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돈

누군가에겐 구질구질하고, 누군가에겐 배부른 이야기

by 익군

돈 이야기는 대체로 구질구질하다. 누군가에게 적당한 것은 누군가에겐 풍족함이고, 누군가에겐 부족함이다. 그래서 대체로 구질구질해지는 이야기. 많이 가진 이야기는 뻔지르르해 구질구질하고, 없는 이야기는 궁상맞아 구질구질하다. 하지만 사회에서 뒤엉켜 살면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돈이다. 얼마를 더 가져서 행복할 것도, 얼마를 덜 가져서 불행할 것도 아니지만, 삶의 현장 곳곳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 이 돈이란 것이다. 결국, 돈 이야기를 빼고는 나의 서른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궁상맞고 구질구질할 이야기.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다. 15년. 사업이란 게 5년만 버티면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꽤 오래 버티셨다. 그간의 다사다난한 과정을 생각하면 '버텼다'는 말이 적절하다. 아버지의 사업은 가족의 생활비가 되었고, 누나와 내가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살 수 있게 했다. 누나와 나는 미래를 꿈꿨고, 아버지는 현재를 버티셨다. 아주 부유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지만, 꽤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내가 유행에 민감하지 않고 소비에 인색한 면도 있었지만, 사치품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가질 수 있었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일이라면 대체로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런 생활이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건 내가 막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균열이 시작된 것은 그보다 한참 전이었을 것이다. 내가 깨닫지 못하거나,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외면해 왔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학자금 대출을 최대한 받아보라 하시면서도 생활비는 걱정할 것 없다고 하시던 아버지를 그저 믿고 싶었다. 시간의 흐름에, 나의 외면에, (상황을 직시했다 해도 전적으로 나의 힘으로 균열을 막기는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 몸집을 한껏 키운 균열은 어느 날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큰 사건이 터지거나, 인생이 송두리째 절망 속으로 던져진 것은 아니었다. 기숙사를 벗어나 방을 구해야 할 무렵 집에 손을 벌리기 힘들었다거나, 갑자기 원치 않는 (사회 초년생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대출을 받아야 하는 정도였다. 이름만 빌려준다는 것은 어느새 고스란히 나의 짐이 되어있었다. 수많은 것을 받고, 그 안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다 부지불식간에 흐름이 뒤집혀버린 것을 느꼈다. 숨이 턱턱 막힐 듯한 순간이 이어졌다. 다행인 것은 더는 차오르지 않는다는 것뿐.

구질구질한 이야기였지만, 부끄럼 없이 부지런히 털어냈다.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이야기였다. 손을 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돈'이라는 목적어 때문에 웬만한 가정사보다 불편한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부지런히 털어냈다. 그러고 나면, 내가 아직은 누군가를 붙들고 하소연할 정신은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딱 내가 버텨낼 수 있을 정도의 짐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의 마무리는 늘 나의 헛웃음으로 채워졌다. 떠들 힘이 남아 있는 걸 보니 난 아직 살만하구나 하는 생각에 나오는 웃음이었다.


모으고 준비하는 삶이기보단, 저질러진 것을 수습해 가는 삶이었던 것이 서른의 나를 만들었다. 부지런히 어제를 살았다면, 딱 그만큼 오늘은 살만해지는 것이 삶이었다. 물론 부지런히 기어오르다가 한순간에 뚝 떨어지는 상황들도 있었다. 그럼 다시 거기서부터 부지런히 기어 올라가면 그만이었다. 그간의 상황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쉴 새 없이 나를 몰아갔지만, 최악이라는 결론들이 연이어 나를 덮쳐도 삶이 쉽사리 무너지진 않았다. 잽을 한두 대 맞다 보니 가끔은 훅을 맞아도 '바보같이 또 훅을 맞았네.' 하며 웃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수천만 원'이라는 뉘 집 개 이름도 아닌 숫자를 끌어안고 나는 또 한 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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