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옭아매는 것들
무엇인가를 가졌다는 믿음이 족쇄가 되는 경우가 있다. 대학교 3학년 무렵, 졸업을 위해 필요한 학점 수와 지금까지 이수한 학점 수를 비교해보는 일이 잦았다. 그것은 돼지 저금통에 쌓여가는 동전을 새는 것 마냥 재밌었다. 그렇게 쌓은 학점으로 일 년 먼저 졸업하면 친구들보다 앞서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수학점'을 꽉 움켜쥐고 놓을 수 없었다. (이수 학점은 성실히 시간을 보내면 자연스레 차게 된다는 점에서 평점과는 다르다. 그래서 소위 스펙에는 들어가지도 않는다) 3학년이 중반을 지날 무렵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친구의 말에 움켜쥐었던 손을 펼쳤다. 결국, 그로부터 4년 반이 더 흐르고 졸업했다.
작년 말 나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진급이었다. 혹시 누락되진 않을까 걱정했다. 막상 진급이 결정된 후엔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함이 내려앉았다. 금요일 밤이었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뒤늦게 친구 집을 향하는데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늘어날 연봉만큼 나를 옭아맨 족쇄의 무게가 더해짐을 느꼈다. 순간 그 족쇄에 어정쩡하게 매여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우울함이 내려앉았다. 새해엔 더 가슴 뛰는 일을 찾겠다는 결심이 흔들렸다는 사실에서 오는 우울함이었다. 수없이 다짐했지만, 나를 흔든 이는 나 자신이었다.
직장인에게 가장 큰 족쇄는 돈이었다. 연봉. 단 숫자 몇 자리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 20대의 대부분을 학교에 머물며 자신을 다독여 만들어낸 지표였다. 시간을 들여 설명해야 하는 생각은 깊이 감추고, 현실 앞에 꿈은 고이 접었다. 뱉지 못한 이상은 신기루처럼 희미해졌다. 욕을 뱉으며 술자리에 앉지만, 다음날 통장을 채우는 월급에 기대어 해장국을 뜰 뿐이었다. 손바닥을 겨우 덮을 명함 한 장에 매여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았다. 한창 회의가 밀려오는 삼 년 차 직장인에게 연봉은 숫자 이상의 무거운 족쇄였다.
성취했다고 믿는 것은 때론 단단한 갑옷처럼, 때론 날카로운 무기처럼 느껴졌다. 명함 한 장 꺼내어 들이밀면 누구든 나를 알아봐 줄 것 같았다. 늘어난 월급은 생활에 안정을 줄 것 같았고, 꿈꾸던 삶은 한층 가까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명함이 설명해주는 나와 내가 바라는 내 모습 사이의 간극은 커졌다. 월급이 조금 는다고 삶이 달라지지도 않았다. 얼마간의 돈으로 몸담은 업계와 직무에 대한 회의를 끊어내진 못했다. 그대로 머물렀을 때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성취(돈과 명예를 고루 염두에 두었을 때)를 가정해도 회의를 걷어내지 못했다. 자랑스러운 성취는 나를 옭아매는 것일 뿐이었다.
짧은 몇 마디로 나를 설명하던 명함을 버렸다. 다시 한 번 손을 폈을 때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갑옷을 벗고 무기를 내려놓자 새삼 내가 속했던 울타리가 견고했음을 느꼈다. 밖엔 찬바람이 세차다는 우스갯소리가 더는 농담이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고 나를 드러내는 일이 어렵진 않았다. 기회를 부여받기 위해 명함이 있을 때보다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할 뿐이었다. '어느 회사에서 무엇을 합니다'라는 일반적인 문장 속에 나를 욱여넣기 힘듦을 느꼈다.
오랫동안 수학과, 금융, 증권사, 트레이더라는 짧고 명확한 단어 뒤에 숨어있었다. 내가 꿈꾸는 삶을 쫓아 단어를 골랐는데, 어느새 단어가 주는 이미지에 갇혀버렸다. 명료한 이미지를 갖던 단어를 내려놓자 내가 가진 생각의 모호함이 드러났다. 차갑게 식어버린 머리를 다시 돌리는데 적잖은 시간을 쏟았다. 무엇을 해도 직장에서처럼 돈을 벌 수는 없었다. 틀을 벗어나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놓아버린 명함과 숫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답답함이 기억을 덮지 않았다면 비슷한 자리를 다시 찾았을 수도 있다. 다행히 머리는 서서히 구르기 시작했고, 생각을 구체화시키는 즐거움을 다시 찾았다. 또다시 나의 일이 한두 문장으로 압축되는 때가 오면, 나는 또 편안함의 유혹에 스스로 족쇄를 발에 걸지도 모른다. 그땐 이번처럼 손쉽게 박차고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은 성취되는 순간 빛이 바래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서 얻은 경험이었다. 결국, 나를 지탱하는 것은 대학 졸업장을 통해 얻은 명함이 아니라, 새로운 것도 어렵지 않게 배우고, 새로운 환경에서도 평균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나를 옭아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