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셰어 냉장고 프로젝트

큰 꿈, 열정적인 움직임, 그리고 소소한 성공의 기억

by 익군

사회적 기업에 큰 관심은 없었다. 사회적 기업가 과정 따위를 염두에 둔 것은 대화를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빠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엔 회사를 나오리라 마음먹은 시점이었다. 퇴근 후에도 부지런히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서비스를 구상했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자 의욕은 떨어지고, 결심은 무뎌졌다. 자연스레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찾았고, 사회적 기업가 과정에 눈이 갔다. '사회적'이란 수식어가 부담스럽긴 했다. 더불어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따뜻한 커뮤니티를 꿈꿨지만, 어디까지나 무엇인가를 이루고 난 뒤를 위한 그림이었다. 주저하는 나를 떠민 건 정체된 내 모습에 대한 경각심이었다. 새해가 밝기 무섭게 한 기관에서 진행하는 사회적 기업가 과정에 참여했다. (마음속에선 '사회적'을 살며시 걷어낸 채로)

참여하기 전 관심 가는 사회 문제를 생각 해오라는 과제가 있었다. 4평짜리 원룸에 몸을 욱여넣던 시절이라 턱없이 비싼 주거 비용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품에 안았다. 셰어 하우스와 공동 창작 집단의 형태를 덕지덕지 갖다 붙인, 나름의 대안도 구상했다. 그렇게 나만의 답을 품고 2주에 걸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동료를 찾는 데 실패했다. 주거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몇 있었다. 다만, 바라보는 관점이 미묘하게 다르거나 우리 선에서 해결하기엔 힘든 문제라고들 생각했다. 내가 구상한 대안은 나만의 해답이었다. 결국,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운 주제로 동료를 찾아야 했다. (과정의 수료 조건으로 팀 프로젝트 진행이 있었다.)


망설이며 찾은 팀에선 신뢰 회복을 이야기했다. 오로지 '그라민 뱅크'라는 낯익은 단어에 끌려서 간 팀이었다. '무엇' 또는 '왜'보다는 그저 프로젝트 하나를 해내는 것만 염두에 두었다. 회의하는 내내 몸을 의자 깊이 묻고 이야기를 흘리듯 들었다. 그래서 '셰어 냉장고'를 처음 들었을 때 나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한껏 뒤로 기울었던 상체는 오뚝이가 곧추서듯 앞으로 튀었고, 처음 이야기를 꺼낸 여자아이의 입에 시선을 고정했다. '독일엔 이런 것도 있더라고요'라는 말에 덧붙은 부실한 설명만으로도 머릿속엔 그림이 가득 들어찼다. '푸드 셰어링'은 그렇게 독거 청춘에 스며들었다.

구체적인 푸드 셰어링의 방향을 셰어 냉장고로 잡으면서 프로젝트는 추진력을 더했다. 물론 작정하고 전지를 펼쳤을 땐,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생각보다 많았다. 셰어 냉장고를 준비하여 설치하고, 활동을 홍보하는 과정도 매번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엑셀 파일과 서류 더미 속에 허우적거리던 직장인에게 행동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일단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따라, 혼자였다면 하지 못했을 움직임을 하나씩 더했다.


활동은 냉장고 설치가 이루어진 지 2개월 남짓이 흐른 뒤 흐지부지 정리되었다. 처음 팀이 결성된 시점에서 5개월가량이 지난 시점이었다. 의욕 넘치던 시작을 생각하면 중간 과정과 마무리는 실패였다고 쉽게 말해버릴 수도 있었다. 가끔 셰어 냉장고 소식을 묻는 사람을 만나면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붙잡지도 못하고, 놓지도 못할 땐 그랬다.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해 잔상처럼 남은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충분히 곱씹은 뒤에야 그 시간이 많은 풍미를 가짐을 알았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질문에 대답한 뒤의 일이다.

