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by 여름

국어사전에서 '어른'을 찾으면 '다 자란 사람' 혹은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나온다. 사십이 넘었지만 물리적 나이로만 다 자랐지, 정신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아이와 부딪치게 될 때,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오후 두 시, 울이가 학원 차에서 내려 걸어오면서 집에 있는 꿍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반갑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언니, 어디야?

나 지금 비밀 통로로 가고 있어.

아, 비밀 통로! 얼른 와. 기다리고 있을게.


혼자 놀고 있어서 심심했던 꿍이는 언니가 집에 가까워졌다는 말에 표정이 밝아졌지만 엄마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통화를 듣다가 귀에 탁 걸리는 낱말이 있어서다. 비밀 통로라니,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구석진 곳으로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피어올랐다.


꿍아, 비밀통로가 어디야?

응, 말 안 해 줄 거야. 나랑 언니랑 채희 언니랑 주현 언니만 아는 길이야.

어둡고 으슥한 데야?

아니! 잘 보이고 밝고 환해. 근데 어딘지 알면 엄마 바로 대폭발 할걸.


꿍이는 아무래도 엄마에게 알려주지 않을 기세다. 걱정돼서 그러는 건데 엄마 마음도 모르고 비밀로 할 게 뭐람. 잘 보이는 곳이라니, 머리로는 모른 척 두라고 하지만 마음은 불안과 아쉬움과 걱정이 한데 엉켜 난리법석이다. 머리와 마음의 대결, 불안의 힘은 이길 수가 없다. 결국 엄마는 9살 아이에게 치사한 협박을 쓰고 만다.


그래, 말해주지 마. 엄마는 계속 모르고 있지, 뭐. 엄마도 이제 안 알려줄 거야. 너희는 계속 그렇게 비밀로 해.

치이. 언니들이랑만 아는 길인데.

말 안 해줘도 돼. 엄마도 이제 안 알려줄 거니까.

히잉.




아이를 키우면서 고민이 생기면 오은영 박사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보곤 한다. 그러면 적당한 말이 떠오를 때가 있지만 불안과 화에 휩싸이면 소용이 없을 때도 많다. '너희 자꾸 그러면 다음부터'로 시작하는 협박의 말이 이어지기도 하고, 중간에 번뜩 정신을 차리면 경고 대신 '속상해'라는 말을 덧붙여 처음부터 협박의 말이 아니었던 것처럼 스리슬쩍 넘어간다.


육아는 어렵다. 엄마를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있어서다. 짜증이 담긴 말투에 덩달아 화가 나다가도 곰곰 생각해 보면 익숙한 내 말투이고, 왜 양보를 않고 자기 것만 챙기나 하다가도 떠올려보면 나도 그렇지 싶다.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서 혼자 끙끙 앓는 것도 엄마에게 나온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며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지다가도 덕분에 내가 좀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이들 덕분에 엄마도 계속 자라는 중이니까. 실수하고 깨닫고 또 실수하지만 반성하고 실천하는 덕분에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미지: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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