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난 받기 위해 존재해"
당신은 ‘로키’를 아는가? 아마도 마블 영화의 톰 히들스턴을 떠올리며 당신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마블 시리즈로 유명해진 로키라는 인물은, 사실 북유럽 신화 속에서 그다지 지지받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를 위한 온전한 에피소드가 하나 없어 중심 서사의 주인공도 아니며, 언제나 주변인으로만 등장하는 탓에 그 조각조각의 서사들을 이어붙여 간신히 그의 스토리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에다가, 그마저도 부정적인 인물로만 그려진다. 마블 에서 ‘장난의 신’으로 소개되고 있는 로키는 북유럽 신화의 원문 『산문 에다』에서 이렇게 소개된다.
아스 신들 중 하나로 간주되는 자가 있으니, 사람들은 그를 ‘아스 신들의 중상모략가’, ‘음모의 원흉’, ‘모든 신과 인간의 치욕’이라고 부른다. 그의 이름은 로키 혹은 로프트(Lopt)이며, 거인 파르바우티(Fárbauti)의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라우페이 혹은 날(Nál) 이라고 한다. 그의 형제는 뵐레이스트와 헬블린디이다. 로키는 매력적이고 호감을 주는 외모이지만, 성격이 사악하고 행동이 변덕스럽다. 그는 교활함에 있어 모든 이를 능가하며, 속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는 끊임없이 아스 신들을 난관에 빠뜨리는데, 그러다가 그 어려움을 재치 있게 해결해주는 경우도 여러 번 있다. 그의 아내는 시귄이며, 그들의 아들은 나리 혹은 나르피라고 한다. 『산문 에다(1977), 스노리 스툴 루손』
중상모략가, 음모의 원흉, 모든 신과 인간의 치욕. 그것이 바로 로키이다. 하지만 나는 이토록 빌런으로 묘사되는 로키가 단순하게 ‘악’이라는 단어로만 설득되지 않는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난 인간이 만든 존재일 뿐이야! 난 짐을 덜어 주는 존재야. 사람들이 비난할 수 있게 존재할 뿐이지. 그래서 낄낄 대는 도둑과 먹보들, 침대를 정리하지 않는 소년들이 희생양으로 삼도록” 『Twilight of the Gods(2023), Zack Snyder』중 로키의 대사
배신을 일삼고 악랄하기만 했던 로키가 자신을 탓하는 인간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장면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그의 눈물에 사로잡혔다. 마치 평소에 못되기만 했던 영감의 쓸쓸한 뒷모습을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 좀 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서사 없는 존재
앞서 언급했듯『산문 에다』에서 로키는 단편적·나열적으로만 등장한다. 아스가르드의 거의 모든 중요한 사건에 관여하지만, 어떤 사건에서도 ‘나의 이야기’는 갖지 않는다. 중심 서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항상 사건의 가장자리, 균열, 원인과 결과 사이에 배치되는 것이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주변 인물들의 서사에 자주 등장하여 분량을 따지면 로키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언제나 어떤 사건의 발단, 질서가 흔들리는 계기를 제공한다. 서사의 부재와 과도한 개입이 맞물리는 자리에 로키가 있다. 이러한 설정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인 선택처럼 보이며, 로키의 캐릭터성에도 반영된다고 믿는다. 로키는 이야기의 ‘목적’이 아니라 이야기가 발생하도록 만드는 존재이다. 주인공은 보통 극복하고, 성장하고, 의미를 획득한다. 하지만 로키에게는 성장도, 완결도, 구원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는 늘 다음 사건을 열어젖히고 사라진다. 그는 이야기를 살지 못하는 존재이며, 서사를 가능하게 하지만 서사를 가질 수는 없는 존재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굉장히 잔인한 배치인 것 같다. 이 구조는 로키에게 말한다. “너는 늘 필요하다. 하지만 너 자신을 말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늘 어떤 것을 탓하고 또 탓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만, 그 어떤 것을 탓하고 나서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배제하는 것과 아주 닮아있다.
트릭스터의 기능
북유럽 신화에서 로키는 신들에게 유익한 일을 해주다가 토르를 죽이려고 하는 등의 해로운 사건들을 일으킨다. 결국에는 거인들을 이끌고 앞장서 신들의 종말인 ‘라그나로크 (Ragnarök)’를 일으키기에 이르고, 중간계와 천상계의 경계를 지키는 수문장 헤임달 (Heimdallr)과 함께 파멸한다. ‘자기기만, 비난’. ‘중상모략가, 음모의 원흉, 모든 신과 인간의 치욕’의 신 로키는 왜 신들에게 이로운 존재였다가 신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존재로 변화했을까? 그리고 어디에서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로키를 어째서 라그나로크를 일으키게 하는 장본 인으로까지 설정할 수 있었던 걸까? 전체적인 서사를 보았을 때는, 로키가 신들의 조력자에서 파멸의 주도자로 변화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로키가 변화한 것이 아니다. 로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변한 것은 신들이다. 초기의 로키가 신들에게 유익했던 이유는, 신들이 아직 완전하지 않았고 세계가 아직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의 신들은 실수도 하고, 속기도 했으며 로키의 계략을 통해 더 강한 무기(묠니르, 그룽니르 등)를 얻기도 한다. 즉, 로키의 교란은 성장의 연료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들은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질서의 유일한 중심으로 믿고 세계를 고정된 선악 구조로 관리하려 든다. 또한, 책임을 타자에게 떠넘기기도 한다. 이러한 순간부터 로키의 기능은 더 이상 ‘도움’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기기만 위에 세워진 질서는 교란을 ‘위협’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보다 강하지만, 인간보다 자유롭지는 않다. 