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회사 안 가?"

7살 딸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by 김재우

여느 날과 같은 어느 아침 등원 시간. 평소처럼 차 안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어린이집으로 가고 있었다. 뒤에 앉아 밖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던 첫째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했다. "왜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데려다주는데 우리는 아빠만 매일 데려다 줘?" 라고.


순수한 질문이고 아이의 시선에서는 궁금할 수 있을만 하다. "어, 우리 집은 엄마가 다른 아빠들처럼 밖에 나가서 일을 하는거야. 아빠는 다른 엄마들처럼 너희들 챙기고,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그러자 첫째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아빠는 다른 아빠들처럼 회사 같은거 안가는거야? 왜?"


아이의 그 어떠한 악의도 없는 순수한 질문이지만, 나는 마치 모르는 사람에게 뒷통수라도 맞은 마냥 멍해졌다.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하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걸까, 아니면 혹시 다른 친구들이 물어봐서 그런걸까, 그도 아니면 선생님이 너희 아버지는 뭐하시냐고 물어보신걸까. 그 몇 초의 시간동안 머릿속으로 혼자 수많은 질문이 지나가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당황한채 "응, 아빠는 집에서 일해" 라며 거짓말으로 얼버무린 대답을 했다. 아이들을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순수한 표정의 날것 그대로의 궁금함을 담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충분히 궁금해할 만한 질문이지만, 막상 직접 그 말을 듣게 되면 말문이 턱 막히는 그런 질문이었다. 나는 왜 다른 아빠들처럼 회사를 다니지 않는걸까.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일하지 않는 남자' 라는 고정관념이 쉽게 던져지지는 않는다. 어릴 때부터 '출근하는 아빠' 가 보고싶은 만화라던지, '아빠 힘내세요' 같은 동요를 부르며 살아왔다. 그 평생의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역시 '회사를 안가고' 육아를 전담하는 아빠의 어깨는 저절로 움츠러든다.


특히 바쁜 등원준비 끝에 아이들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탔을때 다른 일하는 아빠를 만나면 '다음 엘리베이터를 탈걸..' 하고 속으로 후회한다. 둘 다 아이들의 가방을 메고 있는건 같다. 하지만 나는 편안한 티셔츠에 편한 신발을, 다른 아빠는 캐주얼룩에 서류가방을 들고 있다. 같은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아빠지만, 누가봐도 직장인인 저 아빠, 그리고 나는 누가봐도 집에서 애 보는 사람이다. 자연스레 눈인사만 나누고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일하지 않는 남자' 라는 타이틀은 낮시간에 만나는 관계들을 통해 더욱 더 강렬하게 인식된다. "육아휴직 중이세요?" 가 기본인 질문들, 그리고 전업주부라는 자기 소개, 이어서 다가오는 낯선 시선들, 어색하게 오고 가는 얘기들이 나를 더 지치게 하곤 한다.


단순히 엄마가 주부면 '전업이에요' 로 끝나는 말들에, 아빠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부연설명이 한가득이다. 특히나 아빠 전업주부에게는 '백수' 라는 단어가 '전업주부' 보다 자연스럽게 쓰인다. 그런 주변의 시선을 인식하다 보면, 내가 마치 거인국에 떨어진 소인 걸리버인 것만 같다. 너무도 큰 세상에서 낙오한 것만 같은 존재.


그러다 생각해본다. 아이가 나에게 물어본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빠가 회사를 가지 않는 것에 대한 아이의 질문에 어떠한 가치판단이 들어있었을까? '일' 이나 '회사' 같은 것들이 아이에게는 어떤 걸까?


하원하고 오면 첫째는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나눈 얘기들을 재잘재잘 얘기한다. 어젯밤에 친구가 동생이랑 싸우다가 코피가 났다던지, 엄마아빠가 매일 술을 먹는다던지 하는 사소한 얘기부터, 가끔은 친구 엄마아빠가 크게 싸웠다든지 하는 진지한 얘기도 전해준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겪고 들은 그 얘기들을 솔직하게, 숨김없이 쏟아낸다.


그러다보면 친구들의 아빠 얘기도 종종 듣는다. 누구 아빠는 직업군인이라 비행기를 탄다거나, 누구 아빠는 회사를 아침 일찍 간다던지, 요새 일이 바빠져서 오래 못봤다던지 하는 얘기들을 해준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자기 인생에 가장 커다란 존재인 부모의 일이 곧 자신의 중요한 일이고 얘깃거리가 된다. 그러다보니 얘기를 나누다보면 '친구들 아빠들은 회사에 가는구나'에서 '왜 우리 아빠는 안가지?' 로 아이 마음 속에서 의문이 생겼나 보다.


