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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Jan 15. 2024

성본 변경이 허가됐습니다.

지난 성과 본 변경에 관한 사건 청구 과정에 대하여


"나 드디어 서 씨가 됐어.

나 이제 우 씨 아니고, 서 씨야!"



부스스하게 일어나 부트캠프를 들으려고 노트북을 켰습니다. 습관적으로 가정법원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 소송 과정이 업데이트된 소식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종국: 인용'이 됐다고 업데이트됐더군요. 갑자기 네이버 메일에 알람이 들어옵니다.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 주시는 법무법인으로부터 판결문이 나왔다고 바로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설레는 마음 반, 혹시나 불허가 났을까 봐 두려움 반인 마음으로 메일을 열어봤습니다.


역시 판사님도 사람이시더군요. 허가가 났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때가 생각납니다. 청룡의 해, 2024년 1월 2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새해의 시작이 아주 좋은 날이었죠. 오늘은 지난 사건 청구 과정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때는 작년 10월 중순 경이었습니다. 퇴사하고 제일 먼저 하고자 했던 것은 '성본 변경'이었습니다. 보통 퇴사하고 장기 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지만, 저는 여행을 떠날 시간이 없었습니다. 성씨부터 바꿔야 했거든요. 그래서 전 변호사님들이 모여 있는 '로톡(lawtalk)' 어플에서 가정법 전문이거나 성본 변경 허가된 케이스가 많은 변호사님을 이 잡듯이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 조건은 명확했습니다. 최대한 제 고통과 트라우마를 이해하실 수 있는 여성 변호사님이어야 했고요. 감정적인 공감보다 빠르고 정확한 일처리, 그리고 어려운 법적 용어를 쉽게 풀이해 주실 수 있는 변호사님이어야 했습니다. 몇 날 며칠을 보다가 상담비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광화문에서 일하고 계신 변호사님을 발견하게 되어, 바로 방문 상담을 예약했습니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정갈한 옷차림에 전문성에 대한 신뢰도가 이미 100%였는데요. 쉽고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설명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바로 의뢰드리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궁금한 점들이 너무 많아서 상담 때도 많이 여쭤봤지만, 메일과 전화로도 엄청 여쭤봤습니다. (물음표 살인마인 의뢰자라면 제가 아닐까 싶네요.) 아무튼 서류 준비는 7종이 넘어갈 만큼 준비할 게 엄청났었고요. 저는 심지어 인감이 등록되지도 않아서, 도장을 새로 파고 주민센터에서 바로 인감증명서까지 만들어야 했습니다. 거의 평일 3~4일은 서류 떼는 시간에만 할애한 것 같아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17년 전에 받았던 '판결문 -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조서' 복사본이 필요했습니다. 법적으로 10년이 지난 사건 전문은 폐기됩니다. 따라서 복사본이 미리 준비돼있어야 하는데요. 다행히도 저희 엄마는 그 당시에 혹시 몰라 사건 전문과 판결문 모두 10만 원이 넘는 사비를 들여 복사를 다 해놓으셨더군요. 그 서류는 모두 외할머니댁에 있어 손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판결문을 갖고 카페에서 서류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변호사님께 메일을 드리기 위해 PDF로 모두 변환한 그 서류들을 하나씩 검토하는데, 판결문에서 눈을 뗄 수가 없더군요. 이내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양육비는 지급한 적도 없고, 그 알량한 위자료를 더 깎아내기 위해 거짓 영수증을 자필로 써서, 또 다른 소송을 걸었던 부친이 생각나서 더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사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변호사님께 의뢰를 드리자마자 저에게 주셨던 미션은 '사건 청구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 청구서에는 현재 성씨로 불리면서 불편했던 점, 그리고 사회적인 애로사항이 있었던 점 등등을 적어야 했는데요. 저는 명백히 '부친과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였습니다. 초안을 3~4페이지 정도 써서 드렸던 것 같은데, 그 광화문 스타벅스에서 빠르게 써 내려간 사건 청구서를 보면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선선하고 기분 좋은 가을날, 저는 이순신 장군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성인이 되고  이후, 성과 본을 변경하려면 보통 2~3개월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과정 안에서 부친의 의견 청취서가 들어가고요.  문서 안에는 '동의, 비동의, 모르겠음'으로 체크만 하면 되는 문서입니다. 공교롭게도  부친은 무슨 마음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동의'라고 표시했더군요.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문서를 보기 며칠 전에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친오빠가 조회된  보고 울었거든요.    연락   없다가 갑자기  계정을   이상했는데, 역시 시기가 시기인지라 어떻게  건지 궁금했나 봅니다.


