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의 핵 개발, 그 뒷 이야기

by 이타북스

1964년부터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한국은 베트남에 국군 30만 명 넘게 파병했다.


파병의 이유는 단 하나,

주한 미군의 철수를 막기 위해.


당시 전투 병력이 모자랐던 미군은 한국에 주둔했던 2개 사단을

베트남에 전환 배치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철수는 국가안보상 엄청난 위협이었기 때문에

박정희 정부는 파병을 결정했다.


그런데 닉슨 독트린 선언 후 상황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아시아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방위의 1차적 책임은 당사국이 져야 하고,

미국은 선택적이고 제한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이후 급하게 한미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대한민국은 예외라는 답변을 들으며 안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1970년 7월, 1년 뒤

주한미군 2만 명을 철수하겠다고 선포하였고

이후 5년 내로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선포하였다.


결국 미국은 한국의 국력이 북한 위협을 독자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며

박정희 대통령 시절 1971년, 주한미군 제7사단 2만 명이 철수했다.


주한미군의 철수는 대한민국의 안보에 큰 위협이기에

박정희 대통령은 닉슨에게 급히 손 편지까지 써서

마음을 돌려보려 했지만 이런 답신이 왔다.


“존경하는 박정희 대통령님,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이참에

한국의 방위력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나라라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때 박정희 대통령은 심각한 안보 위협을 느끼고 '자주국방'을 결심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결국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되고,

20세기 후반 최고의 물리학자를 한국으로 데리고 오는데...


대한민국은 핵을 가져야 하는가?


박정희 정권 핵 개발 비사를 다룬

밀리언셀러 작가 김진명의 장편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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