처음 외부에서 관심을 받은 때는 프로젝트에 흥미를 잃고 남겨진 일이 번거롭게 느껴질 무렵이었다. 관심은 매번 미뤄놓은 숙제를 들춰냈다. 우리끼리가 아닌 누군가를 붙들고 이야기를 걸어놓곤 관심 두기 시작하니 입을 닫아버린 꼴이었다. 나 자신이, 우리 팀이 무책임하게 느껴졌지만,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몸을 움직일 용의는 없었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타이틀은 갖고 싶었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았다. 이율배반적이었다.


한창 도망가고 싶을 때 받은 첫 감상은 장난처럼 이라도 세상에 말을 걸기 시작했으면 그 말,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일을 위해 기꺼이 손 내밀어 준 분들이 있었다. 우리의 목소리에 시간 들여 관심을 가져준 분들도 있었다. 프로젝트가 흐지부지되는 와중에 가장 생각이 미친 곳은 그분들이었다. 말 한마디와 진지한 눈빛에 신뢰를 주셨던 분들 앞에서 양치기 소년이 되는 기분이었다.

개인적인 부끄러움보다 더 신경 쓰이는 점은 우리의 실패(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로 푸드 셰어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을 심어주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언론사와 인터뷰하게 되면 그만둠이 결코 외부의 어려움 때문은 아니었노라 강변했다. 푸드 셰어링은 어릴 때 이웃과 음식을 나누던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누구든 방법만 조금 개선하면 얼마든 좋은 문화로 정착시킬 수 있으리라고 힘주어 말했다. 설익은 행동이 실패로 기록되어 다른 누군가의 시도를 위축시키지 않길 바랐다. 세상을 향해 말을 걸기 시작했다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시간이 흘러 아쉬움도 옅어질 때쯤 이 일이 내가 기회비용을 써가며 도전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었음을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무책임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도망치는 듯한 내 모습이 스스로 아쉬운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 또한 경험 일부였다. 마음을 다해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선 잔잔한 바람에도 몸을 맡겨야 했다. 해보지 않고는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다. 즐거움만으로 완성되는 일은 없었다. 버거운 순간은 매번 있었고, 견뎌내는 힘은 일을 대하는 마음에서 나왔다. 견딤은 성숙을 불렀고, 단계를 넘어서면 새로운 재미가 펼쳐졌다. 푸드 셰어링은 나에게 견디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견딤이 부담스러워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경험의 기회는 사라지고, 내가 어떤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기회도 다음으로 밀린다. 모든 일을 깔끔하게 정리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이 훨씬 잦았고, 그 속에서 조금씩 배워갈 수밖에 없었다. 푸드 셰어링은 마음에 여운으로 남았지만, 끝내 다른 일에 비해 우선순위를 점하지 못했다. 마음이 가지 않는 일은 정말 어찌할 수 없었다.


이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얻은 가장 긍정적인 생각은 '꾸준히 밀고 나가면 관심을 가져주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아는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반응은 예상보다 빨랐다. 고작 5개월 남짓 진행한 프로젝트를 종료할 무렵부터 진행 상황을 묻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이가 가끔 생겼다. 이런 관심은 미련을 거쳐 하나의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의미 있는 일을 꾸준히 진행하면 누군가는 관심을 가져 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매번 무관심의 터널에 멈춰 섰다면 얻을 수 없었을 경험이다.


느지막이 눈을 떠 어영부영 하루를 보내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꽤 많은 일을 경험하였음을 깨닫는다. 매번 판타지에서 시작하여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아쉬움과 미련, 반성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아쉬움과 미련이 쓸려가고, 반성이 희미해질 즈음 기억 속을 채우는 것은 작은 승리다. 그렇게 모은 작은 승리는 조금 더 큰 성취를 위한 원동력이 된다. 그렇게 다음 걸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셰어 냉장고 프로젝트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꾸며 시작했다. 작은 나눔에서 시작한 공동체가 육아를 비롯한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게 되는 꿈을 꾸었다. 프로젝트는 힘차게 돛을 올렸고, 거친 바람에도 굴하지 않았지만, 가장 잔잔한 바다에서 스며들듯 가라앉았다. 손짓하는 이들에 대한 미련과 의지 문제였다는 자책이 씻겨 내려가자 출발 전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소소한 기억에 떠밀려 또 한 번, 그리하여 무수한 새로운 출발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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