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구원없이 살 수 있는가?

인간은 구원을 원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by 정서윤

인간은 구원없이 살 수 있는가?

인간은 구원을 원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신곡 The Divine Comedy, A Divina Comédia, 1991포르투갈, 프랑스, 스위스, 140분

감독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 manoel de oliveira


정신병 환자들을 위한 한 요양원에는 자신을 예수, 마리아, 그리고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 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이처럼 다양한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 충돌할 때 발생하는 의미들을 흥미롭게 포착해낸다. 1991년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
(2014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회고전)





신곡은 인물들의 대화로 영화가 전개된다.




1. 철학자와 선지자의 대화

선지자

철학자

선지자 양반, 미친 사람은 그 광기에 무지하지.


선지자

나쁠 게 없어요. 철학자 선생. 나름대로 행복하다면 ...


철학자

뭐 그렇지, 행복의 개념이 양심에 안 걸리면 가능해요. 하지만 이 세상에서 행복하다니 웃기지, 얼빠진 거야. 이상가나 종교인들은 거창한 생각을 해

재주를 부리며 이유를 갖다 붙이고 온갖 감언이설에 과학까지 동원해! 잘라 말해 숭고한 척하며 사람을 망치는 거요.

철학자

공포보다 나쁘고 악덕보다 못해. 제일 몹쓸 거요. 선이 뭔가 ? 인간을 고양시키는 가능성이고 이를 행하고자 하는 의지력이요. 악은 뭔가 ?

악의 바탕은 나약함이요. 행복이란 뭔가 ? 그 가능성을 키우고 반발심을 이기는 거요. 자족이 아닌 꾸준한 가능성이고 평온이 아닌 투쟁이고 덕목이 아닌 용기요. 편협한 미덕에서 벗어나는 거지. 약자와 낙오자는 소멸되는거요. 그게 인간애의 첫 원칙이요. 소멸시키게 해야지 !


선지자

조용히 해요. 같잖은 말 !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악덕을 감추려고 주절대는거요.


철학자

악덕보다 더 나쁜 건 약자를 돕는다는 식의 동정행위요. 기독교 식의 ..


선지자

불경한 소리 ! 그리스도께서는 2천년 전 세상을 뜨셨어요.

나는 그분의 변변찮은 사도요. 선생을 구하려는 거고 거듭나게 될거요.


철학자

영겁회귀인가 ? (비웃으며)


선지자

아니요.


철학자

그럼 ?


선지자

주님처럼 이생에서 죽어 소생하는 거요. 이생에서의 죽음이 영원한 죽음이 아니오.


철학자

날 구원해 ? 댁이 ? 기독교는 유죄요. 교회는 고발의 대상이고 법정 최고형을 받아 마땅해. 비할 데 없는 부패의 온상이오. 아주 썩은 내가 진동하지. 박애 어쩌구 하지 마시오. 고통을 억제시키는 공리주의에 함몰되어선 ! 고통 위에 번창하고 괴로움을 지어내 영속화 시키는 거요.


선지자

적그리스도의 언사군. 주의 자비를.


철학자

주 ? 어떤 주 ? 그래, 난 적그리스도고 신은 죽었소.


선지자

주는 우리 안에 살아계시오. 주는 영생의 언약이시오.


철학자

그러는 댁은 뭔데 ?


선지자

선생이 찾는 사람이요. 선생은 거듭나야 해요. 선생은 어리석고 세상 사람이 다 그래요. 오랫 동안 사람들을 성령으로 구원해왔어요.


철학자

그리스도가 또 한 분 재림하셨군. 그리스도의 화신이라 ! 전혀 감흥이 없어. 기독교는 유죄요. 용서 못 해 ! 용서 못 한다구 !


선지자

성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2. 이반과 알료샤의 대화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반과 알료샤.

이반

이반

왜 그렇게 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아는 거라고 그런 비통한 일이 아무렇지않게 그냥 넘어간다는 거야.

이유를 알고 죽고 싶은 심정이야.


알료샤

아냐 그렇지 않아.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실 분이 계셔.

먼저 그분에게 외쳐야해. “주의 말씀이 옳습니다! 길을 밝혀주셨습니다!”


이반

그래, 무고하게 피를 흘린 사람. 기억해.

왜 진작 안나오나 했지. 늘 그이야기부터 했잖아.



원장

말씀하신 그 아이 ...

