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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날 현 Sep 29. 2020

나의 여름밤을 채워준,
「청춘의 문장들」


한국에서 여름을 보내는 내내 어쩌면 나는 마음 쏟을만한 데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고향에 잠시 돌아왔다는 사실, 그것도 고향에서 두 달에 가까운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한껏 들뜨게 했다. 한국에서의 여름은 햇수로 5년 만이었던지라 한여름의 끈적임마저도 한없이 반가울 참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이 없었더라면, 장마도 태풍도 없이 쨍한 날씨가 지속되었더라면, 달뜬 상태로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한국의 여름을 만끽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기에 나는 친정집에 붙박인 날이 허다했다. 낮에는 부푼 마음을 애써 모른 척하며 엄마 아빠 딸로서의 역할에 충실했고 밤이 어둑해지면 방치해두었던 마음을 그제야 슬며시 꺼내어 꼼지락거리면서 여름밤을 지새웠다.




긴 장마가 끝나자 두 차례의 큰 태풍이 찾아와 마를 새 없이 축축한 밤이 이어졌다. 애주가이신 아부지 덕분에 우리 집 냉장고에는 늘상 맥주가 채워져 있었고, 알싸해진 기분이 창밖의 빗소리와 더불어 여름의 감흥을 더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고적한 나만의 밤을 보낼 수가 있었다. 맥주를 홀짝이면서 가만히 비 내리는 소리를 듣고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옛 일기장을 뒤적이고... 그렇게 혼자서 꼼지락 거리다 보면 신기하리만큼 새벽 네시가 금세 찾아왔다.


새벽 네시라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그 시간에 깨어있던 적은 참으로 드물었다. 밤잠이 많은 나는 학창 시절 시험 기간에도 밤샘은 아예 불가능했으니까. 아무리 눈을 부릅 뜨고 용을 써봐도 새벽 한두시가 최대치였다. 친구와 밤새도록 놀아보자고 작정을 하고 만나도 두시가 되면 나는 까무러지기 일쑤였다. 그런 내가 새벽 네시까지 눈을 뜨고 있다니. 스스로도 놀라운 시간이었다. 


시침이 4의 눈금에 꼴깍 다다르는 걸 뜬 눈으로 연일 지켜보면서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건 그 무렵의 오묘한 하늘빛이었다. 방으로 들어와 맥주캔을 딸 때만 해도 분명 새까맣던 하늘이었는데 긴긴밤이 흘러가고 나면 침대 머리맡 위 창문은 푸르스름한 빛으로 진해져 있었다. 지금이라도 잠들지 않으면 곧 해 뜨는 걸 보게 될 거라고, 달빛의 마지막 어스름이 군청 빛 가득한 창을 통해서 나에게 최종 경고라도 하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보내는 모든 밤이 꼭 마지막 밤인 것처럼 매일 아쉬웠지만 나만의 호젓한 밤은 하루 새에 다시 또 찾아올 터이니 이제 그만 스탠드 불을 끄고 잠을 청해야 했다.


잠시 돌아온 내 옛집에서 그 깊은 밤 동안 나는 어디에 마음을 쏟느라 잠을 미루고 있었던 걸까.

꺼멨던 하늘이 퍼레질 때까지 내가 보고 듣고 읽고 쓰던 모든 것들은 어디로 향하는 것이었을까.




여름의 끝자락에 김연수 작가의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을 읽고 나서 보니 지나간 여름밤이 이 책 한 권으로 관통하는 것 같았다. 올여름 내내 밤을 새워가며 마음을 쏟은 곳은 나의 지나간 이십 대였다는 걸 깨달았다.


이 산문집은 집필 당시 서른다섯이었던 작가가 자신을 키우고 사라져간 것들을 두루 추억하는 글이었고, 젊은 날의 그를 사로잡았던 문장이 함께 엮여 있었다. 책의 대부분이 그의 이십 대 초반을 회상하는 글이었는데 스무 살부터 스물다섯 무렵에 대한 감상이 어째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내가 "맹목적이었다"라고 기억하는 나의 이십대. 그 시절이 그의 청춘과 많이 닮아 있었다.


내 이십대를 돌아보며 제대로 안녕이라도 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듯이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며 여름을 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청춘의 문장들을 계기로 과거의 내가 살았던 옛집에서 내 지나간 청춘과 화해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빠져들었고 아파야만 한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 텅 빈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그건 슬픈 말이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p.7 '한 편의 시와 몇 줄의 문장으로 쓴 서문' 중


