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만에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한 달이 조금 못 됐다.
사람들은 어떻게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곳에 가서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신기함을 느낀다.
호기심 가득한 신기함 말고, '대체 이런 걸 어떻게' 같은.
비아냥대는 소리도 듣고, 지능이 떨어지느냐 이야기도 듣고. 급식비는 '더 많은 인턴을 뽑기 위해' 삭감되었음을 안내받았고(대놓고 예산이 없다고 호들갑을 떠는 걸 봐야 했다)
처음 하는 일인데 ~ 다운이요. 하면 이게 어디까지 내려오는지 어찌 알겠는가. 설비가 위험하니 머리 조심하세요, 라고 했던 게 기억나 머리 조심하세요 했다가 인턴님. 지능 떨어져요? 인지에 문제가 있어요? 상식이 없어요? 라는 말을 들었다. 이게 이미 매단 ㅇㅇ가 바닥에 다시 내려오겠냐고. 누가 당신이 말한 것 때문에 삐끗 해서 다치면, 그거 인턴님이 책임질거에요? 아니잖아.
그는 한 시간 즈음 지나 뭔가 켕겼는지 안전에 직결된 문제이니 욕이 나갈 수밖에 없다 했다. 대충 맞춰 주는 잡담을 하다가 내가 작년에 한 예술인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그렇게 선정되어 놓고도 다음 년도에 뭔가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능력이 떨어지고 한심하다 했다. 내가 어지간히 아니꼽고 거슬리나 보네, 라고 생각했다.
나도 내 스스로 알듯이 호감형은 아니다. 웃는 일 잘 없고, 정신 놓으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말을 할까 차라리 말을 아끼다 보니 반 벙어리처럼 지내니까. 사람의 파악은 금방인가 보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혼자 있는 거 좋아하게 생겼다' '게임 오래 했을 거 같다'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글로만 쓰면 별 문제가 없는 거 같나 싶다가도, 내가 저 말을 남에게 뱉을 수 있는가, 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사실상 조롱이 아닐까.
일은 힘든 것이 없다. 정확히는 안전과 설비 관련된 것들이 있다 보니, 6개월 계약 인턴인 나에게는 중요한 일을 맡기지도, 알려주지도 않는다. 부서별 파트가 다르므로 그들의 일을 돕는 것도(모 파트는 내가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음에도) 영역의 침해이고 선례를 만들면 안 된다는 이유로 기웃거리지 못 하게 한다.
결국 내가 하는 일은 일을 하는 타 직원 옆에서 멀뚱거리며 서 있는 것뿐이다. 나이가 지긋한 양반은 많이 배워서 가라고 하는데, 뭘 시키지도 않고, 시켜도 뭘 어디로 옮기세요 이런 것만 있으니 뭐가 늘 리가 없다. 배울 건 내가 직접 찾아야 하는 자기주도형 시스템인가. 모르겠다.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곳에서는 질문을 하라 해도 뭘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가끔 농담으로 인격모독.폭언.독설.욕설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지! 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들은 말에 체기가 느껴져 안정제를 털어넣었다. 나는 그렇게 해서 강해지도 튼튼해지도록 설계되지 않은 모양이다. 30대에 들어선 지도 한참인데, 내가 마음이 너무 유약한 탓인가.
오랜만에 만났던 누나 윤은 내게 그랬다. 다들 각자 힘든 거 하고 살고, 티 내지 않고 산다고. SNS에 너무 힘든 이야기들 배설하듯 쓰지 않았으면 한다고. 나의 괜찮은 점들이 그런 사소한 행동으로 덮이거나 깎여나가는 걸 보는 게 안타깝고 속상하다 했다. 몇 년간 띄엄띄엄, 나를 가끔씩 챙겨 주는 사람이므로 그러마고 했다.
사촌 철은 누구나 알 만한 공기업에 다니다 10년을 채우고 퇴사했다. 햇수로 3년째 쉬는 중이다. 그는 훨씬 경직된 분위기, 위험한 업무에 노출되어 있었고, 원래도 무뚝뚝한 성격에 닳고 닳아 버렸다. 몇 달만에 전화해 안부를 물으니 '똑같지' . 가끔 한 번 보자고, 이러다 할머니 상 때나 보겠다 했더니 '그렇겠지'라고 대꾸했다. 내가 한 번 찾아갈까? 했더니 '굳이?'라고 했다. 무심하고 투박한 인간인 건 알고 있었지만 아쉽고 섭섭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면 부럽기도 했다. 차라리 나도 저렇게 닳고닳은 성격에 무뚝뚝한 성격을 가졌더라면, 하는.
이럭저럭 지낸다. 출퇴근에 2시간 반 정도를 쓰고, 저녁에 들어오면 공모전이나 지원 사업을 뒤적거리며 넣고, 게임을 할까 하면서 목록만 한 시간 쳐다보고 곧 자야 하고 내일이 또 오고 나는 또 나가서 탁한 공기의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넘게 가서 공기만도 먼지만도 못한,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곳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다 약기운이 오르면 잠에 든다.
애써 건강한 척은 하고 있지 않으나, 가끔 즐겁거나 나를 챙긴 이들이 일러준 것은 그들이 잘 보이는 곳에 한 번씩 전시하듯 SNS에 올려 둔다. 강아지와 산책을 나갔다던지. 길을 가다 본 꽃 사진이라던지. 대부분 칙칙하고 불안할지언정, 당신들 덕에 이런 걸 '굳이?'(철은 아마 그렇게 말할 것이다)싶은 것들을 굳이 내 초점 안에 넣고 있다고. 잘 못 지내는 사이에 당신들이 해준 조언들은 생각 나는대로 해내고 있다고.
거울을 봤더니 내가 너무 삭고 퍼석해졌다. 코에서는 자꾸 마른 피딱지가 나온다. 일을 하기 전보다는 건강상태가 악화되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썩 좋아지지도 않았다.
나는 별일없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