어머니의 눈앞에서 찢겨 죽은 그 아이도 무고 했어요.

알료샤

알료샤

그분이 초석이 되지 않을까요?


원장

어떤 체계의 ?


알료샤

인간을 위해 대신 피를 흘리셨어요.


이반

아이의 고통이 진리에 이르는데 필요한 거라면 치룬 대가가 너무 커.

신을 부인 않더라도 되물리고 말거야.


알료샤

그건 반역이야.


이반

반역? 어머니가 용서하지 않았으면 해. 그럴 권리도 없지. 자기 고통을 용서하더라도 아이의 고통은 아냐. 반역이라고? 그런 말 하지마. 나는 살고 싶어. 살고 싶은 마음이 반역이야?


알료샤

용서해주실 분이 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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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벌써 한 말이잖아.

...

아무튼 고마워. 들어봐 알료샤, 내게 사랑이 조금이라도 남았다면 그건 네 덕분이야. 네가 어디에 있건 잘 지내는지 궁금할 거다. 행복하니? 그럼 이걸 사랑이라고 해두자.




3. 창녀와 살인자의 대화


창녀

살인자

뽈랴도 같은 일을 겪게 될 걸.


창녀

아니에요. 주께서는 그런 무서운 일은 용납 않으세요 !


살인자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러는데 ?


창녀

아니에요, 주께서 지켜주세요 !


살인자

그 주가 없다면 ? (비웃으며)


창녀가 운다.


살인자는 갑자기 엎드려 창녀 발에 입을 맞춘다.


창녀

왜 이러세요? 왜 무릎꿇고 이러세요 ?


살인자

살인자

당신한테 무릎 꿇은게 아니야. 고통받는 모든 인간들한테 한거야.

들어봐요. 어떤 놈한테 당신의 새끼손가락만한 가치도 없고 떳떳하게 누이 옆에 앉힐 거라 했어요.


창녀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누이분과 나란히 앉힌다니 전 수치스런 죄인이에요.

왜 그러셨어요 !


살인자

수치나 죄를 따지자는게 아니었어요. 모진 고통을 이야기하는 거지. 그게 죄인건 보람 없는 고행이기 때문이야. 너무나 상심하고 이 생활이 죽도록 싫을텐데 아무도 못 구하면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어 ! 말해봐요 .. . 어떻게 고분고분 그토록 부끄러운 짓을 받아들이지 ? 어째서 계속하지? 일에 길들여진 건가 ? 그 수모를 당하느니 강에 뛰어들텐데.


창녀

그러면요 ? 가족들은 어쩌구요 ?


살인자

(방백 : 아니야.. 몸만 판 거야 정신은 순결무구해 자살도 벌써 생각해 봤을거야 정해진 운명이야 강이냐 정신 병원이냐 타락하던지)

기도를 많이 해요 ? 주가 뭘 해줬다고 ?


창녀

그런 말씀마세요 ! 주께선 다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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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저주받은 사람끼리 운명을 따라가요.


창녀

운명을 따라간다구요 ? 어디로 가요 ?


살인자

같은 길을 같은 목표와 함께 가는거야. 아는 건 그뿐이야.


창녀

불행하시군요. 그건 알겠어요.


살인자

나중에 알게 될 거야. 당신도 나처럼 행동했어. 나처럼 한계를 넘어섰고 그럴 용기가 있었지. 스스로에게 반발해 목숨을 걸었어.

또 하나 몹시 분개하고 있고... 나란히 같은 길을 가야해요. 잘 판단 해야해요. 울거나 신에게 맡기지 말고 똑바로 봐요.


















라쇼몬 羅生門 - 신들의 미소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芥川 龍之介, Ryunosuke Akutagawa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일본인 소설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다이쇼 시대의 대표 작가.


10년이 조금 넘는 짧은 활동 기간 동안 많은 명작을 썼다.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이며, 그의 극찬을 받으며 문단에 진출했다.


합리주의와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하였고, 자살로 인해 문단에 큰 충격을 안긴 작가이다.




人生の悲劇の第一幕は、親子となったことに始まっている。
"인생 비극의 제1막은, 부모와 자식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음사의 <라쇼몬>은 아쿠타카와의 단편들이 수록되어있다.

그 중 <신들의 미소>는

포교하려는 기독교와 일본의 강한 토착성의 대립을 보여주고 유일신과 범신론, 신종교와 토착신의 입장을 그린다.


