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2015년을 시작할 무렵 나는 연극 강좌를 수강하고 있었다. 전문 연기자가 되기 위한 수업은 아니었다. 예술의 전당 문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수업이었는데, 홍보 메일의 문구에 혹해 등록했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생각해보면, 그 당시 어떤 문구가 쓰여 있었더라도 등록했을 것이다. 첫 조카의 태어남을 축하하기 위해 모아두었던 50만 원가량을 수업료로 써버리곤 미안한 마음에 누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정신없이 지나가 버린 2015년은 연극과 함께 시작되었다.
연극이 처음은 아니었다. 복학 첫 학기 수강 신청 때 좀처럼 보기 힘든 과목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연극의 이해'. 연기 수업과 함께 학기 말미엔 간단한 연극 발표도 한다고 했다. 여간해선 금요일 수업도 담지 않는 수강 신청서에 선뜻 토요일 수업을 추가했다. 한 학기를 거치며 짧고 조악한 희곡도 두어 편 끄적거리고, 뻣뻣한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연극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공연 당일엔 2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입을 크게 벌려 다른 톤의 목소리를 뽑아냈고, 과장된 몸짓으로 다른 이의 움직임을 흉내 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무대 위에서 내가 했던 대사도, 행동도 모두 나의 말투, 음성, 몸짓이었다. 촌티가 풀풀 나는 복장에 소심해서 여자에게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는 캐릭터도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타인의 삶의 한 부분을 (그것이 비록 가상의 인물일지언정) 흉내 낸다는 믿음은 의미가 있었다. 나에게 연극이 가지는 의미는 '타인의 삶'을 엿보고, 흉내 내보는 것이었다. '나'에서 벗어나기 힘든 삶에서 어렵사리 찾은 일탈이었다.
다시 연극을 찾았을 때의 생각은 과거의 경험에서 오는 향수였다. 대학교 수업 시간에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머리끝에서 시작해 온몸을 훑고 내려가는 짜릿한 전율을 느낀 적이 있었다. 1초도 안 되는 순간이었고, 타인의 시선이 의식되자 서둘러 내려놓던 나 자신을 다잡았지만, 나 자신을 거의 내려놓을 뻔했던 짜릿함을 잊을 수 없었다. 충분히 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타인'이 되기 위해 연극을 찾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나아졌지만, 남들과 다른 눈높이에서 말할 때면 어김없이 온몸이 굳었다. 웃는 얼굴이고 싶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전에 멈춰버린 근육은 차라리 울상에 가까운 표정을 만들었다. 안면 근육이 못다 한 운동을 바삐 떨리는 손이 대신했다. 눈높이가 같아지면 사람이 얼마가 있던 쉬이 농담을 던졌기에 대중을 향할 때의 경직은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타인'의 가면을 쓰고 정해진 대사를 읊고, 미리 약속된 몸짓을 하는 연극이 그래서 더 끌렸다. 무대 위에서 한껏 떨어도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잔뜩 굳어 있어도, 힘겹게 말을 이어나가도, 바보 같은 움직임을 보여 주어도 그저 극 중 화자일 뿐이었다.
이번에 공연한 극은 손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였는데, 나는 여기서 지역 신문사 편집장 역을 맡았었다. 주인공 자리를 기꺼이 다른 친구에게 넘기고 나서 받은 역할이었는데, 비중도, 대사도 적지 않았다. 특히 작품 초반 부에 청중을 향해 읍내를 소개하는 긴 대사와 중반을 넘어선 시점에서 예비 사위를 앉혀 놓고 (화자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흉내 내며 (이중 연기(?)인 셈이다) 마초적인 발언을 꽥하고 질러보는 대사는 내심 만족스러웠다.
직장 생활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부지런히 대사를 외우고 가끔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행동들을 상상하며 즐거움을 찾았다. 아이는 고사하고, 결혼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시점에서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시집을 보내는 역할은 피상적으로 다가왔다. 상상은 빈약했고, 타인의 삶을 즐긴다고 하기엔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다. 그래서인지 무대 한가운데 혼자 서서 청중들을 향해 과한 몸짓으로 동네를 설명하는 장면이나, 책상을 '쾅'치고 벌떡 일어나며 소리 지르는 장면이 더 인상에 남았다.
