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기 위해 난 너를 버렸다.
기억을 잃기 전에 짠하게 기억나는 건
"엄마, 나 가야 해 승현이한테 가야 돼.
나 약속했어. 엄마아.. 제발 보내줘 제발."
육체적으로도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던
나는 하루하루 시름시름 앓고 있었을 그 무렵,
엄마가 말했다.
"너 그러다 죽어. 안 돼"
"엄마, 나 제발 이렇게 빌게..
제발 나 가게 해줘. 나 승현이한테 약속했어. 지켜야 돼.. 엄마아 제발.."
"나 죽더라도 걔 옆에 가서 죽을래.
가야 해 엄마 제발.. 제발..."
나는 기어코 오열했다.
이건 눈물 없인 못 듣는 내 얘기.
오열하고 오열하다 그 끝이 어딜까,
너에게 가야 하는데 했을 때쯤.
나는 결국 힘없이 쓰러졌다.
그냥 그때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쓰러졌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눈이 안 떠졌다.
원목 가구에 머리를 세게 박았다.
며칠 동안 꿈속인가, 현실은 아닌 거 같은데 했다.
한 달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대로 자지 않아서,
그냥 한 이틀정도 푹 자는 건 줄 알았다.
엄마가 너무 놀라 내 뺨을 세게 후려쳤다.
그것도 아주 거세게,
"일어나 이년아. 일어나!"
엄마는 숨을 쉰 채로 겨우 울고 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엄마는 날 향해
뺨을 세게 후려치며 그렇게 울고 있었다.
엄마의 앓던 감정이 내색조차 안 함이
내가 쓰러지고 한 일주일간 듣기로는
못 깨어나면서 결국 다 터졌다.
겉으로는 담담한 우리 엄마,
이성적으로 구는 우리 엄마.
숨만 쉬었지 놀라 자빠질듯한 얼굴을 하곤
속으론 내내 울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말했다.
"왜 이렇게 깨워? 나 자는데. 아 진짜."
난 딱 한 마디 했지만 엄만 딱 일주일간
딸이 숨을 안 쉬는 건가 무서워 나를
그렇게 세게 후려친 것이다.
그때부터 내가 이상했다.
기억이 없다. 내 엄마는 엄마고
내 아빠도 아빤데,
동생도 있고..? 겉으로는 멀쩡한데,
가족들은 잘 기억하는 것 같은데..
내가 기억상실이라고? 내가?
아냐 말도 안 돼. 이건 현실이 아냐. 꿈이야.
핸드폰을 봤다. 며칠이나 지나서,
모르는 사람이 나를 걱정했다고 모르는 사람이
전화 좀 받아달라고 내게 사정 사정했다.
나랑 헤어져도 되니까 괜찮으니까 자긴 다,
제발 어디가 아픈 건지 내 근황만 좀 알려달라고.
더는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꽤 심각해 보였다.
한 OO 이 이름이 세 글자로 겨우 저장되어 있었다.
우린 대체 무슨 사이지? 혼란스러웠다.
얼굴도 기억도 없는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기억이 안 난단
핑계로 괴로워 차단을 했다.
기억이 없었기에, 내가 보내는 문장은
진짜 내가 아니었다.
그래서 숨 쉬기 위해 차단을 했고
보면 볼수록 기억이 나기는커녕
속이 뒤틀리는 양 너무 아팠다.
전생부터 이어진.. 소중한걸
다 잃어버린 그런 기분,
기분이 더러웠다.
그리고 텅 빈 게 너무 아팠다.
일주일 만에 깨어난 나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채 모른 채로 간절히 기도했다.
아무래도 저 사람이 제 소울 메이트인 것 같아요.
전생부터 이어진, 제가 죽을 고비를 겪었고.
또 기억이 안 나요. 그러니까.. 그러니까요.
하나님이 신이시고 신이 진짜 있는 거면요,
저 아이.. 저 보다 더 조건 좋은 여자 만나
부디 행복하게 해 주세요.. 제발요..
제 모든 걸 걸게요.
제 목숨을, 아니 제 영혼을 다 걸게요..
제발요.. 저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조건 좋은 사람 만나 영원히 행복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제발요..
그땐 그게 너를 행복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저 사실 기억이 안 나요. 저.. 살고 싶어요..
