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꼬꼬마 시절부터 미술을 꽤 잘하고 좋아했던,

그런 내가 어느새 미술을 포기한 이유.

by 이승현

유치원 시절 전국 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지금 떠올려도

눈빛이 초롱초롱한 미술이었다.



특히, 색상을 내 마음대로 요리조리 색칠해

색채를 내는 것이 진정한 예술 같고 멋있어서.

어릴 적부터 가만히 동경했던 미술,



그러나. 잘해서 불행하고,

더 잘해야 해서. 숨이 막혔다.



만 5~6세 밖에 안 된 애가 뭘 안다고 피카소니

뭐니 잘하느니 칭찬감옥이 숨이 턱턱 막혔다,



엄마는 내 은상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도 않았다.



왜냐면, 같은 전국 대회에서

엄마 친구 딸은 금상이니까.



엄마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다 보니.

난 진이 다 빠졌다,



다음 대회엔 나도 금상 받아야지, 싶었지만.

근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어린 마음에 싶어졌다.



갈등이 됐다. 이번 대회는 그냥 나가지 않을까?

내가 진짜 미술을, 예술을 할 자격이 있나.

숨이 막히고 숨이 찼다.



그냥 좀 미술을, 예술을 내 뜻대로

펼치고 즐기겠다는데.



어른들은 그런 나를 선뜻

그대로 두지 않았고.



나는 다음 대회에서, 결국 금상을 받았다.

이젠 좋아해서, 사랑해서.



내가 미술을 즐기고 있는 건지

의문이 다 들정도다.



내겐 저 무의미한 트로피가 과연

필요한 건지 모르겠던 그 찰나였다.



'나.. 미술.. 계속 사랑하며..

쭉 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 즐겁게 즐기며.

대학 진학을 앞서 꿈꾸던 나였다. 바보 같이.



난 그때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봐도 난 안 되겠다.



스스로 미술 하려는 그릇이 못 된다.라고 칭하며,

내가 뭐,.. 칭찬받으려고 사는 것도 아니고.



음악에 이어, 미술도. 진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데..



왜 평가해. 어른들은?! 그냥 나는 난데..

색채 혼합을 잘한다며. 천재니, 피카소니.


왜 그런 말을 나한테 하는 건데.

나는 그냥 나야. 나라고.



나는 모든 게 다 지겨워졌다.

내 나이 6~7세쯤,,



속으로 미술을 더는 사랑할 수 없겠구나.

하며 내려놓았다.



그때,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대회를 나가자.



은상, 금상을 다 받고도 아유 딸. 잘했네~

소리 한 번 못 들었다.



슬펐다. 속상했다. 정말 짜증이 났다.

근데 단 한 번도 표현하지 못했다.



무척 안타깝게도, 엄만 전혀 기억 못 하고.

나만 기억하는 그런 기억이겠지만.



금상도, 은상도 트로피 여부,

상의 높낮이. 를 다 떠나 그냥 격려와 딸 잘했네! 아유. 고생했어, 이 한마디면 됐다. 난, 늘.



그 한마디를 난 듣지 못했고.

그대로 내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났다.



자존심 센 내가 근데 엄마 나 그것도

엄청 잘한 건데. 냉정하게 말하자 엄만

딱 한 마디 했다.



잘했는데.. 엄마 친구 딸은 그 대회에서

이번에 최우수상 받았대. 금상도 좋지만,

우리 딸이 최우수상이면 얼마나 좋아~



엄마. 저번엔 은상보다는 금상이라며.

나 금상 받았잖아. 화가 났다.

이건 정말 아니지 싶었다.



어른이 된 지금 여전히 뜨겁게,

기억되는 걸 보면 많이 아픈 기억이었나 보다.



"근데 금상보단 최우상이 훨씬 낫지~"



자존심, 스크레치에 이어 이제 눈물이 핑 돌았다.

대체 나를 얼마나 더 잘해야 나로 인정할 건데.

엄만, 속으로 난 이를 벅벅 갈았다.



그 잘난 미술. 나 더는 안 해, 날 이렇게 만든 건

다 엄마야! 나 미술 사랑했어. 정말이야.



지독하게 사랑하고, 아주 미치게 좋아했다고.

내 마음에서 기어코 미술 떠나게 한 건

그건 다 엄마야.



그러니까 나 그 잘난 최우수상 받아올게,

엄마가 원하는 대로. 근데 착각 하진 마.

내가 착한 딸이라 그런 건 전혀 아니니까,



떠날 때 떠나더라도 내가 잘 떠나보내.

그게 내가 사랑했던, 옛사람 같은 미술에 대한 예의야 엄마. 엄마가 말한 그 잘난 트로피,

최우수상 받고. 재능 있고, 칭찬받고.



제일 잘 한단 소리 들어도 그땐

나 진짜 미술 더는 안 해.



나 이제 다 시시해.

누가 칭찬받고 싶다고 했어?

선생님이나 엄마나 지긋지긋해. 다 똑같다고!



혼잣말을 속으로 끝내 삼키며.

난 울음 속에 칼을 갈았다.



결국 난 최우수상을 그 전국 대회에서 받아왔다.

기뻐 날뛰듯이, 뛰어갔다. 바로 엄마에게,



근데 엄마 반응이 진짜 가관이었다.

그때 상당히 슬펐던 것 같다.



잘했어. 잘했는데,.. 엄마 친구 딸은

같은 대회에서 이번에 대상 받았다는데?



