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늘은 퇴근 언제해..?"

매일 와이프의 퇴근을 기다리는, 전업주부 아빠의 하루

by 김재우

아침이다. 나 스스로 잠에서 깨어나기 보다는 아이들의 발소리에 잠을 깬다. 겨울에 아직 해도 뜨지 않은 6시반. 이제 4살이 된 둘째는 저벅저벅 자기 애착이불과 베개를 챙겨와서 내가 누워있는 침대위로 돌진한다. 누가 둘째 아니랄까봐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엄마를 찾을 때가 많지만, 내 옆으로 올라와 품에 폭 안길때면 '그래도 키운 정은 있구나' 하며 씩 웃는다.


조금 지나 밖에서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는지 첫째도 금세 잠에서 깬다. 조금이라도 더 잤으면 좋겠는데... 아빠의 바람과는 달리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들고 졸린 눈을 비비며 나에게 달려온다. 첫째는 아빠 바라기다. 아빠랑 모든 걸 함께 하고 싶어해서 가끔은 힘들지만 대체로행복하다.


일어나서 조금 부비적 거리다보면 엄마의 출근 시간이 된다. 현관문을 나서는 엄마에게 배꼽인사를 하고나면 본격 등원준비를 시작한다. '등원준비' 라는 말은 쉽지만 무겁다. 단순하게 씻기고, 옷을 입히고, 간단한 먹을거리를 챙기는게 말이 쉽지 절대 절차대로 쉽게 되지 않는다.


첫째를 씻기는 동안 활동성이 커지며 신세계가 열린 둘째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옷을 적시고, 첫째를 가만두지 않는다. 로션 하나를 바르려고 해도 온갖 간섭에, 잠깐 뒤돌아 보고 있는다 치면 변기에 손을 넣고 두루마리 휴지를 잡고 거실로 뛰어가고... 붙잡고 어르고 소리도 쳐봐도 별 소용은 없다.


옷 입는 것도 마찬가지다. 둘째 옷을 입히는 건 크나큰 에너지가 소모된다. 어디든 움직이려고 난리를 치는 통에 겨우 바지를 입혀놓느라 진을 빼는데, 잠시 첫째 옷을 챙기는 동안 옷을 태연하게 벗어놓고 도망쳐놓곤 구석에서 씩 웃고 있다. 기저귀를 벗거나 기저귀에 응가를 한 다음에 그걸 손으로 잡지나 않음 다행이다.


아침 간식은 첫째에게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다. 첫째는 먹을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간단하게 달걀, 블루베리, 요거트 같은걸 주는데도 나무늘보다. 등원 시간 전까지 준비해야 하는데, 어쩜 그렇게 태평한지 모르겠다. 어르기도 해보고 화도 내보지만, 어쨌든 그리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게 슬픈 현실이다.


머리 묶는 시간은 고역이다. 유튜브를 보며 연습했지만 여전히 초보에 머무르고 있다. 마치 손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미용사가 된 것만 같다. 첫째는 원하는 머리를 명확하게 말하지만, 내 손은 요구사항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다. 몇 번이나 고무줄을 묶고 풀기를 반복한다. 땀이 삐질 날 즈음이 되서야 어느정도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가 된다.


현관문을 나서서 어린이집에 가기까지도 험난하다. 갑자기 복도에 주저앉거나 차량 탑승을 거부하는 자잘한 이벤트들까지 마치고 나서야 선생님께 아이들을 보낼 수 있다. 돌아서서 나오면 전업주부의 가장 큰 아침 과제인 '무사히 등원시키기'가 끝난다.


집에 오면 아침 시간에 어질러 놓은 집을 다시 원래 상태로 치워놓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두 시간 밖에 안놀았던 거 같은데 전날 밤 치워 놓은 집은 완벽하게 엉망인 상태가 되어있다. 마치 무중력 상태의 우주선 안의 혼란이 이런 느낌이겠지.. 라는 쓸데없는 망상을 하면서 장난감을 제자리에 놓고, 이불을 개고, 청소기를 돌린다. 그래도 하루 중에 유일하게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이 오전 시간이기에, 있는 힘껏 나만의 시간으로 보내려고 노력한다.


