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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n 18. 2024

주차하고 싶어요

  운전을 하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어떤 것이든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갈 수 있는 좁은 골목을 진입했는데 건너편에서 차가 들어오고 있고 내 차 뒤에도 차가 따라 들어오고 있을 때, 약속 시간이 다 되어 얼른 주차를 해야 하는데 어디에도 주차할 곳이 없어서 빈자리를 찾아 뱅글뱅글 길을 돌아야 할 때. 초보 운전자는 그런 때가 오면 운전석에서 내려서 누구에게든 차를 맡기고 도움을 구하고 싶어진다. 



  몇 달 전 건강검진을 받았다. 초음파를 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불안하고 번거로운 마음에 검진을 미루고 미루다 겨우 예약을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검진받는 것보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운전이었다. 옆 동네에 있는 병원이라 거리는 가까웠지만 주차장이 좁았다. 병원 근처에 자리가 있으면 골목 어딘가에 주차를 하려고 했는데, 이미 차들이 들어서 있어 자리가 없었다. 

  병원 안에 주차할 곳이 있어야 할 텐데. 없으면 다시 나오면 되지 뭐. 

  불안해지는 마음을 애써 비우며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병원 입구에서 들어서니, 주차를 도와주시는 아저씨가 오른쪽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그곳에는 이미 차들이 많았다. 남은 곳은 한 자리. 좁아서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주차할 수 없는 자리였다. 내가 앞으로 가지 않고 머뭇거리자 빨리 움직이라는 듯 아저씨가 손짓이 커졌다. 맞은편에서 차가 나가려고 기다리고 있어서 내 차를 어서 움직여야 했다. 할 수 없이 아저씨가 알려주신 곳으로 향했다. 


  어떻게 하지?

  주차할 공간이 너무 좁았다. 왼쪽은 내 차 크기의 두 배가 넘는 트럭, 오른쪽에는 매끄럽게 생긴 벤츠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차들 사이에 내가 들어가야 하는데, 앞 공간이 좁아 후진 주차를 할 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병원 밖으로 다시 나갈까 싶어 들어왔던 입구를 보니 차들이 계속 오가고 있다. 도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모른 척 여기에 이중주차를 하고 검진을 받고 나올까? 검진하는 데 갑자기 차 빼라고 전화가 오면 어떡하지? 그것도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주차를 하지도 못하고 차를 도로 빼지도 못한 채, 그렇게 차 안에서 방법을 고심했다. 이럴 때는 초보운전 실력이 원망스럽다. 얼마나 멈춰 있었을까. 아저씨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내 차 앞으로 오셨다. 자리가 좁아서 주차를 할 수 없다는 난감함을 표정으로 최대한 드러냈다. 


  핸들 돌려서 뒤로 가요, 뒤로 가.

  거기서 뒤로 가면 자리가 안 나온다니까. 핸들 더 돌려. 더 더. 아니, 지금 핸들 돌리면 안 되지. 그대로 뒤로. 쭉 쭉. 

  아저씨의 말과 손짓에 의지해서 핸들을 돌리고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았다. 혹시나 옆 차들을 건드릴까 봐 양쪽을 번갈아 보면서. 아저씨 말대로 하면 옆 차에 부딪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계속 주위를 보면서 아저씨 말을 따르는 수밖에. 내 자그마한 차는 빈자리에 쏙 들어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저씨는 어느새 입구로 돌아가 교통지도를 하고 계셨다. 아저씨에게 가서 정중한 자세로 꾸벅 인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아저씨는 무심하게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이미지 출처: Free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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