" 당신은 천주교를 전파하러 온거죠.

그것도 나쁠 거야 없겠죠. 하지만 하느님도 이 나라에 와서는 결국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조심하십시오. 하느님도 반드시 이긴다곤 못 하니까요. 천주교가 아무리 퍼진다 해도 꼭 이긴다고는 할 수 없어요.

어쩌면 하느님 자신마저 이 나라 토착민으로 변할걸요. 중국이나 인도 역시 변했잖아요. 서양도 변해야죠. 우리는 나무들 속에도 있어요.

얕은 물속에도 있고요. 장미꽃을 건너가는 바람에도 있죠. 사찰의 벽에 남아 있는 저녁노을에도 있답니다. 어디에나, 또 언제나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조심하세요 ....... "

신들의 미소 中


















깊은 강 深い河

엔도 슈사쿠 遠藤周作, Shusaku E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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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2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1935년 세례를 받았다.

1950년 6월 일본 전후 첫 프랑스 유학생으로, 리옹 대학에 입학해 프랑스 가톨릭 문학을 공부했다. 1955년 발표한 <백색인>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바다와 독약>으로 신초사 문학상과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1966년 <침묵>으로 다니자키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엔도 슈사쿠는 일본의 대표적인 가톨릭 문학 작가로서 평생 동안 신과 구원이라는 문제에 천착했다.


유일신과 범신론의 대립.

기독교의 유일신 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본의 신부 오쓰.

순진한 오쓰를 무시하지만 오쓰 안의 순수함을 갈망하는 미쓰코.


이야기는 등장인물 4명의 서사로 시작한다. 이소베, 누마다, 기구치, 미쓰코.

그리고 이 4명은 인도여행패키지에서 만난다.


이소베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인하여 인도로 향하게 된다.

이소베는 아내란 그저 공기같은 것.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나를 살게 해주면 된다고 말하는 자칭 일본의 전형적인 성격의 가장이다.

하지만 그런 아내가 암에 걸려 생을 석 달 남겨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석 달간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오고 가며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 돌아본다.

20여년간 아내를 공기 취급했던 이소베는 공기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끝까지 이소베 걱정을 하며 죽은 아내는 이소베에게 처음으로 부탁이라는 것을 하며 눈을 감는다.

“나 …… 반드시 …… 다시 태어날 거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 찾아요 …… 날 찾아요 …… 약속해요, 약속해요.”

환생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던 이소베였지만, 아내의 마지막 부탁이 귓가에서 한 시도 떠나지 않는다.

이소베는 생각한다.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은 저 멀리 내 건너편에 있는 것 같았지. 그런데 당신이 두 손 벌려 막아 주었던 죽음은, 당신이 없어지자마자 바로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아.’

이소베는 생전 아내가 자신에게 말했던 전생에 관한 책을 읽고, 그 책의 저자인 버지니아 대학 의학부 정신과 인격 연구실의 존 오시스에게 서신을 보낸다. 그리고 전생에 일본인이었다고 하는 소녀가 인도에 있다는 답장을 받게 된다.


누마다는 동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의 주인공은 주로 새나 개다.

누마다는 어린 시절 가족보다는 함께 했던 강아지에게 마음을 털어 놓는 일이 많았고, 동화 작가가 되어 가정을 꾸려서도 아내보다는 키우는 새에게 마음을 털어 놓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어린 아이가 새나 개와 교감하는 내용의 동화를 주로 쓴다. 꽤 인기도 있다.

그는 평소에 자신의 고민이나 푸념을 키우는 구관조 앞에서 늘어놓다가,

어느 날 폐렴에 걸리고 만다. 그 이후 위험한 세 번의 수술을 받았는데, 마지막 수술 후 구관조가 죽는다. 이번에 누마다씨의 심장이 잠시 멈추었다는 의사의 말에 누마다는 구관조가 자기 자신을 대신하여 죽어주었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는 구관조에게 은혜를 갚으러 인도로 떠난다.


기구치는 이제는 늙어버린 참전 용사이다.

미얀마에서 기구치는 썩은 시체가 널브러진 길을 총도 없이 그저 목숨만 부지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행렬에 질질 끌려 간다. 먹을 것은 물론 마실 물도 없다. 끔찍한 상황 속에서 기구치는 기력이 다해 결국 전염병인 말라리아에 걸리고 만다. 그런 기구치 옆에는 동료인 쓰카다가 있다.