아무튼 저는 한 번에 동의가 돼서 다행이지만, 보통 '비동의'나 '모르겠음'으로 표시가 되면, 법원에 한 번은 출석해야 합니다. 이럴 경우 판사는 제 의견도 들어야 하고요. 부친의 의견도 들어야 합니다. 물론 저 같은 트라우마가 심한 사건은 자리를 따로 마련하겠지만요. 이마저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변호사님은 이 사건은 허가가 날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첫 째, 부친이 양육비를 1원도 지급하지 않은 점. 둘 째, 가정 폭력이 심해 트라우마를 안겨준 점. 판사도 사람인지라, 이런 케이스들은 허가가 날 수밖에 없다고 한 변호사님의 예상이 빗나가질 않았습니다.


변호사님은 제게 첫 상담에서 정상적인 스케줄이라면 12월 중순이나 말일에는 될 거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막상 12월 중순이 되니 가정법원 사건 조회에서는 감감무소식이라 불안했었습니다. 2023년 안에 될 줄 알았는데, 소식이 없어 이상하다 싶어서 기다리던 찰나였는데요. 딱 2023년 12월 29일에 판결이 났더군요. 그 판결문이 2024년 1월 2일에 법무법인 앞으로 송부되었습니다. 변호사님의 예상이 맞아떨어졌지요.




그리하여 저는 이제 서 씨가 되었고, 실제로 받은 판결문과 최종 사건 조회 내역을 증빙합니다. 이제 법적으로 서 씨이기에, 초본이나 등본에 모두 서 00이라고 표기됩니다. 법이 정말 무섭긴 무섭더라고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사건 조회를 할 수 있는 바코드와 저의 개인정보는 모두 모자이크 처리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저는 '한문 이름'을 개명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개인정보를 모자이크 한 의미가 무슨 의미이겠냐만은, 15년 뒤에 저는 유명한 여성 임원이 되어 있을 테니, 그때를 대비해 미리 밝힙니다. 제 한문 이름은 '아름다울 미, 올 래'입니다. 바로 직역하면 '아름다움이 온다.'인데요. 사실 '아름다울 美'자가 옛날 조선시대 기생 분들이 많이 쓰던 이름이라, 불용자인 한자라고 합니다.


지난 2년 전부터 제 사주를 기가 막히게 맞추시는 사주 선생님이 특별히 작명까지 해주셨는데요. 이천 서 씨와 '미래'라는 한문 이름에 '火'를 넣고, 격까지 맞춰주셨습니다. 원래 변경되기 전의 제 이름은 격으로 따지면, '시비 격(是非格)'이라고 합니다. 영웅의 수이긴 하나, 파죽지세와 같이 공명은 일시적이고,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아, 파란이 중중하여 허무한 세월을 돌이켜 탄식하게 되는 수라고 합니다. 더욱 소름이 돋는 것은 육친의 덕이 없고 외롭게 인생을 홀로 걸어가게 되며, 인간관계에 장애가 많이 생겨 성공을 이룬다 해도 반대로 크게 실패를 볼 수 있는 불행이 연이어 닥치게 되는 흉한 수라고 하네요.


그래서 사주 선생님이 제 새로운 한문 이름을 '어루만질 미, 위로할 래'로 지어주셨습니다. 이 이름은 성씨까지 다 했을 경우, '성공 격(成功格)'입니다. 왕성한 활동력과 투지로 대업을 달성하여, 부귀, 장수, 안락 등을 누리며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를 획득하는 명망이 있는 수라고 합니다. 더욱이 재주가 뛰어나고 지혜가 출중하니 처세술에 능하여, 재산과 권력을 함께 얻어 자손 대대로 번영하게 되는 길한 수라고 하네요.




이왕 성본이 변경되는 겸, 한문 이름까지 격을 맞추면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 더 들 것 같아서 한문 이름도 개명하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저는 제 새로운 한문 이름이 무척 맘에 들어요. '어루어만지고, 위로해라.'라는 이 뜻은 제 30대의 첫 시작이자, 선한 영향력을 퍼트리기로 한 제 다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사람들을 어루어만지고 위로하여 성공한다면 그것만큼 명예로운 일이 없겠지요.


저는 이제 '서미래'입니다. 본은 양반가 성씨인 '이천 서 씨'이고요. 대는 아직 모르겠지만, 엄마의 대를 따라가지 않을까 싶네요. 제 이름을 먼 훗날, 기사나 뉴스에서 보신다면 이 브런치를 꼭 기억해 주시기를.



"저는 이천 서 씨의 장녀, 서미래이자,

반석인 페트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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