나의 연기에 타인의 삶은 없었다. 간접 체험도, 작중 화자에 이입해 공감하는 순간도 없었다. 하지만 연극은 여전히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타인의 가면을 쓰지 못했음에도 연극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조명이 떨어지는 무대 위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순간이 즐거웠다. 정해진 대사와 행동을 보여줄 뿐이라며 평소라면 주저했을 말을 뱉고, 과장된 몸짓으로 시선을 모으는 순간이 짜릿했다. 가면을 빙자해 무대 위에서 보란 듯이 떠들고 움직인 건 결국 나였다. 더 깊이 숨겨놓은 감정, 몸짓, 언어를 뱉을수록 관객들은 더 환호했다.
'인생은 연극이다'라는 말이 있다. 크든 작든 사건, 사고가 있고, 인물들이 그 순간들을 꼭 한 번 살아낸다는 점에서 인생은 연극을 닮아있다. 과장되고 압축되어 있지만 삶의 단면을 재현하는 것이 연극이라면 관객들이 삶의 순간순간에 연극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극 중 인물에 삶의 조각을 끼워 맞추고 나면 나 또한 하나의 커다란 연극 속에 사는 것 같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리듬을 타며 읽어야 할 것만 같다), 연극이 다른 몇 가지 면에서도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빛나는 조명 속에 나를 밀어 넣으며 끝없이 관객의 시선을 가져오려던 모습이 그랬다. 극 중 인물을 한껏 드러내고,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은 부모, 친구, 동료에게 나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모습을 닮아 있었다. 태어나서 터뜨린 울음이 그랬고, 끝없이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입에 올리는 순간이 그랬다. 누구도 나와 같을 수 없음을 알지만, 설명을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이유는 듣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격언은 한편으론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에둘러 말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던 대사를 뱉고, 행동을 보여줄수록 박수는 커졌다. 신선한 충격은 나를 다채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10년을 알고, 15년을 알아 이제는 모두 파악했다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들의 틀에서 한 발자국 벗어남으로써 환호를 받고, 흥미를 끌었다. 누군가는 그것이 보기 불편하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용감하다, 부럽다는 말은 그 갑절이 되게 쏟아졌다.
그리고 나를 드러내고 이해시키려는 모든 행동은 연극이 끝나자 쉽사리 잊혀 갔다. 한 시간이 넘게 부지런히 무대 위를 오가며 나를 이해시키려 노력했고, 신선한 충격들로 관객의 시선을 뺏었지만, 극이 끝나며 그 모든 노력이 빛이 바랬다. 관객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장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미한 느낌으로만 남았다. 숨기고 억눌렀던 감정을 드러내고, 행동을 발산하는 과정이 관객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으리라는 희망은 무의미했다. 시간이 지나자 무대 위의(혹은 현실 속의) 어떤 기행도 희미한 가십거리로 남았다. 결국, '나'의 연극은 '나'에게만 의미를 가졌다. 그렇게 연극은 인생을 닮아 있었고, 인생은 끝없이 이어지는 연극이었다.
2010년, 나에게 연극은 타인의 삶을 엿보는 열쇠 구멍이었다. 다른 이의 옷을 입고, 다른 이의 말투를 흉내 내며, 그들의 가슴으로 20분 남짓을 살아보는 일탈이었다. 무대 밖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가 궁금했다. 힘내어 내뱉는 대사가, 행동이 내 것이 아니어야 했다. 2010년 나의 연극은 타인을 향해 있었다.
2015년, 나에게 연극은 가면을 쓰고 신명 나게 노는 놀이었다. 한참을 놀고 벗으려고 보니 이미 가면 따윈 없었다. 관객의 갈채는 스스로 부끄러워 꺼내놓지 못하던 나의 다른 한 조각을 향해있었다. 하지만 나의 새로운 파편은 나의 눈높이가 그들과 같아지는 순간 그들에게서 의미를 잃었다. 평소 같지 않은 나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내주는 관객이 고마웠지만, 그들이 나의 조각조각을 기억하지 못함이 아쉽진 않았다. 2015년의 나의 연극은 나를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