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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14. 2024

손톱의 진실

습관은 이어진다, 새롭게.

  일 년째 두 아이의 손톱이 자라지 않았다. 발톱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자를 만큼 잘 자라는데 손톱은 자를 데가 없다. 아이 친구도 울이와 꿍이처럼 손톱이 자라지 않아 여러 소아과며 대학병원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결과는 이상 없음. 혹시 모르니 나도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건지, 좀 더 기다려봐도 괜찮은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맘카페며 블로그며 여기저기를 검색해 봐도 신통한 방법이 없었다.


  하루는 아이를 데리러 발레 학원에 갔다. 아이는 친구를 기다리면서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고 있었다. 저거였다, 손톱이 자라지 않았던 이유가. 아이에게 물었더니 그동안 엄마가 안 볼 때 손톱을 물어뜯었다고 했다. 심심하거나 지루할 때 혹은 초조해지면 손이 입으로 향했다. '손톱의 진실'을 알고 아이 친구 엄마에게 전했더니 그집도 같은 이유였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단다.


  엄마가 알게 되자 아이는 집에서도 수시로 손톱을 물었다. 엄마는 애가 탔다. 뭐가 문제길래 자꾸 손톱을 무는 거야. 손톱을 뜯는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손톱, 손톱, 손톱!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을 입에서 떼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 손톱을 잘라주고 싶은데 자를 부분이 없다


  인터넷에서 손톱 무는 습관을 검색하고 괜찮은 방법이 있는지 찾았다. 혹시 정서 불안인 걸까, 사랑이 부족해서인 걸까, 걱정이 늘어간다. 원인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지루하고 심심해서 손톱을 뜯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좋은 방법이 뭘까 고민하던 중 단톡방에서 손톱 이야기가 나왔다. 여러 엄마들이 손톱 뜯는 아이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다.


  이거 한 번 보세요. 손톱 보호제래요.


  투명한 매니큐어처럼 보였는데 맛이 나면서 해롭지 않은 성분으로 만든 거라고 했다. 후기가 백여 개 넘었고, 아이 습관을 고쳤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는 신기한 게 많구나, 감사한 마음으로 바로 주문했다.




  며칠 후, 습관을 고칠 매니큐어가 도착했다. 눈치가 빠른 녀석들이니 맛이 이상하다고 바르지 않겠다고 할까 봐 미리 단단히 일러두었다.


  이거 매니큐어인데 손톱을 건강하게 해주는 거야. 그런데 입에 대면 쓰니까 맛보면 안 돼.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 좋게 매니큐어를 발랐다. 그리고 그날 밤 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꿍이가 거실로 뛰어나왔다.


  물, 물!

  왜, 무슨 일이야?

  엄마, 실수로 손톱을 물었는데 너무 써. 으웩이야.


  꿍이는 매니큐어의 쓴 맛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다시는 입에 안 넣겠다고 말하는 걸 보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엄마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났다. 결과는 반반이다. 울이는 손톱 무는 습관이 완전히 없어졌다. 꿍이는 매니큐어를 바른 날은 손톱을 뜯지 않지만, 며칠 지나 깜박한 날이면 어김없이 손톱 윗부분이 없다. 사흘에 한 번씩, 습관이 사라질 때까지 발라주는 중이다.


  문제가 다시 생겼다. 울이는 손톱을 뜯지 않는 대신 책의 모서리를 구기기 시작했다. 엄지손과 검지 손으로 책의 끝부분을 돌돌 말고 찢는다. 문제를 풀 때, 책을 읽을 때 수시로 손이 움직인다. 그 모습을 본 동생도 책 구기기에 동참했다.


  이쯤 되니 잘 모르겠다. 아이가 하는 행동을 일일이 하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엄마도 문제인 것 같고, 그렇다고 그대로 두자니 그것도 아니고. 어쩌지, 어떡하지. 저 습관도 고쳤으면 좋겠는데. 울이와 꿍이가 보는 책이 너덜너덜하다. 습관 하나를 고쳤다고 좋아했더니 반갑지 않은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아이의 학교 책은 한장한장 곱게 구겨놓은 덕분에 책 두께가 두 배로 부풀었다.


  너희 도서관 책은 절대 구기면 안 돼. 또 그러면 도서관 책 이제 안 빌려줄 거야! 


  엄마는 또다시 협박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닌 것은 그냥 두자고 생각한다. 그만 구겨, 그만 물어뜯어, 잔소리가 자꾸 차오르지만 우리집 책이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눈을 다른 곳에 둔다. (우리집 책은 중고로 팔 수 없겠구나. 너희들 도서관 책은 손무릎 하고 봐야 한다.) 대신 울이가 책을 곱게 보고 있을 때, 꿍이의 손톱이 자를 수 있을 만큼 길었을 때 폭풍 칭찬을 해줘야겠다 다짐한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또 모른다. 나도 모르게 불쑥, 아이들에게 '그만, 그만!' 외치고 있을지도. 얘들아, 엄마도 잔소리 줄일게. 너희도 좋은 습관 만들지 않을래?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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