왜냐하면 신은 숭배받아야 하고, 질서를 유지해야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한다. 신에게 자기기만은 “우리는 옳다”라는 세계를 유지하는 장치가 되며, 그리고 비난은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틀렸다”는 증명 방식이다. 이 곳에 바로 로키가 존재하며, 이 지점을 지적하는 존재가 바로 로키이다. 로키는 신들이 선택했다는 사실, 신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존재이다. 그래서 신들은 그를 필요로 하면서도, 그가 드러내는 진실을 끝내 견디지 못한다. 결국 그를 고문하고 세계의 밑바닥에 가두는데, 이것은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자기기만을 지키기 위한 봉인이다. 또한 ‘아무 서사도 없는 로키’가 종말을 주도하는 것은 신화적, 상징적으로 매우 정교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로키는 자기 입장을 말할 서사를 제공받지 못함으로서 변명할 기회조차 없었고, 오직 결과로만 남게 된다. 사람들의 자기기만, 비난, 탓을 위해 존재하는 로키는 말없이 모든 모순을 수용하는 그릇으로 변모하며, 결국 이 모순들이 쌓여 세계의 종말인 라 그나로크가 일어나게 된다. 로키가 라그나로크의 주도자라며 또 비난하고 싶겠지만, 결국 로키는 그저 트리거로 작용했을 뿐이며, 이 종말은 내부의 필연이었다. 로키가 이끄는 거인들 또한 완전히 외부의 존재가 아니다. 거인은 신들의 친족이며, 이미 세계 안에 있었던 존재들이다. 즉, 라그나로크는 외부의 악이 침입한 것이 아니라 배제된 것들이 돌아온 사건이다. 그 선두에 질서에도 혼란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했던 로키가 서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논리적인 결과다. 자기기만 위에 세워진 질서(=신)는 반드시 자기 내부의 ‘비난, 자기기만, 교란(=로키)’에 의해 무너진다. 더욱 슬픈 것은 그 파괴자는 처음부터 악이 아니었으며, 끝까지 스스로를 설명할 기회도 없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화자가 처음 느꼈던 ‘로키가 단순하게 [악]이라는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 불편한 감정’이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만들어진 신
여기서 다시금 주목해야할 로키의 대사가 있다. ‘난 인간이 만든 존재일 뿐이야!’ 그렇다. 신은 인간이 만드는 존재이다. 인간의 믿음이 있어야 신이 존재한다. 믿음이 강해지면 신의 힘이 세지고, 신은 자신을 질서의 유일한 중심이라고 믿게 된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만이 옳다고 믿게 되는 것과 같다. 신은 인간의 두려움, 욕망, 자기합리화, 확신이 뭉쳐진 결과물이며, 그래서 신이 타락하는 순간은 신이 나빠졌을 때가 아니라 인간의 믿음이 스스로를 절대화했을 때이다. 우리는 보통 믿음을 희망,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의 로키의 존재는 믿음은 책임을 외주화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외치고 있다. ‘운명이었다’,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신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 순간부터 인간은 자기 선택에서 빠져나오고, 그 빈자리를 로키 같은 존재가 채우게 된다. ‘짐을 덜어주는 존재’, ‘비난받기 위한 존재’라고 자기 자신을 외치고 있는 로키의 발화는 매우 정확하고 외로워보인다. 이러한 신, 로키를 만든 존재가 우리라는 것을 기억하자.
헤임달과 로키
라그나로크에서 로키는 헤임달을 죽이면서 함께 파멸을 맞게 된다. 로키는 왜 하필 헤임달과 함께 파멸했을까? 헤임달은 중간계와 천상계의 경계를 지키는 수문장으로, 질서의 파수꾼, 경계의 수호자, 즉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존재이다. 하지만 로키는 경계를 흐리는 자, 질서를 교란하는 자, 이쪽도 저쪽도 아닌 존재(거인 출신이지만 신들의 세계에서 어울리는 것처럼)이다. 이 둘이 서로 파멸하는 순간은, 질서를 절대화한 믿음과 그 믿음을 끝까지 드러낸 비난이 동시에 소멸하는 순간이다. 즉, 기존의 믿음이 붕괴된 순간, 신들의 세계가 끝 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기 직전의 공백을 의미한다. 하지만 로키이든 신이든 살아있다. 인간의 믿음과 자기기만이 계속되는 한. 주인공이 된 적 없지만, 어디서든 주변인으로 존재하며 불씨를 일으키는 로키의 위치처럼 그는 주인공이 아니어도 살아남는 유형의 인물이다. 그에게 영웅적 여정이나 명확한 교훈은 없지만 우리는 로키를 기억한다. 사람들이 신화에서 기억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역할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로키와 같은 트릭스터를 기억한다. 트릭스터들은 거의 모든 문화권에 존재하는데, 그리스의 헤르메스 혹은 디오니소스, 아메리카 원주민 신화의 코요테, 아프리카 신화의 아난시, 동아시아 신화의 여우와 손오공 등이 그 인물들이다. 이 트릭스터들은 선악을 넘나들고, 질서를 교란시키며 사랑스럽다가도 미움을 받는다. 이렇게 인간의 모순을 가장 닮은 신적 형상이기에, 이들은 인간의 무의식이 박히게 된다. 그들은 시대마다 다시 쓰일 수 있는 인물이다. 마블의 로키가 대중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왔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로키는 항상 못된 장난을 치고, 음모를 꾸미고, 나쁜 짓을 하는 악동이다. 그는 비난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믿음을 절대화하고 신의 힘을 키우는 동시에 그의 외로움도 증폭시킨다. 인간이 그를 탓하고 미워하는 이유는 그가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탓하고 미워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기만이 되어 쌓이고 쌓여서 결국 하나의 세계는 파멸하게 된다. 그 모든 선택들은 당신이 한 선택들이다. 당신의 로키도 울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