쓰카다는 기구치를 내버려 두지 않고 끝까지 옆을 지킨다. 마을을 건너 썩은 고기라도 가져오고, 기구치에게 힘을 내라며 죽은 병사의 쌀죽을 가져와 먹이기도 한다.

그런 쓰카다를 몇 십년만에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난 쓰카다는 알콜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기구치는 그런 쓰카다를 도우려 하지만, 쓰카다는 술 없이는 제정신으로 살 수 없다며 고집하다가 결국 병원에 입원하고 만다. 기구치는 쓰카다가 어째서 그런 주정뱅이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쓰카다가 당신의 죽음을 예감한 어느 날, 병원 외국인 자원 봉사자 가스통을 불러 달라고 한 후 기구치도 불러 세운다. 가스통은 쓰카다를 성의껏 돌봐준, 또한 세상에 신은 있다고 말해준 성실한 청년이다. 쓰카다는 사실 그 때 먹은 고기는 죽은 동료의 고기였다고, 후에 그 죽은 동료의 아이의 눈을 봤을 때부터 죄책감을 씻어낼 수 없는 삶 속에서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한다.

그러고는 가스통에게 정말로 세상에 신이 있냐는 질문을 한다.

가스통은 죽어가는 사람이 자기가 죽으면 자기 고기를 먹어 달라고 하여, 나머지 사람이 살 수 있었던 어느 비행기 추락 사고를 이야기해준다. 그건 죄가 아니라고.

가스통의 이야기를 듣고 쓰카다는 눈을 감았고, 기구치는 미얀마에서 동료의 법요를 드리기 위해 인도로 향한다.


미쓰코는 자신을 찾기 위해 인도로 떠나는 여자다.

대학 시절 그저 장난으로 유혹했다가 버린 가톨릭 신자 오쓰가 신부가 되어 인도의 수도원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오쓰는 어리숙해보여 동기 남자들이 골려주고 싶어하는 대상이었다. 그런 동기 남자들은 미쓰코에게 계속 오쓰를 골려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지만 미쓰코는 거절한다. 하지만 미쓰코는 촌스러운 학생복을 입고 다니며, 말머리에는 항상 미안합니다, 를 붙이는 습관이 있는 오쓰를 점점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혹시 신자세요?”

“예, 집안이 그렇다 보니, 어릴 적 부터.”

“진심으로 믿으시는 건가요?”

“미안합니다만,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그가 아니라, 그가 믿고 있는 신을 놀려 주고 싶은, 사뭇 유치한 기분에서 모든 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를 집에 부르고, 자기의 몸을 탐하게 하며 오쓰더러 신을 버리라고 한다. 오쓰는 알겠다는 말을 하고, 미쓰코는 그런 오쓰를 보며 신에게 승리감을 느낀다. 신까지 버려가며 나를 선택한 남자.

한 남자로부터 그가 믿고 있는 걸 빼앗는 기쁨. 나를 위해 하느님조차 버리는 남자.

“하느님, 그 사람을 당신에게서 빼앗아 볼까요?”

하지만 미쓰코는 오쓰를 골려주고는 연락을 끊어버린다.

오쓰는 상실감에 못 이겨 다시 신을 찾고, 프랑스로 가 신부가 되기 위해 공부한다.

미쓰코는 평범한 남자와 결혼했고, 평범해지고 싶어하지만 자꾸 자기가 무시하기만 했던 오쓰가 생각난다.

그녀는 자신이 이 오쓰에게 다른 학생들과 다른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다른 남성들에게는 없는 것. 나무의 꿈, 물의 꿈, 불의 꿈, 사막의 꿈.

오쓰가 프랑스에서 수도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쓰코는 신혼 여행을 가서 남편과 따로 여행하며 결국 오쓰에게 연락해 오쓰를 다시 한 번 만난다. 오쓰는 수도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가 유일신이라는 기독교의 교리와 달리 오쓰는 범신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계십니다. 유럽의 교회나 채플뿐만 아니라, 유대교도에게도 불교도에게도 힌두교도에게도 신은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오쓰는 언제나 신학교의 지도 사제에게 꾸중을 들었고, 결국에는 신부가 되지 못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미쓰코는 이혼을 하고,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엔 병원에서 봉사를 한다.

