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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Jun 06. 2023

어떻게 쓸 것인가

알수 없다, 다만

  전의 내 글을 죽 훑어보니 부끄러웠다. 우울과 화, 집착이 끈적이며 묻어나는 글이 많았다. 심지어 그 글의 자기복제, 또 비슷한 자기복제들.


다만 아주 부끄럽지는 않다. 그 때는 그렇게밖에 쓰지 못했을 것이고, 엉망으로 보이는 그것들은 수 백번 참고 써낸 수십 개의 문장이었을 테니까.


지난주 끝물, 병원에 다녀왔다. 복장이 터져 잠을 잘 못자고 술과 담배가 는다고 했다. 너무 두서없이 말을 쏟아낼것만 같아 그 전날 최대한 간결한 문장으로 나의 상태, 약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술담배는 얼마나 하는지 등을 적었다. 그래도 많았다. 의사는 차분히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25분에 걸쳐 내가 하고 싶은 얘기와 의사의 조언이 얼추 마무리되었다.


의사의 말 중 어떤 말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와닿지 않았고, 또 다른 말은 그럭저럭 흡수할 수 있었다. 상황이 안 좋았던 거라고도 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무용단에 계속 있었는데 이도저도 아닌 희망고문만 당했더라면 그것대로 힘들었을 거라고 의사는 말했다. 나는 나의 사정을 아는 이들이 그 누구도 나를 위해 나서 말을 해주지 않았음에 속상함을 토로했고, 의사는 그들도 그러기 어려웠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연산씨에게 2차 가해죠. 두 번 상처 받는 일. 그들은 내 연락을 이제 잘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조금 낫다. 괜찮진 않지만, 그래도 낫다.


의사는 쉬라고 했다. 난 내 나이와 경력이 없음을 어필하며 나의 불안함을 드러냈다. 그래도 쉬라고 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로 뭔가를 이루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하라고 했다. 춤이 추고 싶으면 그냥 추라고 했다. 그걸로 뭘 하려 하지 말고, 그냥. 그러겠다고 대꾸했다. 또, 그 누구도 연산씨를 일으켜주진 않을 거라고 했다. 잔인한 말로 들리진 않았다. 그 뻔한 이야기가 순간이지만  와닿은 건 처음인 것 같다. 그러게. 그렇지만 계속 지난 일이 생각나고 화가 끓으니 약을 늘려달라 부탁했다. 의사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며칠이 지나보니 참 현명한 분이시다.  


                                                          간만에 잠을 잘 잤다.


며칠 후 늦은 밤, 그간 나를 신경써준 지인께 감사를 담은 말을 메시지로 전했다. 상냥하고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게. 춤이 아니어도, 망한 음악이 아니어도, 내가 어디로 갈 지 몰라도 주위에 괜찮은 분들은 아직 있었다. 그리고 좀 돌아가면 뭐..다 잘 될거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현재가 편안하지 않은데 과거를 쳐다보나 미래를 바라보나 지옥같을 건 똑같지 않나. 그러면 뭐 좀 쉬어가도록 하지 뭐. 의사가 그러라는데. 솔직히, 나도 좀 그러고 싶은데. 내내 쉬었다라고 말하기엔 머릿속이 항상 벌레떼가 헤집고 다닌것처럼 엉망이었다.  


다 지났으니 하는 얘긴데, 사실 나는 춤을 왜 추고 싶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멋진 광고를 찍어보고 싶고, 무대에서의 벅참을 다시 느껴보고 싶고, 선망하는 사람들과 협업을 해보고 싶다 등의 속물스러운 말밖에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물이라 더 진심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꺼내어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춤을 계속 췄을 때의 이면을 모를 만큼 바보도 아니었고, 그토록 빛나고 반짝이는 사람들 사이에 이제 설 수 없음을 깨달은 지금, 아쉽지만 그게 그렇게까지나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담배는 끊기로 했다. 해봐야 한 두세 갑 폈으니 그럭저럭 참을만하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자주 가던 바의 칵테일도 줄이기로 했다. 사장과의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점점 그가 바로바로 짚기엔 애매하지만 그냥 넘기기엔 무례한 말이나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내다버리며 '어 이거 연산씨 두 봉지!' 라던지, 친구와 얘기하는 걸 보고 있으면 '떽, 어른들 얘기하시는데!' 등.


 술도 담배를 줄였다면, 그 원인도 줄여야 맞다. 생각. 생각만 줄이면 된다.


내 앞날이 어떻게 흘러갈지 그런 건 생각 안 하려고 한다. 오늘은 그냥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고 아침 약과 영양제를 챙겨먹었다. 개 간식을 챙겨주고 별 생각없이 보고 본 영상을 틀어놓고 멍을 때렸다.


어떻게 살 것인가, 모른다. 어떻게 쓸 것인가, 잘 모른다. 어떻게 출 것인가, 역시 모른다.


모르는 대로 두고 좀 지내려 한다. 이제는 드라마와 영화가 눈에 들어올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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