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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Mar 08. 2020

초라해도 괜찮을 나이

이것저것 없이 사는 이야기

명확한 공식은 아니지만 으레 이 나이엔 이래야 해, 이런 게 있긴 있다. 이를테면 따라가야 할 기찻길 같은 거.

별 문제가 없으면 그 트랙대로 살아야 평범하다, 말하는 그런 거.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24~32평의 집, 1~3명 사이의 형제자매 사이에서 자라 초중고를 별 탈 없이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 학점도 쌓고 대외활동 경력도 쌓아가며 졸업. 졸업하고는 1~2년 안에 취업. 취업한 후에는 돈 모으기. 그래서 이십 대 중후반에는 몇 번의 연애경험 끝에 몇 년을 만나온, 미래를 함께할 계획이 있는 애인이 있고, 모아둔 돈도 어느 정도 되며 자기 앞으로 차도 한 대쯤 있는 그런 상태? 거기에 인간적인 면모를 추가하면 친구가 몇 있다, 정도가 될까. 여하튼, 내가 생각하는 '평균/평범'의 트랙은 이렇다.


그럼 위의 '평균'과 비교하면 나는 지금

166cm, 42kg(요새 다리를 다쳐서 움직이질 않았더니 살이 더(!!) 빠졌다). 평균 키, 몸무게 많이 미달이고.

대학교, 재수를 희망했지만 집안 형편상 실패하고, 딴 길로 줄줄 샌 결과 8년 만에 졸업. 학고는 두 번인가.

자동차, 면허 없음.

연애: 경험 없음. 

모아둔 돈: 15,639원

직장: 없음

친구:거의 없음



 나는 전혀 '평범'하지 못한 인간이었다


세상에, 나는 전혀 '평범'하지 못한 인간이었다. '평균'의 근사치에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내가 전혀 평범하지 못한 인간이라니. 평범하지 않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특별하거나 비범하다는 뜻으로 치환될 리가 없으니, 그냥 평범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해도 별 문제는 없겠다.


그런데 그동안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돈이 없고 여자 친구가 없고, 많은 게 '없어도 괜찮은' 나이라는 게 있었다. 한마디로 초라해도 괜찮을 나이라는 게,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 있었던 모양이다. 


눈치가 좀 없어도 괜찮은 때가, 돈이 좀 없어도 괜찮은 때가, 연애 좀 못 해도 괜찮은 때가, 면허가 없어도 괜찮은 때가. 그렇게 좀 없고 초라해도 괜찮은 나이를 한껏 누리며 시간을 질질 끌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초라해도 괜찮은' 항목에 빗금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연애를 스물다섯 넘게도 못하면, 소위 말하는 '모태솔로'는 어딘가 하자가 있다, 좀 만나기 그렇지.

그 나이 먹고 면허 안 따고 뭐 했어요?

아직 취업 못 하셨어요?

아니, 그런 건 눈치껏 알아서 좀..


이렇게 빗금이 하나하나 그어지고 나니, 이젠 초라해도 괜찮은 시간을 지나친, 뒤처진 인간만 하나 거울에 떡하니 날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 난 이룬 게 없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지. 이십대라는 나이 끝줄에 겨우 매달려 달랑거리는 나는 도무지 가진 게 없었다. 연애를 해봤어, 눈치가 빠삭해, 차가 있기를 해, 취업을 했기를 해, 모아둔 돈이 있기를 해? 하는데, 이제는 내 스스로 살살 질문을 던져봐도 아팠다. 


한번 때를 놓친 건 더 쫒아가기 어려운 것 같다. 연애는 이미 반쯤 포기했다. 연애도 인간관계인데, 나 같아도 경험 없는 사람을 하나하나 가르쳐가며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썸' 에서 눈치가 없어서 망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취업? 취업은 멀기만 하다. 이건 진짜 막막하다. 뭘 모르는지도 몰라서, 질문도 못 하겠는 그런 느낌. 그래도 면허는 어찌 딸 수는 있겠다. 하지만 중고차라도 굴릴 수 있을지. 아니, 기름값이나 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나를 잘 아는 친구인 한은 '너 지금은 기름값이랑  보험비도 못내 임마' 라고 일갈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지 못하니 그나마 중간은 가던 사회성도 녹슬어가고 말이다. 


그런데 신기한 게 나만 그런 건가, 나만 이렇게 뒤처지나 했더니 그건 또 아니었다.(그게 위안이 크게 되지는 않았으나) 권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꽤 큰 중견기업에 입사했다. '절대 야근과 외근은 없을 거라던' 직장에서 야근과 외근에 찌들 대로 찌들다, 1년 만에 모은 돈 2000만 원과, 그와 맞바꾼 휑한 이마만 가지고 퇴사한 권은 노무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이 3년째. 나는 권이야말로 평균의 정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난한 외모와 키, 무난한 성격. 무난한 대학생활과 꽤 탁월한 학점. 가속을 붙여주는 정도까진 아니어도 막히지는 않은 길을 걷는 것 같았던 그에게 지금 남은 건 3년의 수험생활, 그리고 넓어진 이마뿐이었다. 그도 '초라해도 괜찮을 나이'를 지나선 것이다.


 '평범' 하려면 정말 노력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예전에는 정점에 선 이들만 물 위에 뜬 채 발길질을 하는 백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오리라도 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 하는가 보다. '초라해도 괜찮은' 시기는 어느새 흐려져 뒤에 있고, 그때부터는 더욱 날카로워진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그중 가장 무거우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은 거울에 있는 내가 비추게 된다, 경험상.


이제는 내가 날 갉기 시작한다. 별 노력 없이 잘 사는 집에 태어나 온갖 편법으로 지내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 동창에게 시기 질투가 나고, 그런 내가 못 견디게 불쌍해진다. 


그러면서 더욱 위축된다. 툭툭 털기 일어나기 어려워진다. 트랙에서 벗어나고 뒤처졌다는 조바심, 불안함, 초조함이 날 따라온다. 뭔가를 열심히 하지만 이걸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 든다. 급기야는 노력은 해도 안 된다며 손을 놓아버리고 시도하지 않는 가짓수가 늘어간다. 


난 '그래도 잘 될 거야' '노력하면 돼'라는 얘기는 못하겠다. 별 노력 없이도 여러 가지 체크리스트를 손쉽게 해결하는 조건과 재능이 뒷받침되는 인간들을 보며 박탈감에 빠지는 것도 사실 당연하고, 노력만으로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건 너무나 많아서. 계단 한 단 오를 힘밖에 없는데 천 길 절벽을 오르면 원하는 걸 가질 수 있어라고 응원의 탈을 쓴 채찍질과 악바리를 듣는 것도, 너무 잘 알아서. 


나는 써둔 나의 조건과 트랙 중 그 어떤 것도 도달하거나 달성하지 못했다. 글을 쓰면서도 참 조심스럽긴 하다. 노오력해서 될 일이라며 이미 내가 이룬 후에 이런 글을 쓰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했는데 너는 왜 안돼? 이상하네'라는 꼴일 테고 지금처럼 '야, 우린 좀 망한 것 같아'라고 말하면 너무 절망적인 얘기를 징징대며 하는 것 같아서. 권은 내가 너무 부정적이라며 종종 핀잔을 주기도 한다.


헌데 어쩌겠는가. 그리 느껴지는 것을.  초라해도 괜찮을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아니, 그냥 계속 좀 초라해도 괜찮았으면. 그냥 꾹꾹 눌러 씹어삼키면서 지내기엔 너무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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