한가운데가 텅 비어 있는 도넛. 내가 보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었다.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텅 빈 부분을 안고 사는 쓸쓸한 도넛. 서른하나가 된 지금에서야 내가 도넛이었음을 인정하지만 나이의 앞자리가 2를 달고 있던 때에는 내 마음의 한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뭘 해도 허망했고 누굴 만나도 헛헛했다. 현재를 사는 게 아니라 허망하지 않아야 할 미래를 바라보며 살았다. 원인을 모르는 허전함은 근미래에 다다를 충만함을 볼모로 끝도 없는 조건을 붙여서 나를 시달리게 했다. 연애를 하면, 높은 학점을 받으면, 대외활동을 하면, 졸업을 하면, 교사가 되면, 운명의 짝을 만나면, 결혼을 하면……. 때마다의 과제를 생각하느라 나는 매 순간에 집중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순간에 집중하는 건 차치하더라도 그 순간에 내가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확실히 모르겠다. 내가 존재하던 곳은 언젠가 허전함이 채워져 충만하게 웃고 있을 모습의 내 허상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 언젠가를 위해서 주어진 과제는 내 스스로 부여한 과제가 아니었고, 만족의 기준은 내 능력치보다 언제나 한 단계씩 높았기에 텅 빈 부분을 꽉 채우기란 처음부터 아예 불가능이었다. 나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는,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깨달음에 가까워지느라 내 이십대를 모두 소진시키고 있었다.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가 않는 건 정말이지 무력했다. 그리고 무지하게 슬펐다. 답답한 가슴을 비워보려 숨을 크게 들이켜면 내뱉는 호흡에 내 체중이 그대로 실리는 것 같이 숨이 무거웠다. 남들처럼 담배를 피우면 숨이 조금은 가벼워질까 싶어서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려 말보로 한 갑이랑 라이터를 사본 기억도 있다.


담배라는 걸 내 손으로 사 본 건 내 생애 처음이었고 그때 나는 스물여섯이었다. 담배에 불을 붙여 들이마시고 내뱉는 방법도 몰랐고 심지어 라이터로 불도 제대로 켤 줄 몰랐지만 우선, 그냥, 샀다. 집 앞 후미진 벤치를 찾아 끄트머리에 앉아서 엄지 끝으로 라이터의 스위치를 수십 번 긁어 겨우 불을 붙이고 담배 두 개피를 연달아 뻐끔뻐끔 피워보니 입맛만 쓸 뿐 이도 저도 아니었다. 담배도 참, 시시했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내 방으로 돌아와 누우면 허상을 품고 거짓으로 보낸 하루만큼의 피로와 자책이 나를 내리눌렀다. 허전함이 채워지는 순간은 영영 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나를 소진시키지는 않았을 텐데... 도넛의 뻥 뚫린 부분을 채워보려 발버둥 치던 그때의 나와 똑바로 마주하며 화해할 시간이 언젠가는 필요했으리라. 제일 지우고 싶은 순간들이자,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가장 고마운 시간을 보냈던 우리 집 내방에서 여름밤을 오롯이 지내보려니 스물대여섯 무렵의 내가 그 숱한 밤 동안 자꾸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오리온, 카시오페아, 큰곰자리 같은 별자리들. 그 별자리들은 무슨 힘으로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힘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나는 왜 거기 있지 않고 여기 있는 것일까? 나는 왜 네가 아니고 나인 것일까?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나는 늘 랭보의 「취한 배」라는 시를 떠올린다. 

나는 보았다. 하늘에 뿌려진 별들의 군도를,
그리고 환희에 찬 하늘이 나그네들에게 보여주는 그 섬들을,
백만 마리 황금의 새들아, 아 미래의 힘이여,
이 밑 없는 밤 어디에서 잠을 자며 숨어 있는가?

그러나, 정말 나는 너무 슬펐다. 새벽마다 가슴은 찢어지고.
달빛은 잔인하고 햇빛은 가혹하여,
쓰디쓴 사랑이 무감각한 도취로 가슴을 부풀게 하였다.
아 용골이여 부서져라, 아 이 몸이여 바다에 떨어져라.

때로 취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 그게 바로 젊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취하고 또 취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날 같은 것. 꿈꾸다 깨어나면 또 여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곳.

p.164 '백만 마리 황금의 새들아, 어디에서 잠을 자니?' 중


취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젊음. 내게는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대학 졸업 후의 시간들. 그마저도 추억이 될 날이 왔다는 것,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곳에서 걸어 나와 그때의 나를 덤덤히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신기할 노릇이었다. 


'시간이 약'이란 흔한 말이 마치 시간에게 무조건적인 해결을 바라는 비겁한 바람 같아서 그 효험(?)은 믿어볼 생각조차 않고 살았는데 그만한 명약도 해답도 없었다.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영어 가정법 문장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웠고 3차 방정식을 그래프로 옮기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 알게 된 일이다. 내 안에는 많은 빛이 숨어 있다는 것,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란 그 빛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다. 

p.195 '서리 내린 연잎은 그 푸르렀던 빛을 따라 주름져 가더라도' 중


지난 여름, 밤이면 밤마다 나의 지나간 이십대에 안녕을 고하고서 미국으로, 내가 있을 곳으로, 내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니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 지난 봄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인다.


도넛의 뻥 뚫린 부분이 채워질 '언젠가'만을 바라보며 미래에 살고 있던 과거의 나와 안녕했다는 점도 더 확실해졌다. 이제는 도넛과 같은 존재인 나를 인정하고 현재에 살고 있는 내가 있다. 


과거의 내가 참 많이 듣던 그 노래, 들으면 몸이 아파오는 것 같아서 못 듣던 김광석의 노래를 다른 버전으로 덤덤히 들으면서 말이다.


https://youtu.be/5tZSdU79bFw


내 여름밤을 채워주던 <청춘의 문장들> 그리고 강산에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 노래와 함께, 내 지난 여름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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