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지 않은 존재

에필로그

by 시원

두 달간의 일정을 끝냈다. 눈에 띄는 큰 변화, 같은 건 없다. 여러 번 말했지만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다.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불편했고, 불편한 몸을 이기지 못한 몸은 급기야 탈이 났다. 이제는 의지가 몸의 시간을 이기지 못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나이에도 세상에는 못해 본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이곳에서 다시 확인했다. '젊음'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이곳에서 젊고 어린 친구들과 지내는 동안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시간'이 부러웠다. 시도하고 실패하고, 좌절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 그리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그들의 젊은 몸이.


실용적인 언어로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전달할 길이 없다.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셈하는 방식으로 이 시간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는 많이 늘었냐?'는 질문에도 만족할만한 답을 할 수가 없다. 영어가 늘었다기보다는 망설임 없이 아무렇게나 말하는 배짱이 늘었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이런 작은 변화가 기쁘다. 아직은 '뭔가를 시작해도 된다'는 신호이기도 하니까. 나의 마음이, 나의 생각이 딱딱하게 굳어있지 않구나. 아직은 변할 수 있는 여지가 있구나. 아직은 내가 미완성이구나. 낯선 곳에서 좌충우돌하며 수시로 이것을 감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좋았다. 내가 여전히 무르익지 않은 존재라는 발견이.


나를 가르친 카밀라와 리엔은 굿바이 엽서에 나를 '적극적인 사람'이라고 썼다. 나이를 고려한 표현이겠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적극적인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영어공부를 멈추지 말라는 파울라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나는 다시 영어 앱을 켤 것이다. 칠십에는 유창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영어뿐이겠는가. 아직은 세상에 못해 본 것이 많으니 몸을 살살 달래 가며 낯선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일도 재미있을 것이다.


편안하고 안락한 집으로 돌아와 몸을 추스르고 있는데 일주일 만에 보영 씨가 SNS로 연락을 했다.


"오늘 새로운 학생들이 들어왔는데, 74세 일본분이 오셨어요. 여성이예요."


보영 씨가 보내 준 사진에서 '74세 일본분'으로 보이는 분이 활짝 웃고 있었다.



이전 12화Thank you for every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