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문제집을 풀다가
겨울방학이 시작되던 날, 울이랑 동네 서점에 갔다. 4학년 1학기, 3학년 2학기 디딤돌 수학 문제집을 사기 위해서였다. 새로 나온 마법천자문 68권과 69권을 고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3학년 문제집은 이미 한 번 풀었지만 복습 차원에서 사기로 했다.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면 실력이 쑥 올라갈 거라는 달콤한 말에, 울이의 눈이 반짝였다.
첫 마음과 달리, 틀린 문제를 푸는 일은 지지부진했다. 울이는 문제가 잘 풀리지 않으면 장화신은 고양이의 눈빛을 보내며 도와달라고 했다. 엄마가 혼자서 풀어보라고 거절하면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끙끙대다 풀어내면 다행이지만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을 때는 문제집을 탁 덮으며, "나 안 해!" 소리를 빽 질렀다.
어제도 그랬다. 148쪽 23번 문제가 말썽이었다. 1초에 500mL씩 나오는 수도가 있는데 13L 500mL인 통에 물을 받으려고 했더니 구멍이 나서 1초에 50mL씩 물이 빠져나간다면 통에 물을 가득 채우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인지 구하는 문제였다.
엄마, 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어디에 구멍이 났다는 말이야? 수도야, 통이야?
문제를 다시 읽어 봐. 수도는 물이 나오는 곳이잖아. 그럼 어디에 구멍이 났겠어?
통..? 그럼 통에 구멍이 났는데 어떻게 물을 받아? 다 새잖아.
문제를 처음부터 설명해줘야 하나, 혼자서 풀어보라고 해야 하나. 도와주면 계속 엄마를 찾을 텐데. 엄마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마침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고, 통화가 시작된 걸 본 울이는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엄마는 내 말은 안 듣고. 이거 모르겠다고. 왜 구멍 난 통에 물을 받냔 말이야! 이 문제를 대체 왜 만든 거야!
울이는 엄마를 탓하다가 문제를 원망하다가 이제는 출제자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시계 바늘은 어느새 밤 10시를 가리켰다. 울이는 콧김을 뿜어가며 공책에 문제를 풀고 있다.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엄마는 아이에게 자러 가자고 여러 번 말해보지만 응답이 없다. 내일 풀어도 된다는 말에 냉큼 이불속으로 달려올 줄 알았는데. 안 되겠다. 불을 끈다고 해야겠다.
오늘 열 문제 풀고 잘 거란 말이야.
울이는 못 이기는 척, 엄마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왔다. 잠이 안 온다며 라디오를 켜자고 했다. 그래그래, 뭐든 좋아. 얼른 자자 우리.
다음 날 아침, 울이가 풀던 수학 문제집에는 '30초'라는 정답과 함께 조그맣게 메모가 적혀 있었다.
그래, 통에 구멍이 나면 두꺼비를 부르는 게 좋겠다.
수학도, 기다리는 일도, 엄마 노릇도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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