근데요.. 그 애 이름 세 글자에도 전혀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근데요.. 저 자꾸 심장이 먼저 뛰어요.
심장부터 자꾸 반응해요..
그러니까.. 저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까
제발.. 저 아이를 지켜주세요.
굽이굽이 가는 길 꽃길이기를,
항상 그 애에게 가는 길은 모두 평길이고
돌 하나도 남지 않게 치워주세요.
저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기억을 못 찾아도 되고 설사 이러다 죽는다고
해도 전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제발요.. 저 말고 그 애를 영원히 지켜주세요.
평생이요... 제가 이렇게 무릎 꿇고 싹싹 빌게요..
저보다 더 일찍이 평안한 가정 꾸리길. 행복하길
그리고 저는 싹 다 잊게 해 주세요 영원히,
저만 그냥 아프게 해 주세요.
제가 대신 다 아플게요. 제발요..
그리고 여자분이 저보다 더 예쁘면 곤란합니다.
예쁘고 똑똑하되, 저 보단 더 예쁘진 않게
해 주세요. 꼭이요!! 이건 꼭 들어주세요.
하나님.. 저 기억이요.. 10년이 걸리더라도
제발 제 기억.. 꼭 찾아주세요 제발요.
저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인 거 같단 말이에요.
하나님 혹시 나요.. 우리가 운명이라면
늦더라도 꼭 다시 만나게 해 주세요 꼭이요.
일주일 만에 눈을 떠 내가 한 일은
너에 대한 기도였다.
기억이 안 나는 널 위해 신께 목숨을
다 바쳐 난 기도했다.
그 덕에 네가 아픈 곳 없이 아마 잘 살지도
모른다고 믿던 시절도 있었다.
넌 나를 비가 오나, 우박이 떨어지나,
더우나 추우나 내내 그렇게 나를 기다렸다.
사계절이 그렇게 흐르도록 말이다.
기억이 안 난단 핑계로, 난 널 볼 수록
속이 뒤틀려 울렁거려 차단을 했고
눈에서 멀어짐 더 낫겠지 했는데
차마 나아지질 않았다.
너는 날이 추워도 날 기다렸던 거 같은데,
나는 기억 안 나는 사람 백날 잡고 살면 뭐 하냐는
엄마의 권유에 새 출발을 목적으로 번호를 바꿨다.
너는 하루아침에 나를 잃었다.
하루아침에 잘 웃고 얘기하던 그 사람이
갑작스러운 연락두절, 차단, 없는 번호 입니다에
넌 얼마나 처량히 그곳에 갇혀 내내 울었을까.
하지만 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았고 속이 뒤틀린 양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 시절의 나는 몸도 마음도 다 피폐해져 있었다.
시한부는 아니었지만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더 쓰러졌고 매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 덕택에 난 일주일 동안 의식이 없다가
기적처럼 살아났고.
살기 위해 난 너를 버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나자마자 우린 전생에서 만난 것 같아!
어디서 본 거 같아. 그러니까 말이야. 헤헤 거리며
웃던 나는, 아니 우리는 꼭 전기 감전 사고 같았다.
너무 뜨거웠고 너무 찬란했으며,
한 때는 너무 빛나는 밤하늘의 별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손대면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살기 위해 난 너를 버렸다.
널 버리지 않으면 현생에선 진짜 이러다
내가 죽을 것만 같았기에.
밤하늘의 별은 별일 때 겨우 의미가 있다.
그저 멀리서만 안부를..
p.s 병원에선 그 시절 이렇게 말했다.
기억 상실은 꼭 교통사고와 같습니다.
누구든 발생할 수 있고 기억이 돌아올지는
유감이지만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나는 엉엉 울며 말했다.
그러면 선생님 저 어떻게 해요.
저한테 진짜 중요한 사람인 거 같은데 에.. 헤.. 에..
저 그럼 기억이.. 반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영원히 안 돌아올지 모른다는 말씀이세요?
유감이지만 그렇습니다.
확답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울었는데 나는 올해 2025년 5월 말,
서서히 아주 서서히, 잃어가던 기억을
12년 만에 기적처럼 되찾았다.
이건 놀랍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고
기억을 다 잃고 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채 모른 채로 신께 기도리고 겨우 살게 된
바로 나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