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영화는 계속될 거야, 다큐멘터리는 끝나지만"

조나스의 뒷마당 서커스(2015)

by etcc


조나스는 서커스가 하고 싶다. 조나스의 조부모와 부모는 모두 서커스 단원 출신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어린 조나스가 서커스 하는 걸 반대한다. 아직 학교 공부를 해야 할 나이라는 것이다. 대신 조나스는 방학 때 집 뒷마당에 친구들과 직접 서커스 공연장을 만든다. 매표소까지 지은 뒤 스피커를 들고는 온 동네를 돌며 서커스를 홍보한다.





MV5BMmE1NTFiMWUtZThiMS00ODVjLTg1NTktOWY1MjQyYzkzNDQ1L2ltYWdlXkEyXkFqcGdeQXVy.jpg?type=w1
MV5BZTc4ZjJmNzctNjJmZi00NDdlLWE3ZjYtZDc4MWY2YjNiODVlXkEyXkFqcGdeQXVyNjgxNTAwNjQ@._V1_SX1777_CR0,0,1777,744_AL_.jpg 출처: imdb




집안 대대로 전해진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과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막는 가족들이 대립하는 이 이야기는 디즈니 영화 <코코>와 닮았다. 가족 규칙으로 노래를 금지했으면서 평생 아버지의 노래를 기억했던 코코 할머니처럼 조나스의 엄마도 여전히 떠나온 서커스를 그리워한다.


그럼에도 엄마는 조나스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주기 위해 서커스를 금지한다. 서커스 단원의 운명인 떠돌아다니는 삶의 고단함을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커스 이동 중 트레일러가 전복되는 사고로 조나스의 얼굴에는 상처가 남았다. 그 사고는 엄마에겐 소중한 아이를 잃을 뻔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 너한테 더 나은 삶을 주려고 서커스단을 떠난 거야


- 엄마는 질릴 때까지 서커스를 했잖아요


-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 나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라는 어른들의 말은 현재를 사는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에 대항하지 못한다. 학교 소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방학을 맞아 조나스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작당을 한다. 바로 뒷마당 서커스다. 아이들은 직접 나무를 깎아 그네를 만들고 매표소도 짓는다. 마이클 잭슨의 춤과 그네 묘기, 저글링을 연습한 뒤엔 리허설을 반복한다. 얼굴 분장도 빼먹지 않는다. 서커스의 기본은 다 갖췄다. '뒷마당 서커스'에서 제일 귀여운 장면은 표값을 정하는 부분이다.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작은 공연예술이 왜 더 필요한지 생각해보게 됐다.







%E3%85%A1.png?type=w1




- 2~3 레알이면 괜찮잖아


- 아니, 애들은 1 레알, 어른은 2 레알 받자


- 아기들은 무료야


- 4살 이하는 공짜로 하자




결국 정해진 티켓 가격은 아이 1 레알, 어른 1.5 레알








%E3%85%9C%E3%85%9C.png?type=w1
%E3%85%91%E3%85%95.png?type=w1




- 신사, 숙녀, 어린이 여러분




라는 대사가 생경하다면, 그동안 어른 중심 공연이 아이들을 얼마나 소외시켰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이 어린이 공연예술가들은 관객들을 위해 사탕과 껌, 팝콘까지 준비하는 세심함을 발휘한다.







다큐멘터리는 서커스의 탄생부터 끝을 다루지만 그게 이 다큐멘터리가 중점을 두는 부분은 아니다. 다큐멘터리는 카메라가 소년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그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지 않았다면, 조나스의 뒷마당 서커스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서커스를 반대하는 소년의 어머니가 방학 동안 뒷마당 서커스를 허락하는 데는 촬영팀이 지불하는 출연료가 유효하게 작용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물건을 떼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팔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조나스의 뒷마당 서커스에서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했던 친구들도 그렇다. 하나 둘 사정이 생겼다며 서커스를 떠나는 친구들은 처음에 신기해했던 카메라에 곧 흥미를 잃었을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면서 조나스의 삶도 변한다. 개학 첫날 조나스를 찍는 촬영팀을 본 같은 학교 학생들은 조나스에게 왜 하필 널 찍냐고 묻는다. 조나스는 쑥스럽다는 듯 그냥 웃어넘긴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감독에게 묻는다. “왜 저를 찍나요?” 어쩐지 슬퍼 보인다. 소년의 질문에 대한 감독의 답은 다큐멘터리에서 촬영 대상과 감독의 관계가 단순히 수단이어서는 안 되고 그럴 수도 없음을 보여준다.





- 오늘은 어땠니?


