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공황장애가 그렇게 시작 됐다.

- 이 얘길 꺼낼까 말까 계속 고민했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길,

by 이승현

2016년 내가 탄 압구정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사고가 났다. 안내 음성이 들렸고 내려 달라는 얘기였다. 결국은, 그리고 역에서 서류를 뗐다. 회사에 사고 때문에 늦었다는 서류를 잘도 챙겼지만 그날 내게, 첫 공황장애가 발병했다.



폐쇄공포증으로 대중교통을 타면 꼭 문을 열곤 하는데, 지하철은 창문이 없는 데다가 그날은

작은 사고라고는 하지만 그때 30~40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내가 느낀 공포는 상당히 컸다.



숨이 채 쉬어지지 않았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내 모든 증상은 찾아보니 공황 장애와 일치했다.



결국 난 나 몸이 좀 이상해. 숨이 잘 안 쉬어져.

그리고 더 못 걷겠어, 쓰러질 것 같아.

그 시절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고민하다 말했는데,



그는 내게 거 아니라며. 심리적인 거라고 진짜 별 거 아닌 듯이 말해서 그때 딱 마음을 닫고 누구에게도 보호받는단 생각은 절대 해서는 안 되겠다. 내 몸은 절대 내가 지켜.라는 마인드가 자연스레 깔렸다.



공황장애든 양극성장애든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병이 아닌데 난 그저 웃겼다.



나중엔 그의 집에서 내가 세 번이나 쓰러지고

발작과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또 쓰러지듯이

잠든 날 보고 그는 내가 혹 숨을 안 쉴까 봐,

내내 체크했다고 한다.



마음이 아픈 건 그냥 심리적인 게 아닌데.

그 시절 누군가 별 거 아냐. 가 아니라

내 말을 그대로 믿어줬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후 여러 차례 쓰러지고 그 기억은 기억상실로

인해 여전히 없지만 나 참 죽을 뻔도 하고

죽을 각오로 이렇게 견뎠으니, 이젠 행복만 하여라.



그 후 주치의 선생님께서 공황장애라고 말씀하셨다.

비교적 수차례 반복되진 않았다. 겨우 몇 년이었다.

고작 몇 년인데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난 여전히 지하철을 폐쇄공포증으로 겁내고

지하철 사고로 인해 목숨의 위협을 느껴

이젠 지하철을 타야 한다면 입구 쪽에 타는 것, 그저 그게 습관이리라. (이 얘긴 사실 내 가족도 모른다.)



버스나 뭐든 타면 창문을 여는 것.

숨 쉴 구멍을 만드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이다. 게다가 난 비행기도 잘 못 탄다.



다음번엔 만약 사랑을 한다면 공황장애든,

양극성장애든 누구나 생길 수 있는 거니까.

편견 없고 무시 없고 아픔 없이 내 말을 다 믿어주는

신뢰가 바탕이 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부디,



다시는 겪기 싫다. 공황장애는, 정말 양극성장애의

100배로 힘들다. 주관적이지만 아마도 공황장애, 양극성장애나 건강하고 잘 자고 규칙적인 패턴에 잘 먹고, 스트레스 안 받는 환경이라면 생길 일이 아주 희박하지 않나 감히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며 나도, 그리고 앞으로의 누군가들도 마음 아픈 일이 더는 없길. 바라며,



그래도 감사한 건 지금은 감사히 지하철을 타긴 한다는 것. 입구 쪽의 손잡이에 간신히 매달려 심호흡하며, 말이다.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공황장애니까!

그 누구도, 그 누구더라도 아플 수 있다.

상대방의 상처에 다만 이해하지 못한다면

소금 뿌려 그거 별 거 아냐. 버텨, 그런 말은 당신이 무지한 것이니, 차라리 조용히 침묵하시길.



p.s 겪어보지도 않은 상처에, 혹은 자신이

산 삶보다 더 나은 세상이라고.

그건 별 거 아니라는 둥 그냥 더 버티라는 둥

그럴 거면 때려치우라는 둥..



만약 우리 엄마처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서 제발 더 지혜를 쌓으시길. 부디. 부디!



앞으로의 내 삶,

내 가치는 그건 다 내가 정해.



여러분 모두 힘내지 마세요.

할 수 있는 만큼만 사회적 눈치 보지 마세요.



우리는 소중해요. 예쁘고 건강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꽉 끌어안아주세요,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전 일 때문에 지하철 타야 하는데 벌써부터

긴장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