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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Feb 02. 2024

제게는 오빠가 두 명 있었습니다.

하늘나라로 떠난 의붓오빠를 애도하며


"오빠 이제 편히 쉬어.

엄마 아빠는 내가 잘 케어할게. 잘 가.

잘 살다가 만나러 갈게."




향을 피우고, 절을 두 번 하고, 울먹거리며 절 바라보고 있는 의붓오빠의 영정사진을 보며 마음속으로 했던 말입니다. 절 하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절을 하다가 멈추고는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제게는 오빠가 두 명 있었습니다. 한 명은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친오빠보다 더 친오빠 같은 의붓오빠이고, 나머지 한 명은 연을 끊어버린 친오빠입니다. 오늘은 의붓오빠의 삼우제이기에 비탄한 마음을 뒤로하고, 최대한 담담하게 의붓오빠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의붓오빠는 1년 6개월 전에 폐암 말기를 진단받고, 신약과 항암 치료를 잘 받다가 최근 한 달 동안 고생하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의붓오빠와는 5년 전에 부모님이 헤어지면서 연락을 끊게 됐습니다. 최근의 오빠 상태가 언제 갈지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신정이 되기 전에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렸네요. 오빠에겐 3살 배기 아들이 있고요. 그 아기는 웃는 모습이 오빠와 똑같이 생겼습니다. 작은 알밤 같이 생긴 아기이지요.


저는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헤어지고, 새아버지에게 제 근황을 수도 없이 물어봤다고 합니다. 괜히 전화해서 왜 저랑 만나지 못하게 하냐고 성질을 내곤 전화를 끊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빠가 결혼하고 조카를 낳고, 가정을 잘 돌보고 있는 동안, 저는 회사생활을 치열하게 했고, 나중엔 우울증이 올 때까지 정신이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제가 퇴사할 당시까지만 해도 건강했다는데, 그때라도 오빠의 건강한 모습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의붓오빠는 제가 15살 때 만났습니다. 제 양육권과 친권이 모두 엄마에게 이관되자마자, 저는 엄마를 따라 안양에 있는 계부와 함께 의붓오빠와 살게 됐습니다. 그 당시 오빠는 하사관이었기에, 휴가를 나와야만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싫어했는데요. 저는 그때 사춘기였고, 오빠는 제가 오빠의 방을 쓰는 게 그렇게 싫었나 봅니다. 오빠는 외아들이었습니다. 저는 친오빠가 한 명 있었지만, 친오빠는 그때 당시 상병 계급인 일반 군인이었지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친오빠를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친오빠를 뒤로 하고 의붓오빠와 친해지기 프로젝트강제로 참여해야만 했습니다. 부모님이 자꾸 같이 밥을 먹게 했거든요. 저는 새아버지와 의붓오빠가 지독히 싫어서 문을 부술 듯이 쾅쾅 닫았고요. 같이  먹기로 하면, 갑자기 같이 넷이 모여서 가족인 척하는  화가 나서 밥을 먹다가 수저를 던져버리기도 했습니다. 사춘기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빠가 예전에 해줬던 말이 생각납니다. ",  솔직히 사춘기 대단했어, 진짜."




오빠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는 날이면,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습니다. 방에 틀어박혀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숨소리도 나지 않게 했습니다. 웬만하면 시끌벅적한 거실에 나가지 않기 위해 물도 마시지 않습니다. 물을 많이 마시면 화장실을 가야 하거든요. 화장실을 가려면 거실을 지나쳐야 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한 두 번만 가려고 악착같이 참았습니다. 그러다 명절이었는지, 무슨 날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가족은 외식하고, 저를 빼고 모두 술에 얼큰하게 취해 있었습니다. 그날은 노래방도 갔는데요. 오빠와 저는 그때서야 친해졌습니다. 아마 만난 지 1년 만일 겁니다.


같이 살면서 많은 일이 있었지요. 셋 째 큰아버지의 집에서 새아버지가 고모들, 그리고 큰아버지들과 싸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고모들이 엄마에게 텃세를 부렸나 봅니다. 새아버지는 엄마의 얘기를 듣고, 화가 나서 술잔을 벽에 던지고 상을 엎어버렸지요. 오빠의 사촌들과 잘 놀던 저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가야 했습니다. 그때는 오빠가 근무 중이라,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때 상처를 너무 받아서 다시 마음을 닫았던 것만 생각나네요.




