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동네 레스토랑에 앉아 버섯 수프를 먹었다. 순례길에서는 자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보상으로 맛있는 것을 먹는 것만 한 게 없다. 나는 순례길을 걷는 동안 음식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스페인 물가가 한국보다 싼 게 참 다행인 일이다.
짐은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의 수녀원 알베르게에 풀었다. 첫 번째 순례에서도 친절했던 수녀님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는 알베르게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등록 후 특정한 일정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머무르는 순례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 후, 희망자는 미사에 참석하고 식사를 함께한다.
수녀님들은 성가를 부르며 기도를 드렸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노래에 집중했는데, 폭염과 벌레 걱정으로 매일 이어졌던 긴장이 풀려나갔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내 마음은 견고했고 무릎이 아파도 굴하지 않고 한계를 이겨내며 걸었다. 울고 싶었지만 실제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사실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건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그랬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기로 마음먹었음에도 쉽지 않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지는 것으로 여겼고, 인생을 레이스라고 생각했고, 완벽해야 했다. 수녀님들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 한편이 둑이 터지듯 뚫리더니 눈물이 차올랐다.
그 뒤 모임 시간이 되어 성당에서 나와 알베르게 1층으로 향했다. 수녀님들이 순례자들을 위해 중앙 홀에 자리를 마련하여 성당에서처럼 노래를 불러주셨다. 스페인어라서 의미도 모를 노랫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다시 눈물이 맺혔다. 내가 왜 이러는 것인지, 눈이 시뻘게질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목소리를 통해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마치 “그래, 너 힘들었던 거 다 안다”라고 말하며 누군가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수녀님들의 노래가 끝난 후, 순례자들끼리 돌아가며 이름과 국적, 순례길에 온 목적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
졌다. 나는 아버지께서 지난해 돌아가셨고 힘든 시간을 거쳤는데, 이를 기억하고 앞으로 살아나갈 힘을 얻고자 왔노라고 이야기했다.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순례자들이 초롱초롱하게 나를 바라보는 그 따뜻한 눈빛에 감동해서 울컥했다.
이후, 순례자들이 4곡 정도 자원해서 노래를 부르는 시간을 가졌다. 기타 반주와 함께한 네덜란드 순례자의 아름다운 음색을 들은 다음, 수녀님께서 뜻밖의 제안을 하셨다. 자신이 한국 노래 1절을 불러줄 테니 2절을 불러보라고, 나와 한 명의 한국 순례자에게 말씀하셨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반강제 수락을 했는데, 완벽한 발음으로 부르시는 노래가 무려 아리랑이었다. 스페인 수녀님께서 부르는 아리랑이라니! 나는 놀라운 마음을 뒤로하고 수녀님과 순례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2절을 불렀다.
다른 순례자들의 노래가 끝난 후, 순례자 특별미사와 식사를 함께 했다. 이곳에서 다른 순례자들의 에너지가 너무 크게 다가온 덕에, 내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것이 풀려나갔다. 이상하게 순례길 중간쯤부터 자꾸 눈물을 글썽이게 됐는데, 길의 끝에서는 펑펑 울면서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 갔을까> 중에서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 갔을까> 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