딸 다음 대회에선 대상 받아옴 안 돼?



나는 화가 나 드디어 감정을 빡 표출했다.

이건 엄마가 선을 넘은 거다.

난 참을 만큼 참았다. 후,



아니. 엄마! 나 충분히 잘했어.

금상이든, 은상이든. 그게 뭐가 중요해?



아니 그리고 최우수상이면

아주 잘 했구만.



뭘 더 해 여기서 내가? 대상?

나참.. 어이가 없어서.



무슨 미술. 엄만 상 받으려고 해?

평가받으려고 해?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나는 대상 못 받아.

아니, 절대 안 받아.



다신 대회 안 나갈 거거든. 나는,

그리고 초등학생도 안 된 내가 이 정도면.



얼씨구 잘했다 춤춰도

모자라지 무슨.



대상은 대상이야, 선생님은 천재니 피카소니.

칭찬에 계속 호들갑이고. 아 다 짜증 나.



엄마 내가 무슨 미술 하는, 앉아서 그림

찍어내는 자판기야? 나 좋아서 했던 거야.

그동안. 내가 다 좋아서. 사랑해서, 그 미술.



나 다신 미술 안 할 거고. 안 할 거니까..

나는 뒤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결국 난 분노해 울었다.

아주 슬펐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생도 안 된 내가 꼴에 자존심은 강해서

내 눈물의 의미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놀림당하긴 싫었던 것 같다.



그 길로 나한테 미술의 미,

자도 꺼내지 말라고 아주 당당히 말했던 것 같다.



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서 나는 계속 커져가는 분노를 삭이며 한참을 내내 울었던 것 같은데.



한참을 울고 내 나이 6살~7살쯤.

나는 신을 원망했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내게 즐기고, 재밌고 모든 행복한 순간이,

왜 늘 이모냥이냐고.



평가에 쩔고 훈수에 쩔고.

아이의 즐기는 단계 따윈 하나 없이,



천재니까 재능 있으니까.

계속 시키라는 거야 뭐야?!



다신 하고 싶어 져도 절대 안 한다고.

그 길로 나한테 미술의 미, 자도 꺼내지 말라고 아주 당당히 말했던 그 후.



나는 그 시절, 집안에서 그저 요동치는

감정하나 주체 못 하는 싸가지 없는 계집애, 가 되었지만. 끝끝내, 울고 말았다. 엄마 앞에서도.



눈물 보일 정도로 사랑하고, 좋아했었다.

나는, 미술을. 상당히,



만약, 내가 더 커서 너를 만나면.

미술, 네가 그냥 날 못 본 체 지나가줘.



나는 네가 너무 좋거든.

그냥 내 재능, 천재성 같은 것. 난 몰라.

난 더는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



상 같은 것도 다 지겨워.

상을 받아야만 나를 인정해?

아니 말도 안 되잖아. 그냥 나는 나야~



이 상처가 덧나지 않고. 우리가 또 본다면,

난 아주 단단해져 있을 거야.

미술 절대 하지 않을 거야.



속으로 내내 표출 못 해 앓던 그 감정들을,

방에 쳐 박혀 울며 6~7살짜리가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대략 10년쯤 지났을까?

여전히 미술이 좋았다, 좋은데. 이 기억에 걸려

그대로 넘어갈 수가 없었고.



수행평가랍 싶고 자기 마음대로 평가하는데,

그 기준이 아주 모호해 사람 기분 다운 시키는.

미술 선생님도 정말 싫었다. 되려 잘 됐다. 싶었다,



애증의 존재. 미술, 내가 안 해줄게.

내가 나중에, 나중에. 미술, 음악 등등..



다 누릴 수 있는 문화 관련된 일을 하면.

그때 맘 편히 나로서 누릴게, 즐길게.

그때, 온전히 내 미술- 예술을,,



그렇게 울며, 굳게 마음먹던 고등학생 시절.



아빠가 넌 예대, 미대를 왜 가려고 하냐고.

내게 미술을 사랑하냐 묻기에, 그때는 내가.



이런저런 일로 너무 상처받아 미술이

애증의 존재 그 어디쯤이었으리라.



"좋긴 한데.. 사랑은 잘 모르겠어 지금은 그래.

사랑했는데. 엄 처 엉~



난 좀 음악, 발레, 미술, 언어 등등..

모든 걸 아울러 문화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아빠."



"그 일이 뭔데."



"아직은 나도.. 모르겠어. 근데 곧 찾을 거야~"



또 신을 원망했던 것 같다.

공부 하나를 엄청 잘하든가.



천재성, 재능 이딴 거 주실 거면,

하나만 주시던가..



남들은 배부른 소리랍시고

재수 없어하겠지만.



남의 진로를 가지고 이거 저거 다 섞어 만들면.

어쩌냐고요.... 하나만 파고 하나만 잘하게 하시지.

짜증 나, 그때도 역시 하라는 공부는 안 하면서.



세상에 반항하며. 엄청 독서를 열심히 했더랬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거지 뭐.



패기 어리고 눈물 어린 유치원 시절,

예술성, 천재라는 말만 들으면 휙-

고양이처럼 마구 할퀴던 고등학교 그때 그 시절.



그 시절이 있었네. 값지게도,

이런 여린 내가 있었으니.



단단하니 실한 열매가 된

이런 나도 있네, 여 어기 -



바로 이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