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미룰 수 있을 줄 알았다.
올해 상반기엔 공연을 하나 하기로 했었다. 공식적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뻔한 이유로, 그 낮다던 확률을 치고 공연이 결국 취소됐다. 주최측은 어영부영 나중에 얘기하자, 따로 얘기하자, 설 지나고 얘기하자더니 도통 답이 없다.
상반기 일정을 통으로 날렸다. 나는 나라에서 예술인으로 아직 인정을 못 받은 상태다. 무용도 연극도 신청가능갯수가 하나씩 모자라기 때문이다. 지원사업은 예술인 시스템에 등록된 사람을 뽑는다. 당연하다. 그리고 나도 올해 초반까지 하면 거기 합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거기에 수두룩하게 많은 예술인들이 이미 있고 지원사업에 선정되거나 지원금을 받는 이는 한 줌밖에 안 되는 걸 알지만, 그 자격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나로서는 못내 아쉽다.
무대기술 파트에 지원을 했다. 사실 하기 싫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매일 가기 너무 멀다. 생각만 해도 기운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든다. 버스도 30분을 타면 멀미를 할 정도로 체력이 안 좋은데 편도 한 시간 이십분씩을 내가 버틸 수 있을까. 통근만 상상해도 버겁다.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못 했다. 글 생각 자체는 종종 했으나 후퇴하다 못해 퇴화한 언어능력과 매일 지질한 기분과 생각만 주워섬기는 내가 글을 써야만 한다 하는 건 없었다. 쓰고 싶었다. 의욕이 그걸 못 따라왔을 뿐.
위에 말한 무대기술 파트에 면접을 보러 간 날 면접을 보고 병원을 찾았다. 불안이 너무 심해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고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했다. '필요시'라고 적혀 있는 약을 받았다. 시도때도 없이 필요한 기분이 든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더니.
섭섭하지만 서운하다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종종 생긴다. 삼십대의 중반에 온 나는 연애라는 것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날렸다고들 주위에서 그랬다. 친구에게 지인을 하나 소개했다. 둘은 잘 만났고, 나는 지나가는 소리로 나도 소개해줘! 했다. 안 된다고 했다. 결혼을 바라봐야 할 나이에 스스로도 책임지지 못하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사람을 소개해줄 수는 없다고. 밥이나 사줄 테니 먹으라고 했다. 족발을 얻어먹고 하나 포장까지 해서 당시 숙소로 돌아갔다. 사나흘이 지나 고시텔에서 새벽에 족발을 꺼내 쳐먹었다. 족발은 맛있었다.
나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주기적으로 연락하거나 만나는 모임은 하나뿐이고, 거기에선 속된 말로 샌드백을 맡고 있다. 게임을 하다 만난 지인들은 무심하게 나를 후빈다. 연애는 이제 글렀지. 그래도 하고싶은 일 하니까 괜찮잖아? 같은 사안에 대한 의견을 내면 내 말은 무심하게 퉁겨나온다. 체력이 그렇게 약해서 공연은 어떻게 해? 하길래 그건 수명 깎아서 갉아서 하는거죠 했더니 무슨 힘든 일을 하냐고 수명 깎아 일하는 건 자기라고 얘기한 사람이 떠오른다. 당신이 힘든 일 하는 거 알지만 나도 할 땐 힘겹게 한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내 편을 드는 이가 없다. 요새는 게임도 혼자 한다. 와중에 위의 커플이 부르면 하루종일 기다린 개새끼마냥 부부,커플 사이에 껴서 조용히 게임을 한다.
나는 망했다고, 이미 조졌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그 소리를 막으려 담배를 피고 무의미한 쇼츠를 보고 게임을 한다. 한 걸 또 한다. 새로운 자극은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탓이다. 이미 한 부분을 반복하고 들은 노래를 또 듣고 10년 전에 또 20년 전에 본 영화와 만화의 한 장면만 돌려 본다. 안전한 곳에서만 머물고 싶은 정신이지만 위태롭다.
나는 이 불안을 유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올해 상반기 공연만 어떻게 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뭐라도 굴러갈 줄 알았다. 매일 매 달 매 년이 벼락같이 무섭다. 으레 했어야 할 경험들, 나이에 갖추지 못한 자격과 무언가들이 무섭다.
동생이 오래 사귄 애인과 결혼을 하게 되면 나는 심심하고 외로울 것 같다고 던지듯 얘기했다.
썩어버릴 걸 알면서 진공 상태에 넣어버린 음식물쓰레기 반죽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