여기서 이소베의 아내를 간병하여, 이소베를 환자의 남편으로 미리 만나기도 한다.

미쓰코는 무언가 찾고 싶은 게 있었다. 미쓰코는 알 수 없는 마음에 이끌려 인도로 향한다.


4명의 해소를 위해 이야기는 진행된다.

인도의 신성함을 중요시 여기는 여행 안내원 에나미, 인도의 갠지스강을 보고 더럽다고 말하는 산조 부부도 조연으로 등장한다.

“강은 깨끗한가요?”
누군가가 질문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산조의 새된 목소리였다.
“일본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빈말로도 맑은 물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강가 강은 누르스름하고 자무나 강은 잿빛인데, 그 물이 한데 뒤섞여 밀크 티 같은 색을 띱니다. 하지만 깨끗한 것과 성스러운 것은, 이 나라에선 다르지요. 인도인에게 강은 성스럽습니다. 그래서 목욕하는 겁니다.
“일본의 목욕재계하고 똑같은가요?”
“다릅니다. 목욕재계는 죄의 더러움, 몸의 더러움을 정화하기 위한 행위이지만, 갠지스 강의 목욕은 정화와 동시에 윤회 환생으로부터의 해탈을 기원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요즘 시대에 윤회니 환생 따위를 믿는 건가요? 제정신이야 뭐야, 인도 사람들은.”
“제정신이고 말고요. 그러면 안 됩니까?”
이 때 에나미의 목소리에는 안내원으로서가 아닌, 인도를 경박하게 조소하는 산조와 같은 관광객을 향한 불쾌감이 묻어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몇 십만 명씩이나 이 강변에 모여들겠습니까? 이제 곧 여러분이 도착하는 바라나시에서는 시체를 태운 재를 흘려 보낸 갠지스 강에서 몸을 담그고 입을 헹구는 사람들을 매일 수도 없이 보시게 될 겁니다."
“불결해.”하고 산조의 아내가 놀라워하며 말했다.
“불결하지 않습니다.” 에나미는 정색을 했다.


이소베는 전생에 일본인이었다는 소녀 ‘라지니’를 찾아 헤매이다 실패한다.

그리고는 암 환자가 한 줄기 희망의 지푸라기도 놓지 못하는 것처럼 인도의 흔한 점쟁이를 찾아가고,

단념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며 끝까지 아내를 찾는다.

“난 찾았어 …… 당신은 아무데도 없었어. 난 찾았어.”

“그 엉터리 점쟁이밖에 난 더 이상 기댈 데가 없어.”

누마다는 구관조 한 마리를 사서 방생해주고, 기구치는 갠지스강에서 쓰카다의 법요를 빌어준다.


이 세상의 중심은 사랑이며, 양파는 오랜 역사 속에서 그것만을 우리 인간에게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세계 속에서 가장 결여된 것은 사랑이며, 아무도 믿지 않는 게 사랑이고 비웃음당하고 있는게 사랑이므로, 하다못해 저라도 양파의 뒤를 우직하게 따라가고 싶습니다.

……

키니네를 먹으면 건강할 때는 고열이 나지만, 말라리아 환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약으로 바뀝니다.

죄란 이 키니네 같은 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저는 아직 신부가 되지 못했습니다. …… 순종의 덕이 부족하다는 것도, 진짜 신앙이 부족하다는 것도, 제가 변함없이 유럽식 기독교만이

절대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고 답안에 쓰거나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다만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일만은 제 인생을 위해서도 결코 하지 않겠노라 생각했습니다.

……

저는 고독하기 때문에 필시 고독할 당신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싶습니다. 한심하게도, 저는 고독합니다……. 수도원 앞에 펼쳐진 갈릴리 호수.

가야금 호수라고도 불리며, 예수의 말씀이 있었고, 가버나움의 마을의 어부 베드로가 고기를 낚던 이 호수는, 오늘밤 달빛으로 반짝입니다.

그분은 …… 아니, 나루세 씨는 일본인이니까 예수라는 이름을 듣기만 해도 경원하실 테지요. 그렇다면 예수라는 이름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세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닭살 돋고 어색하다면, 생명의 따스함이라도 좋아요. 그렇게 부르세요. 그게 싫으면 늘 하던 대로 양파라도 좋아요.

