살일 때, 젓가락질을 못해 포크로 밥을 먹으려고 하니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호되게 혼내셨다. 8살이 아직도 젓가락질을 못하느냐고 밥 먹을 자격이 없다고 그렇게 혼내셨다.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밥을 먹은 게 꽤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집에 돌아간 그날부터 어린이용 젓가락으로 맹연습을 했다. 그다음 할아버지를 뵀을 때 젓가락질을 제법 흉내를 내는 모습을 보시고는 밥 먹고 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외할아버지는 젊었을 적에 목수셨다. 집 하나를 사서 집안 곳곳을 수리하셨고, 지금도 외할머니는 그 집에서 살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몇십 년 동안 착실히 직장에 다니다 산재를 당하셨는데, 반신마비가 되어 장애 판정을 받으셨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크고 호랑이 같은 모습이셨는데, 어느 순간 앉아계시거나 누워만 계셨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당신 자식들에게 무서운 호랑이셨지만, 나에겐 늘 따뜻하고 다정한 아버지셨다. 이상하게 할아버지 댁에 간 날은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곤 집에 다시 돌아가려 하면, 나에게 아쉬운 소리도 차마 하지 못하고 그 불편한 몸을 일으켜 나에게 용돈을 쥐어 주셨다.
할아버지는 손자들 중에서 유독 나를 예뻐하셨다. 할아버지와 바둑을 두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이겨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손녀의 모습이 예뻤던 걸까. 아들밖에 없었던 집안에 아픈 손가락인 당신의 큰 딸이 또 딸을 낳아서 애달팠던 걸까.
할아버지는 당신의 딸내미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이 마음에 걸렸는지 대신 손녀딸에게 한자를 알려주셨다. 손녀딸이 책을 좋아하는 걸 알아보시곤 어린 나에게 하나하나 알려주시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바둑까지 알려 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할아버지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바둑을 둔 기억이 선명하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대학에 가기 위해 할아버지 댁으로 혼자 들어가야만 했다. 내게 말없이 잘 왔다고 말씀하시던 할아버지는 그때까지도 당신의 형제들에게 큰 딸이 이혼했다고 차마 말씀하지 못하셨다. 아마도 당신 딸이 사위에게 맞고 살았던 게 가슴 아팠기 때문이겠지.
할아버지는 손녀딸이 혼자 온 것이 속이 상하셨을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 딸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손녀딸에게 다 해줄 심산이셨을까.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 비싼 노트북까지 사주셨다. 에어컨도 웬만하면 안 키는 양반께서 손녀가 공부할 때 더우면 켜라고도 하셨다.
그런 사랑을 받으면서도 한껏 예민해진 나는 외조부모님께 자주 짜증을 냈다. 그때의 나를 줘 패고 싶을 만큼 생각나는 일화가 몇 가지 있다. 그때 외할머니는 무릎이 편찮으셨는데, 할머니 대신 할아버지의 잔심부름을 하는 게 짜증이 났나 보다. 할아버지께 이걸 왜 해야 되냐고, 싫다고 소리 질렀던 그때의 내가 밉다.
또 한 번은 할아버지의 어머니, 그러니까 외고조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하셔서 식장에 가지 못하셨다. 장례가 끝난 한 달 뒤에야 장례 치르는 영상이 담긴 CD를 불편하신 몸을 이끌고 내 방으로 오셨는데, 나는 귀찮다는 듯이 반응했다. 대충 보여드리고는 이게 끝이라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내게 공부하는데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손을 떨며 몸을 일으키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