그렇게 제가 대학교를 입학하고 나서야 오빠랑 친해졌습니다. 집에서는 저를 어리다는 이유로 통금 시간을 10시에, 짧은 바지나 치마를 입지 못하게 단속했습니다. 너무 갑갑해서 휴가 나와 친구들과 술 마시고 있는 오빠에게 전화해서 같이 술 마셨던 기억만 수두룩하네요. 오빠랑 마신다고 허락 맡으면 밤새 마실 수 있거든요. 합법적으로 외박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오빠 친구들은 다 알고 있고요. 심지어 오빠의 절친과도 허물없이 장난치는 사촌처럼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애교가 전혀 없는 전형적인 장남 같은 딸이었고요. 오빠는 애교가 많은 듯하면서도 무덤덤했고, 무뚝뚝한 딸 같았습니다. 이상하게 오빠의 연애사는 엄마 아빠 모두가 알고 있더군요. 여자 문제가 있을 때마다 부모님 각자에게 전화해서 물어봤다고 하네요. 정말 이상한 아들입니다. 저는 단속이 심한 부모님 때문에 절대 제 연애사를 밝히지 않았고요.




제 오빠들은 하나 같이 그 동네에서 한 따까리 하던 오빠들이었습니다. 친오빠는 유명한 동네 싸움꾼이었고요. 의붓오빠는 안양시 전체를 휘어잡는 짱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사고를 정말 많이 쳤다고 하네요. 경찰서를 수도 없이 들락거리고, 수습은 새아버지가 다 했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오빠가 사고 친 게 아니라, 오빠의 절친이 사고 친 거이지만요. 제 오빠들은 왜 다 그럴까요.


그래서인지 두 오빠 모두 본인들만 생각하는 경향이 심해서 제가 장녀 노릇을 해야만 했습니다. 의붓오빠가 없을 때는 서로 미친 듯이 싸우는 부모님을 말리느라 애먹었고요. 심하게 싸운 적이 많아서 제가 대신 화분을 깨거나, 컵을 깨서 둘의 싸움을 말린 적이 수두룩합니다. 오빠는 모르겠지요.




집에만 들어가면 갑갑해 죽을 것만 같고, 발작이 올 것 같아서 뛰쳐나가고 싶은데, 마땅한 곳이 없으면 술 마시고 있는 의붓오빠에게 전화했습니다. 늘 안양 지역 어딘가에서 술을 짝으로 마시고 있었거든요. 그 덕분에 저도 애주가가 됐나 봅니다. 나중에는 오빠가 체력이 안 돼서, 노래방에서 자고 있는 오빠를 뒤로 하고 오빠의 친구들과 술을 퍼마시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오빠는 의리와 가족애만큼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20살 때, 알바하면서 성추행을 당했는데요. 하필 그 알바하는 곳이 오빠가 잠깐 일했던 곳이라, 대부분 알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화가 너무 나서 낮술하고 있던 오빠에게 전화했더니 바로 쫓아와 저를 성추행한 돼지 새끼를 그렇게 때리더군요. 귀싸대기를 10번 연속 때리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사람 볼에서 뭐가 터지는 소리를 그때 처음 들어봤습니다. 역시 지역구 짱 출신이라 그런지 사람 패는 것도 장난 아닙니다.




오빠와는 추억이 참 많습니다. 오히려 새아버지보다 더 추억이 깊고 많습니다. 그렇게 같이 술을 많이 마셨는데요. 술만 마셔서 그런지 오빠와 같이 찍은 사진이 없어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 그때 같이 찍어놓을 걸 그랬네요. 나중에 가족사진을 꼭 한 번 찍자고 그렇게 말했는데, 먼저 가버렸습니다. 이제는 제가 오히려 오빠에게 술 한잔 사줄 수 있는데 먼저 가버렸습니다.


제가 좀 더 일찍 정신과를 갔더라면 오빠를 한 번이라도 더 만날 수 있었을까요. 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울컥하는 마음들이 언제 괜찮아질지 모를 정도로 비통합니다. 혼자 어디를 갈 때마다 울컥하는 마음이 심해서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저는 진짜 장녀가 됐네요. 성씨를 바꾸면서 친오빠를 완전히 마음속에서 버렸고요. 의붓오빠는 하늘나라로 먼저 가버렸습니다. 정말 장녀가 돼버려서 더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이제 저 혼자서 부모님을 지켜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의논할 오빠들이 다 가버렸네요.


오늘은 의붓오빠의 삼우제 날입니다. 제 꿈에 한 번만 나오기를. 한 번이면 마음이 그래도 괜찮아질 텐데 나올 생각을 안 합니다. 제가 조금 미운가 봐요. 그래도 이제 부모님 걱정은 하지 말고 편히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아팠으니까요. 하늘나라에서는 담배만 피우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걱정하지 말고 쉬어.

변명하자면 나도 정신적으로 아파서 못 갔어.

늦게 가서 너무 미안해. 내가 오빠 몫까지 하다가 조금 나이 든 모습으로 만나러 갈게.

그때 술독 하나 들고 오빠 찾아갈 테니 늙은 나랑 같이 마셔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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