……

신이란 당신들처럼 인간 밖에 있어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 그것은 인간 안에 있으며, 더구나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입니다……. 동양인인 저는 그들처럼 무엇이건 확실히 구별하거나 분별을 할 수가 없습니다 …… 신은 인간의 선한 행위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죄조차 구원을 위해 활용하십니다. 서구의 기독교는 악과 선은 불가분이며 절대 양립할 수 없다고 하며 이런 이원론적 마니교적 생각은 이단이라고 합니다. 저는 신부가 되는 것은 연기당했지만 신앙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오쓰의 편지 中


오쓰는 기독교를 모태신앙으로 가진 남자다. 결국 오쓰는 프랑스에서 신부가 되지 못하고, 인도로 향한다.

인도에서의 사제가 나를 따스히 맞이 해주었다며. 그는 죽기 위해 갠지스 강으로 모여드는 사람을 기다린다.

갠지스 강에서 죽기 위해 먼 거리를 걸어오다 도달하지 못한 불가촉천민들을 위해

그 사람들을 골목 골목 찾아다니고, 인도의 사제들과 시체들을 갠지스 강으로 보내주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는 죽음에 도달한 사람들을 환생의 강 갠지스로 나르며 신의 흉내를 내고 있다 고백한다.

그는 인도에 갔어도 아직 자기는 신부라며, 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풍토에 맞는 기독교를 원한다.

신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며 선과 악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서양의 기독교에 오쓰는 거짓말하지 못하고 쫓겨난다.

신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선과 악은 분별할 수 없다. 는 것을 오쓰는 믿는다. 그리고는 미쓰코에게 무엇이라고 불러도 좋으니 ‘믿으라’고 한다.


미쓰코는 “믿으세요?” 라는 말을 하며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여자다.

미쓰코는 자기가 믿을 무언가를 찾기 위해 인도로 간 것이지 않을까,

그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오쓰라고 느꼈기 때문에 평생 오쓰를 떨쳐낼 수 없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미쓰코는 사랑의 흉내를 내기 위해 병원 봉사를 자처한다.

자신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고 느낀 미쓰코는 사랑을 알고 싶어서 사랑의 흉내를 자처한 것이 아닐까.

사랑을 알고 싶어서 사랑의 흉내를 내는 미쓰코는 과연 사랑을 모르는 사람일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알고 싶다는 그 마음 자체만으로도 사랑이라고 나는 느낀다.

어쩌면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미쓰코)는 엄청난 순수한 믿음을 갈구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미쓰코는 오쓰라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오쓰가 믿고 있는 그것을 탐했고 사랑했다.

순수함을 갈망한 순수하고 관념적인 미쓰코.

그리고 믿음덩어리인 오쓰. 정말 바보같은 바보같은 오쓰.



"결국은 종교조차도 서로 증오하고 대립해, 서로 사람을 죽인다. 그런 것을 신뢰할 수는 없었다. …… 제각기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자신들과 다른 이를 미워하고 있다. 복수나 증오는 정치 세계뿐만이 아니라, 종교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은 집단이 생기면 대립이 발생하고 분쟁이 벌어지고,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한 모략이 시작된다. …… 하지만 외톨이가 된 지금, 이소베는 생활과 인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걸 겨우 알게 되었다."

생활과 인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생활하기보다 인생하기를 해야한다.세상에 맞춰서 가다가는 안된다.

멈춰서 본질적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해야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오쓰가 아닌가 .. 무엇이라고 부르든 믿으라는 오쓰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믿음과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나뉘고, 같은 것을 믿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시지프 신화 Le Mythe de Sisyphe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알베르 카뮈

1913년 11월 7일 알제리의 몽도비에서 태어났다. 포도 농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전쟁에 징집되어 목숨을 잃은 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란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재능을 키우다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학교에 갈 기회를 얻는다. 알제 대학교 철학과 재학 시절,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창작의 세계에 눈을 떠 가는데, 무엇보다 이 시기에 장 그르니에를 만나 그를 사상적 스승으로 여긴다. 1934년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도 가입하지만 내면적인 갈등을 겪다 탈퇴한다. 교수가 되려고 했으나 건강 문제로 교수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고, 진보 일간지에서 신문기자로 일한다. 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철학적 에세이 『시지프 신화』, 희곡 「칼리굴라」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다. 1947년에는 칠 년여를 매달린 끝 에 탈고한 『페스트』를 출간하는데, 이 작품은 즉각적인 선풍을 일으키고 카뮈는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마흔네 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만, 그로부터 삼 년 후인 1960년 1월 4일 미셸 갈리 마르와 함께 파리로 떠났다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정말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자살이다. 인생이 굳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인간은 과연 구원을 호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이 문제가 바로 나의 관심의 전부다. 나는 이 영역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을 생각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몸짓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첫째 이유가 습관이다.