어느날 첫째에게 물어봤다. "아빠가 회사 갔으면 좋겠어?" 그러자 첫째는 내게 말했다. "아빠가 회사 가면 뭐가 달라지는거야?" 그래서 나는 얘기했다. "아빠가 회사가면 돈 많이 벌어와서 맛있는거랑 갖고 싶은거 많~이 사줄 수 있지. 대신에 같이 얼굴 보는 시간은 많이 없어지고..."


얘기를 마치기도 전에 첫째는 "그럼 아빠 회사 가지 마!" 라며 단호하게 얘기했다. 나는 물어봤다. 너가 갖고 싶은 티니핑 장난감도 많이 사줄 수 있고, 예쁜 옷도 많이 사줄 수 있다고. 하지만 첫째는 내게 확실하게 얘기했다. "나는 아빠랑 같이 있는게 좋아. 아빠랑 같이 노는 게 훨씬 좋아!" 라고.


전업주부로 살면 항상 일을 하고싶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나는 할만한 일을 찾고,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뭔가를 하려고 하면 나는 아이들에게 그만큼 에너지를 쏟지 못한다. 하물며 집을 깨끗하게 만들겠다며 대청소만 해도, 그날은 아이들에게 날카롭게 말이 나가는 아빠가 되어버린다.


그럴 때마다 전업주부가 되기로 했을 때 한 결심을 떠올린다. 언제나 아빠를 필요할 때 옆에 있고, 놀고 싶을 때 같이 놀아주고, 책 읽을 무릎을 빌려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아이들이 나라는 존재로 인해 집을 편안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말로 물어보고 얘기하는 첫째와 달리 둘째는 몸으로 밀어붙인다. 아빠라는 존재가 뭘 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둘째는, 그냥 아빠만 있으면 달려와 안기고, 소리 지른다. 나의 배를 트램펄린 삼아 방방 뛰는 바람에, 몇번이나 아픔에 소리를 질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급소를 맞아 고통에 뒹굴거리고 있으면 "잉?"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만 있다.


아이들과 와이프에게 맛있는 끼니를 제공하는 것도 내 기준 '주부'라는 직업인에게 꽤 중요한 일이다. 군대 때 취사병도 잠시 경험해봤던지라, 아이들와 와이프에게 저녁 한끼만은 그때그때 제철 재료들을 사와서 해주기 위해 유튜브와 블로그를 뒤진다. 어느새 내 유튜브 구독목록에는 요리 유튜브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흑백요리사>에 심취한 요즘은 파인다이닝을 따라한 '마구다이닝'으로 접시에 요리를 꾸며서 내놓는다. 첫째는 생존과 탈락을 단호하게 말하고, 둘째는 밥을 그대로 뱉어놓고는 거실로 도망치곤 한다. 하지만, 대체로 욕심부리지 않는 날에는 맛이 꽤 괜찮다. 그래서 첫째와 둘째가 나를 바라보며 '엄지 척' 하는 순간은 내게는 흑백요리사 우승만큼이나 뿌듯한 날이기도 하다. 그렇게 소소하게 스스로의 자존감을 쌓아간다.


언젠가 첫째가 비슷한 질문을 할때, 나는 얘기했다. "아빠는 너희들 보는 게 일이야. 요리도 해주고, 집도 치워주는 거." 그것도 일이냐고 되묻는 첫째의 날카로운 반문에 조금 당황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가끔 결혼식이라도 다녀온다고 평소에 안입던 깔끔한 캐주얼룩을 입기라도 하는 날에 아이들은 난리가 난다. "아빠 어디가?" "아빠 회사 가는거야?" "집에는 언제 올거야?" 가끔은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기도 한다... 그럴때면 얘기해준다.


"아빠 금방 올께."


모든 아빠들이 승진, 연봉협상을 말할 때, '전업주부 아빠' 는 집 안 구석에서 '두 딸 키우기' 라는 나만의 길을 걷고 있다. 가끔은 밤에 눈을 뜬채 새벽까지 잠을 못이루기도 하고, 지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버스 창밖으로 지하철역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직장인들의 물결을 아스라이 쫓기도 한다. 그래도 어디 세상에 정해진 길이 있으랴. 나는 그렇게 나의 사무실, 집의 부엌에 서 있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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