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결심

삼년 차, '정말로' 퇴사를 결심하다

by 익군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들었던 말들은 대체로 비슷했다. '진짜? 나도 그만두고 싶다.', '부럽다.', '용기가 대단하다.' 등등. 실상 많은 직장인이 가슴속에 '퇴사'를 품고 살아간다. 다만, 사회적 체면, 경제적 이유 등으로 그 시기를 결정하지 못하며 하루하루 버텨갈 뿐이다. 누군가는 즐기고, 누군가는 부단히 싸워보지만, 적지 않은 누군가는 버틴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또는 그만둘 결심을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아이러니한 것들이었다. 먼저 (느낀 순서로 따지자면 조금 뒤편의 이야기이겠지만 아무튼) 그들의 반응 중 '용기가 대단하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차마 나가지 못하는 그들이 겁쟁이가 아니듯이, 회사를 그만둔 내가 더 용감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도망쳐' 더 겁쟁이라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누가 더 용감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에겐 회사 안에서의 생활이, 누군가는 회사 밖에서의 생활이 덜 용기가 필요할 뿐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어려운 결정을 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이 또한 위와 같은 이유로 크게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겐 남는 것이 수월한 결정이었지만, 나에겐 그것이 더 어려운 결정이었다. 결국, 그들도 나도 쉬운 결정을 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결심'이라는 단어는 턱없이 과한 무게를 지녔다. (대단할 결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드러내기엔 썩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한편, 불만은 새로운 환경을 꿈꾸는 자양분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퇴사를 결정하게 하는 요소는 아니었다.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 점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숱한 사람들이 다양한 불만을 품고 있지만, 그들 중 대안을 찾아 떠나는 사람은 일부였다. 일부는 내부에서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개선하려 했다. 나머지의 불만은 불평으로 남았다.

나를 밖으로 이끈 것은 불만이 아니라 당시 나의 마음속을 파고든 새로운 일에 대한 갈망이었다. 나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일, 새로운 환경 혹은 회사를 찾은 사람들은 기꺼이 현재를 박차고 다른 일, 다른 환경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불만이 클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가 작아도 자리를 옮길 수 있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환상이 크면 불만 없이도 쉽사리 앉은 자리를 벗어났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불만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희망이었다. (움직이게 하는 역치는 불만과 희망의 상관관계였지만, 역시나 불만은 희망에 비하면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선택할 때 나름의 '결정적인 순간' 혹은 '핵심적인 이유'를 발견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자신을 설득하던 내가 마지막에 찾은 결정적인 한 방은 '불완전 연소'였다. 일과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다른 무엇도 하기 힘들 정도로 녹초가 되었지만,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잔재가 남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오후 회사에 앉아 부지런히 모니터를 보다가 떠올린 단어가 '불완전 연소'였다. 매일 녹초가 되도록 일했지만, 그 일을 하는데 나를 고작 20% 남짓 사용한다고 느꼈다. 아무리 집중을 하고, 열정을 쏟아도, 나를 20% 이상 사용하지 못했다.

번아웃 증후군이 심심찮게 들리는 시절이다. 다 태워버린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나는 불완전 연소 중이었다. 더는 인위적으로 열정을 끌어올리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확신이 들었다. 이 순간이 없었다면 아주 가끔은 내가 순간을 이기지 못하고 피해버렸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도망쳤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사소한 듯한 몇 가지 순간을 거치며 결심은 확신으로 이어졌다. 언젠가부터, 고민을 시작한 순간 이미 답은 마음속에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의 시간은 답을 스스로 납득시키는 순간들이었다. 때론 그 순간들이 부차적으로 느껴졌지만, 돌아보면 그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선택 이후의 시간을 지내는 데 힘이 되었다.

누군가에겐 고민을 거듭해도 쉽지 않고, 누군가에겐 너무 쉬운 결론을 내기 위해 나는 나만의 몇 가지 사소한 지점들을 지났고, 그 과정을 거쳐 2015년 나는 명함 없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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