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8월 즈음 쓴 글에 약간의 수정과 첨언을 곁들인 글입니다.
우울증 약을 먹은 지 한 달 반이 조금 넘었다. 잘 돌아다닌다. 오랜만에 머리도 잘랐다. 수북한 머리를 자르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얼마나 텁수룩하고 답답했는지. 요샌 좀, 살만하다. 그래서 그런가. 요샌 쓸 말이 별로 없었다. 글을 쓰던 때, 나는 우울을 토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기분이 나쁠 일이 없어진 거다. 뭔가 미상했다. 미묘하고 이상했다는 말을 좀 줄여 써봤다. 분명 나인데, 내가 이런 기분을 느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말도 줄어들고 쓰고 싶은 말도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쓰는 글이 없었다. 웬일로 느껴보는 안온함을 누리고 싶었다.
박이 부쳐준 돈으로 내 돈으론 엄두도 못 낼 비용이 드는 심리상담을 두 번 갔다. 상담 선생님께선 편한 자세를 취해 보라고 하셨다. 눈치를 보고 한참을 낑낑댔다. 거만한 척 다리도 펴 보고, 이렇게 하면 편해 보일거야, 하는 생각으로 용을 쓰고 주리를 틀다가 결국 무릎을 안고 웅크려 앉았다. 편하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다. 무슨 생각이 나냐고 묻기에 전에 몸이 작아서 무시당했던 이야기나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화풀이 대상으로 맞았던 게 생각난다고 답했다. 상담샘은 내 스스로 편해하는것 자체를 용인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편함을 느끼는 순간 익숙한 우울과 불쾌감을 떠올려내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 회기에 올 때까지의 숙제는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을 최대한 유지하기가 되었다.
여하튼. 삶에 활력이라는 게 부스러기만큼이라도 생기고 나니 뭘 쓸 일이 줄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황폐하고 슬프다. 부스러기가 태풍을 막아 주지는 않으니까. 약과 상담 덕에 마치 문제가 없어진 것도 같다가 내 안팎의 문제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음을 되새긴다. 깨닫는다. 나는 영원히 나일 거다. 아마 슬픔을 자아내게 만들어진 예민한 인간. 아침부터 막걸리를 마시고 소리를 지르는 부친도 영원히 나의 부친일 것이다. 그가 술을 끊는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괜히 불안이 다른 방향으로 비어져나왔다. 눈이 좀 침침해진 것 같아서 우울증 약이 문제인가 고민했다. 약 이름을 검색해본 후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긴 해도 있다는 걸 알고는 안과를 찾았다. 나는 놀랍도록 멀쩡했다. 간 김에 녹내장 검사도 했다. 2만원이 들었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쓰는 돈도 아깝다. 나의 불안은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있을까. 매긴다면 어떻게 매길까. 가치가 있는 건 아닐테니, 그 불안으로 깎여나가는 나의 행복을 돈으로 치환하면 되는 걸까.
여하튼 안과 의사는 내가 왜 녹내장을 걱정하는지 의아해했다.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대꾸했다. 원인은 우울증 약이었다. 다시 정신과에 가서 약을 뺐다. 의사는 최소 용량에 부작용을 호소하는 나를 의아해했지만, 그만큼 예민한 인간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병원을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애니웨이.
내가 괜찮아질 수록 나의 글은 비례해서 나빠지는 걸까 하고 고민했다.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전에 올린 글을 주욱 훑어보니 썩 잘 쓴 글은 또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안 괜찮으면 글이 그나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괜찮으면 또 글을 쓸 일도 없는 것 같고 뭐. 그저 쓰는 수밖에 없다.
다시 돌아와서. 이제 내 눈은 괜찮다. 기분도, 의외로 괜찮다. 대신 불안하다. 10년을 우울에 찌들어 살았는데 이렇게 두 달도 안 되어 좋아질 인생이었나. 아니면 약에 의존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약 때문인지 식욕부진과 구역이 심한 데 이건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글을 발행하는 지금, 상담은 7회기에 접어든다. 술을 많이 줄였다. 약은 아주 조금 늘렸다. 한동안 잘 못 잤다가 다시 조금씩 잠을 잔다. 밥은 그냥 먹는다. 잘 먹지는 못하고, 그냥 먹는다. 자주 속이 메스껍지만 전보단 아주 조금 낫다.
여전히 고장이 많지만 크고작은 고장들을 하나씩 고쳐 나가고 있다. 젊은 ADHD의 슬픔이란 책을 낸 정지음 작가의 최근 발행 글에서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신은 몰두할 거리가 필요했다고. 나도 그러려고 한다. 요새 하고 있는 일은 출근과 실제 근무 시작간의 시간 차가 꽤 난다. 그래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시간이 난다. 그래서 적었다. 오늘도 모래 한 알만큼이라도 좀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행복은 몰라도 아는 불행이라도 피하고 싶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