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가열식 가습기를 샀다. 10인용 흰색 밥솥처럼 투박하게 생겼지만 전원 버튼을 누르면 5분 안에 부글부글 수증기를 내뿜고, 자동으로 습도 조절이 되고, 물을 다 쓰면 스스로 전원이 꺼지는 기특한 녀석이다. 덕분에 요즘 집안 공기가 더 훈훈하고 촉촉해졌다.
조금 불편한 게 있다면 4리터 용량이다. 저녁에 물을 채워 두면 새벽에는 물이 부족해서 멈출 때가 종종 있다. 요즘에는 자기 전에 물을 더 채우고 있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잠들기 전, 오후부터 작동 중이던 가습기를 끄고 물통을 꺼냈다. 싱크대에 가져가 물을 최대 용량치만큼 담은 후, 손 끝으로 가습기 윗부분을 잡고 조심조심 옮기는 중이었다. 가습기에 물통을 넣으려는 찰나, 손에서 물통이 미끄러졌다. 거실은 순식간에 물로 흥건해졌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 첫째 울이는 방에서 자고 있었고 둘째 꿍이는 잠이 안 온다며 엄마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엄마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멍하게 거실 물바다를 보고 있었고, 꿍이는 엄마보다 먼저 주방에 있는 키친타월을 가져와 거실 바닥을 훔치기 시작했다.
꿍이야, 고마워. 근데 이거 물 양이 많아서 수건으로 닦아야 할 거 같아. 잠시만 기다려줘.
꿍이는 엄마를 도와주고 싶어 수건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물기를 휴지로 닦아냈다. 그러면서 엄마에게는,
엄마,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어. 괜찮아.
너그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토닥이는 게 아닌가.
거실에 쏟은 물이 나무바닥으로 스며들어 짙은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물을 닦고 흥건해진 수건을 싱크대에 가서 짜내고, 다시 거실 바닥을 닦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종종거리며 엄마를 따라 바닥을 닦는 꿍이가 기특하고 고마웠다.
만약 아이가 이런 실수를 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다다다다 아이를 다그치고 쏘아붙였을 모습이 그려졌다. 아직 힘이 약한데 왜 가습기 물통을 들겠다고 했으며, 물을 쏟았으니 닦아야 하지 않느냐고.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느냐고 말이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을 아이의 안쓰러운 모습과 무섭게 화를 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자 그만 아찔해졌다. 아이는 엄마의 실수에 이렇게 너그러운데,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
거실의 물기를 닦아내고, 의자 발에 스며든 물기를 말리려고 식탁에 거꾸로 세워두고 나니 한밤의 물 닦기가 끝이 났다. 꿍이에게 이제 자러 가자고 하니, 제 방 대신 엄마 옆에서 자고 싶다며 품으로 쏙 들어온다. 엄마는 아이 덕분에 오늘도 깨닫고 반성하고 배운다.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지, 다정한 엄마가 되어야지, 생각하며 아이 등을 토닥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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