오후가 되면 슬슬 하원 시간이 되어가기 때문에 하원 전에 저녁거리와 반찬을 준비해 놓는다. 대부분 인터넷으로 장을 보지만, 값싸고 싱싱한 채소만큼은 집 앞 가게에서 직접 고른다. 바로 옆에 있는 떡집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래떡이 있어, 아이들의 얼굴이 생각나서 한 팩 사놓는다. 집에 와서 떡이 있으면 신나할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어느새 어린이집 현관 앞이다. 어떤 날은 활짝 웃는 얼굴로 "아빠~" 하고 달려오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조금은 힘없는 표정으로 축 처져서 나올 때도 있다.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 있었니?" 하며 얘기를 나누며 집으로 오면 아빠의 오후 일과시간의 시작이다.


날씨가 좋고 너무 덥거나 춥지 않은 날이면 아이들은 집앞 놀이터에 나가서 뛰어놀고 싶어한다. '오늘은 비온 다음날이라 바닥이 많이 젖어있어..', '엄마가 빨리 온다는데 우리 금방 밥 먹을거야..' 같은 아빠의 얘기는 딱히 아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첫째는 누구보다 신나게 킥보드를 타고 동네 광장을 뱅글뱅글 돌고, 둘째는 아직은 킥보드는 낯설지만 언니 하는 걸 따라하고 싶어 안달이다. 그렇기에 옆을 보디카드처럼 지켜주다보면 어느새 해가 저무는 시간이다.


와이프가 일찍 오는 날이면 조금 편안하게 저녁을 준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면 그저 다 해놓은 요리와 반찬을 꺼내서 챙겨주는 일조차 꽤나 어려운 도전과제로 다가온다. 하루종일 어린이집에서 나름의 사회생활을 마치고 온 아이들은 피곤한 상태이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짜증을 부리기 때문이다. 한참 자아가 형성되고 있는 둘째는 나 이거 가지고 놀거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첫째는 자꾸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둘째로 인해 티격태격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결국 퇴근시간 즈음이 되면 나는 와이프에게 전화를 건다.


"언제와? ... 아니 밥 어떻게 할까 싶어서."


직장인 중에 퇴근하기 싫은 사람이 어딨냐 싶은걸 너무도 잘 안다. 그 마음이 어떤지 알면서도 퇴근을 재촉하는 것 같은 나의 모습이 가끔은 싫지만 어쩔 수 있나. 결국 기다릴 수 밖에 없는건 주부의 마음인 것을.


와이프가 오면 저녁을 함께 먹는다. 별 일이 없었던 날인 거 같은데도, 이상하게 저녁을 먹을 시간 즈음이 되면 많이 기력이 쇠한다.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나눌 여유도 없이 아이들은 자기들의 얘기를 떠들기도 하고, 종일 받고 싶었던 관심을 그 자리에서 채우고자 하기에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보면 금세 저녁 시간이 끝난다.


다 먹은 밥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 내일 어린이집 갈 물건들을 챙기고 나면 어느새 잘 시간에 가까워져 있다. '하루가 이렇게 빨리 지나가다니?' 라는 여유를 가질 새도 없이 아이들을 씻기고, 책 몇 권을 읽어주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하루가 끝난다.


어떤 날은 와이프와 하루를 잘 마무리했다는 서로의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피곤함에 쓰러져 눈을 떠보면 내일 아침일 때도 있고, 그럼에도 정신줄을 붙잡으며 맥주라도 한잔하려고 하면 그다음날 더 피곤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전업주부다.


아마 여느 엄마들이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이와 많이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루 일과를 써보는 건, 아빠로서 육아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들이 아래와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딸들 머리는 어떻게 하세요?"
"요리도 직접 하시나요?"
"집안일은 다 하시나요?"


전업주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나는 그저 하고 있을 뿐이다. 직장인은 직책에 따라 맡은 일을 하기에 남녀에 따라 하는 일이 달라지는지를 묻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빠가 전업주부라면 이 일들을 직접 할지 궁금하게 생각하는지 참 많이 물어본다. 왜냐면 아빠 전업주부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 마치 조선시대에 해안가에 툭 떨어진 '푸른 눈의 외국인'처럼 바라본다.


나는 그저 내 몫의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스케쥴에 맞춰 하루 일과를 보내고, 빈 시간 틈마다 집안일을 하고, 가끔 동네 이웃 친구엄마들과 수다 떨고, 날이 좋은 날은 혼자 이어폰을 꽂고 산책을 하기도 하는 그런 일 말이다. 가끔은 외롭고, 가끔은 편안하고, 그런 마음으로. 나는 지금 내 자리에서 아빠로, 주부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