고의적으로 죽음을 택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습관의 우스꽝스러운 면, 살아야 할 깊은 이유의 결여, 법석을 떨어 가며 살아가는 일상의 어처구니 없는 면 그리고 고통의 무용함을 본능적으로라도 인정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시론의 주제는 바로 이러한 부조리와 자살의 관계를 밝히고 자살이 어느 정도로 부조리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데 있다. 속임수를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바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원칙으로 삼아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을 용의가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다.


비극적인 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이러한 태도는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결국 그 사람됨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습관보다 살아가는 습관을 먼저 배워서 익힌다.


인간의 입장에서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세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환원시켜서 거기에 인간의 낙인을 찍는 것이다.

모든 사고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적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의 바탕 위에는 아무것도 세우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오로지 그것만 가지고 살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무엇이 진실인가를 찾는 것은 무엇이 바람직한가를 찾는 것과는 다르다.


실존파의 사람들에게는 부정이 곧 그들의 신이다. 정확히 말해 이 신은 인간 이성의 부정에 의해서만 지탱된다.


인생에 의미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훌륭히 살아갈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어떤 경험, 어떤 운명을 살아낸다는 것은 그것을 남김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곧 부조리를 살려 놓는 것이다.


희망의 또 다른 형태인 후회를 거부한다.


자부심을 가진 마음에 중간이란 있을 수 없다. 신이냐 시간이냐, 십자가냐 칼이냐가 있을 뿐이다. 사람은 타협할 수 있다는 것을, 세기 속에 살면서 영원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를 가리켜 동의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혐오한다. 나는 전체 아니면 무를 원한다. 나는 영원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과 한편이 되고자 한다. 개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개인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개인을 짓뭉개는 것은 세계이고 그를 해방시키는 것은 나다. 나는 그에게 그의 모든 권리를 제공한다.


신 없는 부조리의 세계는 분명하게 생각하고 아무런 희망도 갖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찰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좀 좋지 못한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단순히 자신을 짓누르는 것만 가지고도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러나 행복 역시 그 나름대로 까닭 없이 찾아온다. 왜냐하면 행복은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행복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그것을 자신의 공적으로 얻은 것인 양 생각한다.

















악령 Бесы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 Fy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년 10월 30일 모스크바 마린스키 빈민 병원 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를 졸업했지만 문학의 길을 택한 뒤,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1846)로 당시 러시아 문단의 총아가 되었다. 1849년부터 공상적 사회주의의 경향을 띤 페트라솁스키 모임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지만 극적인 순간에 사형 집행이 취소되어 유형을 떠나게 된다. 사 년간의 감옥 생활과 사 년간의 복무 이후, 잡지 《시대》를 창간함과 동시에 그의 작품 세계에서 이정표가 된 『지하로부터의 수기』(1864)를 발표했다. 이어, 지병인 간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죄와 벌』(1866), 『백치』(1868), 『악령』(1872),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 등 심리적, 철학적, 윤리적, 종교적 문제의식으로 점철된 걸작들을 남겼다. 1881년 1월 28일, 폐동맥 파열로 사망했으며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네프스카야 대수도원 묘지에 안치되었다.



"나는 물론 어떤 종류의 사교에도 익숙해질 수 없었다. 학교에서 친한 친구도 있긴 했지만 그 수는 매우 적었다. 나는 나 혼자만의 구석을 만들어 그 속에서 지냈다."


스타브로긴은 믿는다 해도 자기가 믿는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는 믿지 않는다 해도 자기가 믿지 않는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는 신이 필요하다는 것,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만으로 자살할 이유가 충분히 된다는 것을 어찌하여 그대는 깨닫지 못하는가?”





인간은 자신 외의 그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자기자신만의 신이 되는 것. 그것이 비약하지 않고 기만하지 않는 자기 자신의 생을 산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믿고, 자기 자신의 믿음을 받으며, 자기 자신만을 구원해야한다. 믿는다는 것. 믿음이란 1%의 의심도 없는 것.





작가설명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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