- 좋았아요. 평범한 하루였어요. 아니, 평범하진 않았어요. 모르는 애들이 여러 명 와서 왜 다큐멘터리를 찍느냐고 물었어요. 왜 하필 제가 주인공이냐면서. 제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냐고 물었죠. 할 말이 없었어요. 왜 저를 주인공으로 선택했어요?


- 음… 왜냐하면… 넌 서커스를 하지? 우리는 영화를 찍고. 네가 공연을 위해 연습하고 애쓰는 것처럼 우리도 영화를 만드느라 고생해. 네가 공연을 하려고 친구들을 모으는 것처럼 우리도 친구들을 모아 영화를 만든단다.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면…


- 제 마음이 아플 거예요.


- 네가 서커스를 못 하면 내 마음도 아플 거야. 그래서 우리가 영화를 만드는 거란다.





%E3%85%A0.png?type=w1
%E3%85%93%E3%85%93.png?type=w1










다큐멘터리 감독과 대상 사이의 실제적 만남을 강조하는 참여적 양식의 다큐멘터리를 시네마 베리떼라고 한다. 다이렉트 시네마와 여러 면에 있어서 유사한 점이 있으나 시네마 베리떼는 감독의 내레이션이나 인터뷰가 삽입되는 등 감독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에서 다이렉트 시네마와 구분된다.



시네마 베리떼의 효과를 정확히 알지 못했는데, 감독의 존재를 관객에게 노출함으로써 진정성을 확보한다는 것을 이 다큐를 통해 알게 됐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감독도 하나의 출연진으로 역할하며, 주인공에게 질문하는 목소리가 편집되지 않고 나온다. 거울에 비친 카메라 감독의 모습도 숨기지 않는다. 심지어 조나스의 엄마가 감독한테 근처에서만 다니라고 당부한다거나 조나스의 늦잠에 불평을 털어놓기돜ㅋㅋㅋ


소위 관찰 예능들과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관찰 예능 속 연예인들은 vj들의 존재를 철저히 없는 셈 쳐야 한다. 그래야 '리얼리티'가 더 산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예외적이다. 출연진들이 편하게 카메라의 존재를 잊을 수 있도록 작은 텐트 안에 몸을 숨기고 촬영하던 예능이 요즘엔 출연 아이와 vj의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E3%84%B7.png?type=w1 거울에 비친 감독의 모습. 조나스 늦잠 자고 일어나서 감독한테 인사함;;
%E3%85%85.png?type=w1 감독은 일이다.




- 카메라 의식하지 말고




라고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감독은 의식적으로 다큐멘터리에 덧붙였다. '이건 카메라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관객들에게 자꾸 일깨워준다. 카메라의 촬영 대상/연관된 인물들이 카메라를 상당히 의식하는 것도 그대로 내보낸다. 카메라가 재현하는 현실이 현실과 다를 수 있음을 관객들에게 인지시키기 위함이다.


한 예로 조나스의 학교 선생님이 "조나스는 촬영 팀 앞에서만 얌전하고 촬영이 끝나면 학교를 박차고 나간다"며 "다른 모범적인 학생을 촬영할 수 없겠느냐"라고 불만을 표하는 장면도 그대로 들어가 있다. 조나스가 자신이 꾸린 서커스를 그만두게 될 때 다름 아닌 촬영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조나스는 촬영팀에게 서커스단을 운영하는 삼촌에게 연락할 테니 진짜 서커스(!)를 찍으라고 권하기도 한다. (순수한 조나스 ㅠㅠ) 이처럼 현실 속 다큐멘터리 출연진들의 촬영에 대한 이야기가 <조나스의 뒷마당 서커스>를 이룬다.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는 결말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디즈니의 익숙한 Happily ever after 같은 해피엔딩이라면 더욱 그렇다. <코코>는 미구엘이 가진 노래에 대한 재능으로 가족들이 다시 화목해진다. 그러나 <조나스의 뒷마당 서커스>의 조나스는 서커스를 계속하지 못한다. 엄마는 서커스 단장인 삼촌에게 조나스가 찾아가더라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단단히 말해두었다. 다큐멘터리의 결말에서 속상해하는 조나스에게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3.png?type=w1
4.png?type=w1
5.png?type=w1
6.png?type=w1
7.png?type=w1
8.png?type=w1
다큐멘터리 감독의 직업윤리란 이런 것이 아닐까?







다큐멘터리가 끝난 뒤 브라질에서 살아가고 있을 조나스를 떠올렸다. 나도 모르게 노트북 옆의 귤 두 개로 저글링을 하면서 말이다.



누군가의 삶이 내게 스며드는 다큐멘터리, <조나스의 뒷마당 서커스>였다.







http://www.pooq.co.kr/player/vod.html?programid=E01_10024128

(사진 출처: POO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